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도우시는 성령 / 롬 8:26

  • 잡초 잡초
  • 470
  • 0

첨부 1




도우시는 성령 / 롬 8:26


파블로 카잘스는 20세기 최고의 첼로 연주자이며, 작곡가요, 지휘자요, 피아노 연주자이다. 1966년, 그의 90회 생일이 되기 직전에 노만이라는 사람이 위대한 음악가의 노후의 생활을 관찰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관절염과 호흡 곤란으로 카잘스의 손은 부어 있었고, 손가락들은 서로 엉켜 있는 듯했습니다. 저런 손으로 어떻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카잘스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으로 간신히 피아노까지 걸어갔습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노만의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손가락들이 마치 태양 빛에 펴지는 꽃봉오리처럼 펴지더니 건반을 만집니다. 꾸부정했던 그의 허리도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확실히 숨쉬는 것도 편해 보였습니다. 그는 바하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섬세하고 예민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브람스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카잘스는 생기와 영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연주를 다 마친 그가 일어나 걸을 때 그의 몸은 곧바르게 되었고, 키도 더 커진 듯했습니다. 간신히 침대에서 나와 고통스럽게 옷을 입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음악인은 음악 안에서 새로워졌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새로워질까요?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할 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를 양자로 보증해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최종적으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도와 주십니다. 성도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계시면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요 16:13) 양자로서의 보증이 성도 안에서 확실히 성취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보혜사이십니다(요 14:16, 26;16:7).

보혜사라는 말은 돕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는 돕는 분이십니다. '도우시나니'(쉬난틸람바네타이)는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가운데 본절과, 마르다가 마리아의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인 눅 10:40에만 나옵니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연약해 있을 때에 성도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십니다. 돕는다는 말은 “함께 담당한다”는 뜻이기고 합니다. 좀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하면 “맞잡아 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을 성령께서 맞잡아 주시면 훨씬 쉽습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통나무를 어깨에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길고 무거우니 혼자 지고 가기가 무척 힘들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 쪽 끝을 지고 내가 다른 한 쪽 끝을 지면 어떻겠습니까? 매우 쉽지 않겠습니까? 힘이 절 반으로 줄어 듭니다. 성령이 바로 이렇게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성령은 나의 부족한 것을 채우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우시고, 쓰러질 때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잃은 슬픔과 고통에 실망과 절망으로 가득 찬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하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이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바로 교회의 탄생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령의 능력에 의해 유지되어 왔고 부흥성장 되어 왔습니다.

성령은 성부이신 하나님, 성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지금도 역사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십니니다.

성령주일을 맞아 도우시는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며 은혜를 사모 하고자 합니다.




  먼저 인간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하시니 사람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린다면 “약하다”라는 것일 것입니다. 자기가 약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강하다고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속으로는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인 고호가 젊었을 때에 광산에 들어가서 전도사 일 을 한 적이 있답니다. 어느 날 광부 한 사람이 물건을 포장했던 천으로 셔츠를 만들어 입고 오는 것을 보았어요. 광부가 만들어서 입은 옷 뒤에는 “부서지기 쉬운 물건이므로 주위해서 다룰 것”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사용 하는 표현으로 “취급주의”이렇게 써져 있는 것을 입고 다닌 것입니다. 그것이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고호가 그것을 보고서 부서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이구나 하고서 큰 깨달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때 유럽을 정복하였던 세기의 영웅 나폴레온도 집에서는 부인 조세핀의 무릎을 붙잡고 울 정도로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때 주먹으로 세계를 정복한 권투의 왕 무하마드 알리도 실제로는 매우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파킨스씨 병을 걸려 겨우 몸을 움직이는 신세가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비친 그의 모습은 손, 발이 떨려 제대로 서 있거나 무엇을 붙잡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가 한창 뜰 때는 “내가 가장 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다”라고 떠벌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기자 회견에서 그는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가 이런 병에 걸렸습니다.”

사람은 건강할 때 보면 무엇이나 다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발가락 하나만 아파도 꼼짝을 하기가 어렵고 감기만 좀 심해도 모든 스케줄을 취소해야 할 정도로 연약합니다.

죄를 이겨야 하지만 죄의 유혹에 넘어갈 때가 더욱 많고 세상 따라 갈 때가 더 많습니다. 몰라서 못할 때도 많고 알면서도 행치 못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은 그의 택한 백성들의 이런 연약함을 도와주셔서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가게 하십니다.

한 시간 뒤 내일일에 대하여 물론 계획은 되어 있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한 주간에도 수 없는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누가 예측을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몇 초 뒤도 모릅니다. 오직 우리는 이런 존재이니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하늘 나라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 하소연 비슷하게 불평을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어려울 때, 힘들 때, 그래서 쓰러지고, 넘어질 때 왜 나를 도와 주시기 않았나요?” 그러자 예수님이 그 사람의 눈을 열어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자기가 걸어온 인생의 발자국 옆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내 발자국 옆에 있는 저 발자국은 누구의 발자국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내 발자국이란다.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래서 쓰러지고 넘어질 때 마다 내가 너와 함께 가면서 너를 붙들고 안아 주었지. 그래서 네가 낙오하지 않고 이렇게 천국에 오게 된 것이란다.” 이 말씀을 들은 그 사람은 주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꼭 붙들고 그 분께 부탁하는 심령에 도우시는 은혜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음 친히 간구하심으로 도와 주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 합니다.

성도는 연약하기에 영적 힘을 공급해주는 통로인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기도의 능력도, 기도할 내용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심은 성령께서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성도들 편에 서서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실들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 성도가 갈등으로 인해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성도보다 더 심한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성도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며 구원에 대한 보증입니다

월남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교회 청년들도 월남전에 많이 참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을 월남에 보낸 한 자매님이 교회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저녁마다 걱정하고 잠을 못 이루는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매님, 성령님은 우리의 빌 바를 아시므로 자매님의 기도를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그 후부터 이 자매님은 아들을 위해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그 아들이 베트콩과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전방에서 날라 오는 포탄을 피해 3미터 앞으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무서운 힘으로 어깨를 누르면서 “그 자리에 엎드려라”하고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잽싸게 그 자리에 엎드렸는데 바로 그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분명히 자기가 뛰어가려던 바로 그 지점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청년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자기의 어깨를 누르면서 엎드리라고 소리치던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무사히 귀국한 청년은 찾아와 “만일 제가 3미터 전방으로 뛰어가서 엎드렸다면 가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기도로 성령님이 저를 못 가게 막으셔서 목숨을 구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간구하시는 성령-인터넷 정보클헙-채수덕)

어려운 문제가 눈앞에 닥쳐왔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성령님께 기도를 부탁드리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은 영혼으로 주님을 사모하게 하며 기도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를 목마른 사슴이 시냇가를 찾듯이 사모하는 일은 성령의 은혜로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고 기도하게 됨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사모하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이 바로 즐거움이요, 행복임을 노래합니다. 도우시는 성령께서 주의 집을 찾도록 하시고 기도하도록 하기 위하여 친히 기도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절)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란 앞의 말을 받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즉 소망이 고난을 견디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과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 도와 주어 승리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소망만 가지고도 구원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잘 안됩니다. 소망을 견고하게 붙잡고 있어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하기 때문에 도중에서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직접 나서서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로 하여금 소망 중에 견고하게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얻을 수 있게 하십니다.

(막 13: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고 합니다.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있어 연합군에게 매우 의미 있는 두 날이 있습니다. 하나는 D-day이고 다른 하나는 V-day입니다. D-day는 Decision Day의 준말입니다. 이것을 번역하면 “결정의 날”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 날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감행한 날입니다. 이 상륙 작전으로 연합군은 결정적인 승리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날부터 연합군은 독일군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막강한 군대와 화력을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항하는 독일군을 무찌르며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진격하였습니다. 결국 베를린은 함락되었고 독일은 전쟁에서 졌습니다. 연합군은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을 가리켜 V-day, 즉 Victory Day, 승리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영국에서도 매년 이 날을 기념하여 축하 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흔히 이 두 날을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확보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분이나 저나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의 초림을 연합군의 D-day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아직 온전한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온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지금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쟁은 언제 끝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날에 끝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주로 오셔서 사단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최후 승리를 얻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온전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승리의 날, 즉 V-day가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D-day와 V-day 사이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이 오히려 독일군으로부터 강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던 것과 같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사단으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이미 승리를 이루어 놓으셨지만 아직 최종적인 승리는 우리 수중에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궁극적인 승리의 쟁취를 위해 우리는 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난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순간 우리는 이 전쟁을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지니’ 디모데 후서 2장 3절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면 싫컨, 좋컨 이 싸움을 싸우게 됩니다. 그러니 전쟁을 하는 군인이 편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언제 적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데 깊은 잠을 잘 수 있습니까? 불편하고 피곤합니다.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삶에 지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이 무슨 싸움은 영적 싸움입니다. 사단과 그의 부하인 마귀들과의 싸움입니다. 깨닫던, 못 깨닫던 우리는 이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싸움의 내용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어두움 속에 갇혀 있는 영혼들을 주께로 돌이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을 하지 않으면 고난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따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성령을 통하여 돕고 계십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낙오될 것 같아 우리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십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신 말씀대로 성령은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영적인 평안이 있는 사람은 모든 역경과 고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능력은 우리가 힘들고 불행할 때 돕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간도 성령께서 연약함을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C. G. 피니가 기계 장치를 둘러보려고 어떤 방직 공장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부흥집회에서 오는 길이라서 피니의 분위기는 경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공장 내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피니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때 작업을 하던 한 여인이 곁에 있는 동료에게 피니를 흉보는 야비한 언사를 늘어놓았습니다. 피니는 멈춰 서서 슬픔어린 눈으로 그 여인을 응시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하던 동작을 멈췄고 순간, 실이 끊어졌습니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녀는 실을 잇지 못했고 다시 일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창 밖을 내다보곤 했지만 그녀는 당혹한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피니는 그 여자 곁으로 가서 몇 마디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 여자가 깊은 죄의식을 갖고 있음이 이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그 분위기는 공장 안으로 불길처럼 번졌습니다.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삽시간에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하자 그 공장의 사장은 비록 불신자였지만 기겁을 해서 당장 공장 가동을 멈추고 기도회를 열게 했습니다. 그 사장이 보기에도 물건을 계속해 생산해 내는 것보다 직원들이 회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사안으로 보였습니다. 며칠이 못되어서 그 사장을 포함해서 거의 3,000명이나 되는 직공들이 완전히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피니의 경건하고도 동정에 찬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의 언사를 책망하시고 그녀 속에 죄의식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에 감동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령님을 환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선한 생각과 소원을 주시고 권면해 주실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줄 알고 거절치 말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소멸치 마시기 바랍니다.(살전5:19) 성령은 거룩한 영이니 우리도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을 가지고 살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연약을 도우시고 친히 간구하심으로 도우시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이십니다.

더욱 성령님의 도우심을 힙 입어 승리의 삶을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