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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성령 - 호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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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호세아 11: 1-4
제목-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성령

요즘 인사가 달라졌지요. ‘할렐루야’ 하면 ‘전도합시다’ 라고 응답하는데 얼마나 분위기가 좋은지 모릅니다. 어떤 동역자에게 전화가 왔길래 ‘할렐루야’ 그랬더니 ‘뭐, 좋은 일 있어요?’ 그래요. 하지만 우리 평안의 성도들은 저와 코드가 맞기에 응답도 은혜로운줄 믿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일년 12달, 365일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특별히 오순절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 강림의 뜨거운 역사를 기념하면서, 6월 둘째 주일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게 되었는데,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성령의 뜨거움이 함께 하셔서 요한 웨슬리를 통하여 이루셨던 300년전의 기적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였노라’라고 하신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것인데,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이 사랑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사랑’하면 필레오나 에피투미야, 혹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를 생각하는데, 오늘 본문에 쓰여진 사랑이란, 좀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사랑이란 뜻의 ‘헤세드’는 은혜, 축복 등 좋은 의미는 거의 다 가지고 있어서 히브리어 단어 중 가장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 말씀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좀더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너를 선택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라는 뜻의 '아헤브'입니다.

사랑이란 버리지 않고 선택한 것인 줄 믿습니다. 미움이라고 하는 것이 선택하지 않고 버렸다는 의미이고보면 더욱 실감나는 단어입니다. 과거 같으면 부부가 서로 갈라설 때, 자식만은 내가 키우겠노라고 아내는 울면서 호소했고, 남편은 법정에 까지 가서 자녀를 데려가겠노라고 했습니다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해서인지 아이들을 서로 안 데려가겠다고 안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버려진 아이들이 많아 부모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해 이혼율이 30%라는 말은 곧 열 명의 아이들 중에 3명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았다는 것은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 평생토록 마음에 상처로 남아서 고통속에 살아가게 될만큼 큰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냥 언어적, 추상적으로 사랑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선택하였노라고 하는 아주 분명한 구체적인 사랑의 언어, 즉 아헤브로써 부르신줄 믿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선택하였노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노라" 주님은 이렇게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선민으로 삼으셨고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을 생각함에 있어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남에서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이나 세포조직을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은 남의 일 같아 보입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서 우리 아이가 무슨 특성이 있고, 무슨 재능이 있는지를 미리 알고 싶다는 열정은 좋지만 거기에 목을 메는 듯하여 보기 안타까운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전문가들도 유전자 검사가 참고사항이지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여러분 자녀들의 특성을 알아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미술학원 한 서너달 보내보면 이 아이가 그림에 재능이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지요. 아이들 피아노 학원에 몇 달 보내보아도 음악적 재능이 있는지 잘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바이엘가지만 보내도 좋을 것입니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것은 임상적 테스트를 통하여 발견하는 것이 정확하고 아이들에게도 무리하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렸을 때 사랑하였다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1절 후반에 보면, 너희를 불러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러냈다고 하는 말은 선택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이라는 고난의 땅, 죄악이 관영하는 땅에서 고통받고 있었을 때 불러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불러내는 것인 줄 믿습니다. 자식들이 잘못된 곳에 가 있으면 부모가 불러내잖아요. ‘아무개야, 거긴 안돼. 거기는 가면 안 돼....’ 어제 뉴스를 보니까 누드클럽이란 곳이 있어서 20.30대 여성들이 눈만 가리고 온갖 술시중을 하는데, 하룻밤에 수십만원씩 버는 재미에 은행원도, 주부도, 심지어는 대학생들까지 찾아와 일하기를 원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분들 중에는 직장에서 대외담당업무 즉 해외 바이어를 상대하는 분들을 가리켜 술상무라고 하지요. 그 사람들 기분맞추려니까 술자리 안 갈수가 없어서 하루 이틀 하다보니 술상무가 되었노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자기가 싫으면 안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운동이나 여행같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거래상담도 월활히 이룰 수 있었다는 지혜로운 분들의 고백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찾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를 찾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 가면 육체의 소욕을 채울 수 있기에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심령 깊은 곳에 그것을 즐기려는 욕망이 있기에 술상무도 하고 밤거리도 배회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3절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십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걸음마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처음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운전도 처음에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전 태도가 나타납니다. 신앙생활도 어느 교회에서, 어느 목회자에게 어떤 분위기 속에서 첫걸음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적인 칼라가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4절에 보면 ‘내가 저희를 사람의 줄로 이끌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귀한 영혼을 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줄이라는 이 표현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기 위해서 거기다가 설명을 했어요.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다.’ 주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줄은 사랑의 줄인줄 믿습니다. 어떤 사랑의 줄입니까?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지키시고, 첫걸음부터 인내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사랑의 줄인 줄 믿습니다.

사랑의 줄은 부드러운 줄입니다. 인내의 줄입니다. 관심의 줄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거나 선교회가 부흥하는 일도 관심의 줄이 있는 부서가 부흥하는 줄 믿습니다. 어느 한 가정이 등록을 하면 각 부서 지도자들은 눈에서 빛이 나야지요. ‘저 성도의 나이가 한 50대쯤 되는 것 보니까 분명히 청년이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안내할 때에 거기에 벌써 대기하고 있어야지요. ‘혹시 중학교 자녀가 없습니까? 혹시 대학생이 없습니까?

관심의 끈, 사랑의 줄을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새로 오신 분들 오늘 여기에 누가 새로 왔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지금 저 뒷자리에 보니까 지난 달에 아이를 낳고 요양중이던 서문밀양 자매가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온 것이 보입니다. 할렐루야 ! 얼마나 감사해요. 목사의 머리 속에 아무개가 지금 아이를 낳고 친정에 가 있는 것이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어서 기도가 됩니다. 언제 그 분이 몸조리를 끝내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

우리 전도사님들, 지역장님들, 선교회장, 속장님들의 머리 속에 그런 사랑의 줄들이 꽉 차 있어야 합니다. 관심이 되지 않으면 연결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오늘 주님께서 줄을 잡으시는데, 사람의 줄이 개나 짐승에게 끄는 그런 물리적 줄이 아니라 사랑의 줄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당신을 자녀로 여기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줄이라 하시고서 거기에 설명을 붙였어요. ‘사랑의 줄로 너희를 이끌었도다.’ 오늘 한 영혼을 이끌수 있는 유일한 끈은 사랑의 끈인 줄 믿습니다. 이 사랑의 끈은 관심의 끈입니다. 1년을 기다리는 끈이고 10년을 기다리며 덮어주는 용서의 끈인 줄 믿습니다. 이 사랑의 끈에 우리가 먼저 주님 안에 붙잡혔고, 오늘 또 다른 영혼들을 사랑의 끈으로 이끌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성령께 붙잡혀서 오늘 여러분들이 주님의 자녀가 되었듯이, 또 다른 영혼들을 주님의 사랑의 줄, 성령이 인도하시는 그 능력의 줄에 이끌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 속에 저희들 새롭게 깨달음 받기를 원하고, 또 도전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며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랑하는 평안의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그 사랑의 줄에 붙잡힐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의 줄에 새로운 영혼들을 이끌수 있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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