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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첫날 밤 (창 29: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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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 29장 15-30절   
제목: 야곱의 첫날 밤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야곱만큼 극적인 인생을 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147년을 살았는데 그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고백하기를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야곱의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저는 자신 있게 말하겠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속고 속이는 생애였다.”고 말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실로 속이고 속는 삶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인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간발의 차이로 동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외모와 성격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남자답고 사냥을 좋아하는 형인 에서를 좋아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하고 여성스러운 동생인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곱은 자신이 장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늘 아쉬워하며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생활했습니다. 결국 그는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복을 가로채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형의 칼날을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피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청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외삼촌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딸이 둘 있었는데 야곱은 동생인 라헬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의 청년시절을 사랑하는 한 여인을 얻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는 외삼촌에게 속아서 언니인 레아와 먼저 결혼을 하게 되고 나중에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장년 시절 야곱은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생활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외삼촌을 교묘하게 속여서 엄청난 재산을 획득하게 됩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와 12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자녀들 중에서도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여인 라헬이 낳은 11번째 아들 요셉을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게 왕따가 되었고 결국은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맹수들에게 찢겨 죽은 것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야곱은 노년을 자식들에게 속아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 요셉을 죽은 줄로 알고 죽음과 같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생애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 아버지와 형을 속였고, 청년 시절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서 고생을 했지만 외삼촌에게 속아서 원하지 않는 아내 레아를 얻게 되었으며, 장년 시절에는 재산을 얻기 위해서 외삼촌을 속여서 많은 재산을 획득했지만 자식들에게 속아서 슬픈 노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생이라는 것은 속이고 속는 삶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속고, 돈에 속고, 사람에게 속고…. 야곱의 인생에 비춰보면 그 말이 실감이 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황홀한 시기인 청년기에 이루어진 연애와 결혼을 통해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 담겨진 교훈을 살펴봄으로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교훈을 듣기 원합니다.


  첫째 우리가 살펴볼 교훈은 야곱은 아름다운 라헬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17-18절).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의 이름은 레아- 들의 암소라는 뜻 -였는데 그는 인물이 못생겼고, 동생의 이름은 라헬- 암양이라는 뜻 -인데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야곱이 형인 에서의 칼을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 와서 맨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라헬입니다. 야곱은 못생긴 레아보다는 곱고 아리따운 라헬을 연애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배속에서 나왔는데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데도 형제가 너무나 다른 것을 많이 봅니다. 저도 자녀가 셋 있는데 아들 둘 딸 하나입니다. 제가 바람피울 사람같이 보입니까? 셋 다 엄마가 같아요. 아빠도 같아요. 그런데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머리도 다르고, 식성도 다르고 취미도 다릅니다. 마치 야곱과 에서 같이 말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인데도 너무나 달랐잖습니까?

  이와 같이 같은 교회에서 같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믿음이 너무나 다른 것을 많이 봅니다. 어떤 교인은 믿음이 레아의 외모처럼 안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는 반면 라헬의 외모처럼 곱고 아리따운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도 예배드리는 모습이 너무나 다릅니다. 아리따운 라헬과 같은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못생긴 레아와 같은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라헬.

  왜, 라헬을 사랑했을까요? 곱고 아름답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목사 같으면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리겠습니까? 곱고 아리따운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야곱이 아름다운 라헬을 안력이 부족한 레아 보다 더 사랑한 것 같이 안력이 부족한 믿음을 가진 사람보다 아리따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더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아리따운 마음과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가 살펴볼 교훈은 야곱은 아리따운 라헬을 위해 7년을 수일같이 봉사했다는 사실입니다(19 - 20절).

  야곱은 아름다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7년을 봉사했지만 그 세월이 전혀 힘들다거나 지겹지가 않았습니다. 19-20절을 읽어봅시다.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왜 그랬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은 힘들지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 마음속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시절에 좋아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은 교회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저녁 예배가 끝나면 누군가가 바라다 줘야만 했습니다. 그 일을 누가 했을 것 같습니까? 물론 제가 했습니다. 비가 올 때도 눈이 올 때도 그를 바래다주는 발걸음은 즐겁고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다른 여학생을 바래다 줘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 때의 발걸음은 한마디로 고역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눈보라치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여인을 바래다주는 발걸음은 즐겁고 행복한 법입니다. 한마디로 고생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힘든 직장 일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솟을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지겨울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교회 일이 힘들지 않습니다. 기도가 힘들지 않습니다. 예배 생활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예배 한 시간 드리는 것이 왜 그렇게 지겨운지 모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기도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듭니까?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목회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힘든 일도 누가 부탁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집니다. 아리따운 신앙을 가진 사랑스러운 교인이 부탁하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주는데, 신앙의 안력이 부족한, 아리따운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교인이 부탁하면 해 주기는 해 주는데 즐거움이 없어요.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어렵고 힘든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깨달을 교훈은 야곱은 못생긴 레아보다 아리따운 라헬을 더 사랑했지만 아버지 라반은 잘생긴 딸도 못생긴 딸도 똑같이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라반은 조카를 속여 가면서도, 조카에게 원망을 들을 줄 알면서도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들여보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것이 없듯이 내 아들 내 딸은 못 생겨도, 공부를 좀 못해도, 말썽을 좀 부려도 똑같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서 잘 생긴 자녀만, 공부 잘 하는 자녀만 더 사랑한다면 여러분들의 그 사랑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아리따운 믿음을 가진 사람을 더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똑 같습니다. 단지 그 표현방법만 다를 뿐입니다. 아리따운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표현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안력이 부족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표현되는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질은 똑같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를 들고 때릴 때의 부모님의 사랑과 칭찬할 때의 부모님의 사랑은 단지 표현 방법만 다를 뿐이지 그 사랑의 질은 똑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것을 깨닫는 사람이 효자인 것입니다.


  넷째, 아침에 보니 레아라!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헬과의 결혼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 날을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이 날을 위해서 7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어둠이 만물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수줍은 듯이 구름사이에 숨어서 야곱의 첫날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멀리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야곱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 꿈같은 밤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두근거리는 가슴과 설레는 마음과 기대를 가지고 자기가 그렇게 사랑한 아리따운 여인 라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예쁜 신부가 하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야곱의 가슴은 꿍꿍 방망이질을 합니다. 향기로운 신부의 화장품 냄새가 야곱의 코를 자극하자 흥분으로 정신이 다 아찔할 지경입니다. 신부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야곱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다소곳하게 그 앞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야곱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신부에게 다가가 앉습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신부의 손을 지긋이 잡습니다. 보드랍고 따뜻한 촉감이 손끝을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되자 온몸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의 말을 속삭입니다. “사랑해 라헬,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 거요. 오늘 이 시간을 위해서 나는 7년을 하루 같이 견뎠다오. 사랑해요 라헬,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요.”
  그리고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라헬을 힘껏 품에 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을 합니다. “이 여인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바치리라,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이 여인만은 지키리라!”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밤이 새도록 사랑을 나눕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자기의 아내가 된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안아 보고 싶어서 돌아누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야곱의 눈 속에 들어온 신부의 모습은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라!”(25절)

  이 얼마나 허망한 노릇입니까? 밤새껏 라헬인 줄 알고 품고 사랑했는데, 그렇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 이 여인을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리라 다짐을 했는데 그런데 레아였다니….
  속아서 품었던 착각으로 품었던 야곱이 품은 것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던 그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품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사랑하며 어루만지며 품고 있는 것이 라헬인 줄 알고, 여러분이 참으로 원하는 것인 줄 알고 품에 품고 있지만 혹시 여러분이 품고 있는 것이 레아가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참으로 원했던 것이 아닌 것을 품에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침에 눈뜨고 나면 허망하게 되어 버릴 것들을 가슴에 품고 있지 않습니까?

  아침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우리가 지금 즐기고 사랑하고 어루만지고 있는 것들이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말입니다. 지금 등불을 밝히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을 앞에 놓고 여러분이 지금 아끼고 사랑하며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 라헬인지 레아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시119:105).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내가 아끼고 사랑하며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 레아인줄 알면서도 그대로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품고 있는 것들을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참으로 원했던 것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들입니까? 참으로 가치 있는 것들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라헬과 같이 곱고 아리따운 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서 7년을 봉사했지만 힘든 줄 몰랐듯이 우리 속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넘치게 하여 주사 기도생활이 즐거워지게 하옵시고, 예배생활이 즐거워지게 하옵시며, 교회 생활이 즐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지금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며 어루만지고 있는 것들이 혹시 레아가 아닙니까?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참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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