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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의 메시지, 삶의 메시지” (고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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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메시지, 삶의 메시지” (고린도전서 11:1)

최근 미국 동북부에서 역사이래 최대의 정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정전사고 때문에 수십 개의 발전소가 순간적으로 멈췄고 약 오천만 명 정도가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려움으로 인한 낙심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일이 잘 풀릴 때도 교만하지 말고, 삶의 고난이 연속되어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앎을 삶으로 의식화, 체질화, 생활화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삶의 메시지는 변화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식의 증가가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증가를 위해서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삶의 변화, 인격의 변화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

변화는 겉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세와 안목이 변화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과거의 답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안목과 마음과 태도가 새로와져야 합니다

고린도는 당시 상업이 번성하고 재물과 인구가 많은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린도전서 1:4).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고린도 교회가 “...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口辯)과 모든 지식에 풍족”(고린도전서 1:5)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구변 즉, 말을 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구변과 지식은 풍족하였지만 삶의 변화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습니다. 지식은 지식에서 끝납니다. 지식의 풍족함은 삶의 변화로 나타나야 합니다.


둘째, 삶의 메시지는 실천에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린도전서 1:10). 말이 많은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하지만 삶의 실천은 많으면 많을수록 축복이 됩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고린도전서 1:12).

고린도 교회는 말만 무성한 것으로 인해 분파가 발생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교하면 지식도 충만하고 모자람이 없었지만 말의 열매, 삶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무거운 가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11:1).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삶과 생각과 말이 변화되기를 원하였고 그 지식까지 거듭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4:16).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혜로 성경 말씀을 잘 기록해서 그 필체는 웅장했지만, 그의 구변은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의 구변이 아닌 삶의 변화를 본받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자기를 변화시키고 이웃에게 기쁨을 주고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재설정하는 능력으로 삶이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고린도전서 4:19).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행하고 행치 하니하며”(마태복음 23:2~3).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에 대해 많은 지식이 갖고 있었지만 그 삶이 변화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르치는 자의 비극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하지 아니하며”(마태복음 23:4).


셋째, 삶의 메시지는 주님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이끄시는 도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도다”(고린도후서 5:14). 사도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닮기 원한다면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복음,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사명, 주님의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닮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현재 우리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향기가 우리의 삶에 나타납니다. 예수님 사랑에 앞서서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가운데 예수님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한복음 14:21).

  신앙의 본질은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능력과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사랑을 삶으로 고백합시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주님을 경배하며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그때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섭시다.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과 환경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고자하는 메시지를 견고히 붙잡읍시다. 그럴 때 우리는 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가정은 말만 많은 가정이 아니라 삶의 실력이 있는 가정으로 만듭시다. 우리 교회는 변화된 직장생활, 변화된 삶의 모습을 지역사회에 메시지로 던지는 건강한 교회로 만듭시다. 교회 최후의 메시지는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삶의 메시지가 되어 우리가 받은 말씀을 삶으로 옮겨놓는 참신앙인들이 다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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