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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스타일 (골 3:12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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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골3 : 12 - 17절
제 목 : 예수 스타일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와 충성이란 두 순례자가 허영이라는 도시에 이르렀을 때
허영의 도시 사람들이 저들과 같지 아니한 흰옷,
저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가나안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허영의 성에 성주가 조사관을 시켜서 저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조사를 하라고 합니다. 조사관이 묻기를
[ 너희들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인냐?
너희들은 어째서 그런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느냐? ] 고 묻습니다.
[ 우리는 천성을 향해 가는 사람들인데
다만 이 도시를 지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 라고 대답합니다.
언어가 다르고 옷이 다른 사람들
이 이야기는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말해 줍니다.

골3: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원리 즉 삶의 자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삶의 자세와 목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본능적인 죄성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성품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자세와 목적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누구인 것을 알고 바로 정의된 사람만이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1-2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들로서 위에 것을 찾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자신이 무엇하는 사람인가 정의가 되지 아니한 사람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즉 내 무엇하는 사람인가를 정의가 안된 직분자는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12절 [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 ] 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 즉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 란 말입니다. <2>
먼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심을 믿습니까?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택하신 목적에 눈이 뜨여져
택한 백성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에게 마세오 형제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용모가 뛰어나지도 않고 학식도 별로 없는데,
어찌하여 모든 이들이 당신을 따르고 당신에게 순종하기 원합니까?"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장 높이 계시는 분께서 그런 일을 하시고자 뜻하셨기 때문이지요.
그 분은 모든 사람들을 다 내려다보고 계시다가
그 거룩한 눈으로 마침내 나를 택하신 듯합니다.
가장 못난 인간인 나를 지명해서 놀라운 일을 성취하고자 하신 거지요. 나보다 더 천한 인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은 미천한 나를 택하셨고 그런 나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고귀한 신분과 부자와 잘난 사람과 그리고 높은 학식을 깨뜨리고자 하셨던 게 아닐까요? "
맞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택하시면 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의 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귀하게 주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 라고 합니다.
오늘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켜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거룩하게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거룩이 뭡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같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입니다
누가 그 분의 성품을 가장 잘 닮아가고
누가 그 분의 말을 따르게 됩니까?
바로 그 분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본래 이 호칭은 예수님께 사용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닮아 가는 삶을 사는 자란 말입니다.
즉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거룩한 자가 되었으면
삶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예수 스타일로 살아간다는 것 무엇을 말합니까?
[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 합니다.

서론에 말씀드린 천로역정 이야기 중 계속해서
허영의 성 조사관들은 기독도와 충성을 조사하다가 특별한 죄목이 없으니
[ 이들을 시장 안에 혼란을 일으킨 미친 사람들] 이라고 해서
옷에 더러운 것을 묻혀 우리 안에 가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하고도 기독도와 충성은
아주 온유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했기 때문에
시장 안에 몇몇 사람들이 그들 편이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입은 옷이 다르다고 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긍휼과 자비는 사랑입니다.
겸손과 온유는 자매입니다.
이 구절을 사랑과 겸손과 인내라고 줄여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는 사랑과 겸손과 인내입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예수 스타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스타일이 바뀐다는 것 아시죠?
영국 역사를 보면
바이킹의 후예들이 예수 믿고 젠틀맨이 된 것 있지요
마찬가지로 예수 믿고
예수 스타일로 바뀌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옷이란 자신을 위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은
하나님 앞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은 것같이 다른 사람도 용서해 주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입니다.
예수 스타일의 특이한 것은 바로, 용서와 화해라는 것입니다. <4>
지난 95년 세상을 떠들썰하게 했던 '지존파'중 한 사람인 김 현양이
자기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준 이재명 집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지난날 사회를 어지럽히던 살인자 김현양이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아껴 주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면
저 같은 죄인은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고 전해 주십시요. 이재명님이 나눠주신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조금 남은 생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야겠지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처음 붙잡혔을 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죄를 뉘우치지 않던 모습에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이들을 바꾸어 놓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용서와 화해의 복음 즉 사랑이었습니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이 돌려놓은 것입니다. 가족조차 그들을 외면하고 사회의 사늘한 눈초리가 그들에게 쏟아질 때
한 성도의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사형수를 의인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목회자에 목회에 가장 힘든 부분 가운데 한 가지가
교인들 중에 서로 반목할 때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교회는
교인들이 한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양 진영에 서서
서로 말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따로 예배를 드립니다.
말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흥회를 해도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는 제 한테 그 교회 권사님이 우리교회 부흥회 오지 마라고
막 협박 공갈 전화를 걸어오는 것 있지요.
왜? 은혜 받으면 먼저 사과해야 하고 화해해야 하니깐?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요1서4:7-8절에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예수를 왜 믿고 신앙생활을 왜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말 용서하기 힘드시거들랑
예수님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의 능을 부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복음은 용서와 화해의 복음임을 명심하세요.
오늘 성경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합니다. <5>
왜?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이기 때문입니다.
옷을 입었다 해도 띠를 매지 아니하면 곧 옷이 흘러 내려옵니다.
사랑의 띠로 단단히 맬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인정하것입니다.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가게를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날로 가게가 번창했는데 그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옆집 구멍가게들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게가 잘 되는 것이 옆 가게를 망하게 하는 것인줄 몰랐어요. 가게를 줄입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일 것 같아요."
그녀는 가게를 축소하고 손님들을 옆 가게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남게 되었고
그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이 바로 '빙점'이라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그분의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입니다.

요한 1서에서는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자세히 알고, 사랑을 이웃에게 표현하며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미우라 아야꼬처럼 이웃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사랑의 띠를 맨 그리도인의 모습이요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용서하고 사랑의 띠로 매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용서하고 사랑의 띠로 동여 맬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덜란드의 부흥 전도자 코리텐 붐 여사의 간증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나치 독일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때 코리 여사는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하겠으니 그 명령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그렇지만 하나님은 코리 여사를 보내기 원하셨고, <6>결국 그녀는 독일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간증을 마치고
교우들과 악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수용소에 있을 때 자신을 몹시도 괴롭혔던 간수가
저만치 앞에서 자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그녀의 마음에 들렸습니다.
“코리야, 저 사람을 사랑해라.”
‘하나님, 그것만은 못 합니다. 저 사람은 내 원수잖아요.’
하나님께서 계속 마음에 사랑의 감동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니? 너도 그를 사랑해라.”
그녀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주님을 정말 사랑했기에
말씀에 순종하기로 마음먹고 그가 앞에 왔을 때 그를 꽉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사의 마음에 평안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훗날 그 때처럼 깊은 평안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배반하고 타락한 인간에게 보낸 화해의 메시지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는 먼저 자신의 마음에 평강이 있고
그리고 그 평강을 나눠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
평강이 뭡니까?
<에이레네> 라 해서 구약의 샬롬을 말합니다.
샬롬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목 되면 만사가 다 형통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인인 내가 하나님과 화목된 것이 평강입니다.
이 평강이 임하면 나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기 작가 앙리 트로야트(Henri Troyat)는 톨스토이의 전기에서
톨스토이가 경험한 거듭남의 체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어느날 톨스토이가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지저귀는 새와 싱싱한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톨스토이는 온 몸에 힘이 솟고 <7>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목과 새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토록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연과 내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평강이요 샬롬입니다.
이 샬롬 때문에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고
또 우리 모두가 이 샬롬의 몸 즉 가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샬롬이 내 마음에 임하면
감사와 찬송은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의 사람이 되느니라고 고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형편과 여건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샬롬을 이루면 내 마음에 샬롬이 있고
하나님 앞에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수 스타일이란
사랑과 겸손과 인내로 옷 입고
용서와 화해의 삶을 통해 사랑의 띠를 매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그 삶에 하나님의 샬롬이 이뤄질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1)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합니다.
세상 그 어떤 지식 정보 나아가 사상보다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은 44세였습니다.
가장 오래 산 왕은 82세까지 산 영조였고,
그 다음은 태조가 73세까지 살았고, 세종대왕은 5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왕들이 장수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보약 중독이었다고 합니다.
불사약을 구하던 진시항도 49세 밖에 살지 못하였습니다.
요사이도 건강식품 남용시대인 것 같습니다.
T.V 체널만 틀면 건강식품 즉 보약 선전이 왜 그리 많은지 <8>
보약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44살 밖에 못삽니다.
그러나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저 밥 맛있게 잘 먹는 것입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교인이 되는 비결이 무엇인냐?
그저 이 강단에서 짓는 밥 잘 먹는 길이 상책인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생활에 지혜가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철새연구가들의 관찰에 의하면
계절이 바뀔때 마다 이동하는 철새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이 이동하여 서식하는 곳을 살펴보면
신비로움과 경이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넓은 하늘을 여행하는 철새가 어떻게 방향을 정해 이동할 수 있을까? 그들의 나침반은 무엇일까?
철새는 태양 궤도와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이루는 각도로
자기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갈 방향을 잡는다고 합니다.
햇빛을 느낄 수 있는 눈과 이에 반응하는 뇌 속의 특별한 조직이
철새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밤에 이동하는 새는 태양 대신 별자리의 위치로 이동 경로를 결정합니다. 철새들이 이렇게 이동하는 것은 학자들은 모르니 본능이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실 때 그런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이런 지혜가 있는 줄 믿고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삶이 되식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으면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합니다.
교사가 되고 순장이 되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특히 예수 스타일의 삶을 유지하려면
말씀과 함께 찬송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6절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 고 합니다.
여기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정확히 구별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시는 구약의 시편, 찬미는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신령한 노래는 감동 받아 부르는 영적인 노래라 구별합니다만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모두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의 특징은 <9>
1) 영적이어야 하고 2)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찬미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늘 입술에 찬송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면서 너무 세속적인 소리를 너무 많이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찬송이 사라진다는 것 주의 하셔야 합니다.

한 은혜 받아 찬양에 불이 붙은 청년이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에서 철책선 근무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유행가를 부르는 것은 죄라고 교육받았기에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행가를 전혀 모르고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에 입대하여 철책선 근무를 하면서 심각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북한에서 보내는 대남 방송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방어 방송이 주로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는 보초근무를 서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동백아가씨가 나오더랍니다.
사람은 이처럼 가까이하는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흔히 찬송은 우리들의 영적 민감성을 재는 척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만큼 찬송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도
찬송의 콧노래가 흘러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려고 하고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입술에는
항상 찬송이 있다는 것 아셔야 합니다.

그럼 왜 찬송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찬송하는 시간은
마음의 날을 가는 시간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나무꾼 친구 둘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어갑니다.
한 사람은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숨을 돌려가면서 일했습니다. 어느덧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어 두 사람은 결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쉬어가면서 일한 친구가 더 많은 장작을 장만했더랍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고개를 가우뚱 거리면서 투덜거렸습니다. <10>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왜 자네 것이 더 많단 말인가?"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웃으며 설명했습니다.
"나는 10분씩 쉴 때마다 도끼 날을 갈았다네."
아무리 바쁘다 해도 자신의 삶의 날을 갈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앞에 노래 부를 시간이 없는 삶
결코 수고한 만큼 곡식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1)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예수 이름으로 합니다.
1988년 뉴욕 마라톤 대회 때
레이건 대통령에게 찬사를 받은 여성이 있습니다.
장애자로 태어나 걷지도 못했던 <린다 다운>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녀가 목발로 양쪽 겨드랑이를 의지하고
42,195km 전 코스를 11시간에 주파한 것입니다.
목발과 함께 온 몸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달리는
린다를 바라본 거리의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린다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에게 강한 의지와 인내심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나와 동행해 주셨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
의인과 악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입니다.
악인은 중심이 자기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중심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마치 삼성 제품은 품목이 무엇이든간에 삼성으로 통하듯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Made in God 이요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2)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지아 주의 한 시골학교 교사인 마사 베리(Martha Berry)는
당시 부호인 헨리 포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학교를 위하여 천 달러를 기증해 주시면 좋은 피아노를 구입하여 어린이들을 교육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간곡한 사연이었습니다.
그런데 회답 속에는 1 달러 만 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베리 선생은 그 회답을 보고도 모욕감을 느끼거나 절망하지 않고<11>
1달러를 가지고 땅콩을 사서 땅콩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해마다 잊지 않고 포드에게 수확의 일부를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5년 후에는 피아노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감동한 포드는
처음에 부탁한 금액의 열 배인 만 달러를 보내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방법입니다.
적은 것이지만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바램보다 열배 백배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다 산 후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설교 잘하는 목사? 헌금 많이 한 부자 장로? 인물 잘난 회장 권사? 아니지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억합니다.

예수 스타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때
사랑과 겸손과 인내의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용서와 화해로 사랑의 띠를 띠고 살아갑니다.
예수 스타일로 살아가는 성도는 그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그 속에 말씀이 풍성히 거합니다.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감사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내일의 가족 여러분
예수 스타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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