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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2의 해방 (갈 5: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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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해방 (갈 5:1,13-15)

1. 해방의 기쁨

1) 기성세대들의 감격

“휘날리는 태극기의 물결 속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고 함성처럼 울려퍼지는 애국가의 멜로디… 민족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 시적 표현은 58 년 전 1945년 8월 15일 갑자기 찾아온 8․15 해방의 기쁨을 묘사하는 한 구절로, 제가 저술한 한국 교회사 제12장 교회의 해방과 재건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악한 일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난 광복-해방의 기쁨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감격, 압박과 설움을 당했던 기성세대들이 느끼는 특권과 감격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2) 겨레 전체와 기독교인들의 기쁨

이 해방의 기쁨은 2천 5백만 배달겨례 전체의 기쁨이면서, 특히 70만 기독교인들의 기쁨이었습니다. 민족의 해방인 동시에 특별히 교회의 해방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각별한 미움과 고통을 당해야 했고,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잡혀가고 매를 맞아야 했으며, 심지어는 투옥․고문․순교까지 당해야 했기 때문에…

2. 해방 기념주일

1) 부산 영락의 기념예배

바로 지난 8월 17일 주일이 금년도 8․15 해방 기념주일이었지요. 본 부산 영락교회에서는 예년과 같이 광복 기념주일로 지키면서, 낮예배 마지막 축도 전 송영을 주기도문 노래 대신 애국가를 부르며 뜻깊이 지킨 것을 저는 그후 주보를 통해서 알고, 우리 부산 영락교회는 국가의 기념주일도 이렇게 잘 지킬 줄 아는 참 좋은 교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았습니다.

2) 청도 남산 기도원의 기념예배

저는 해마다 여름 휴가로 올라가는 청도 남산 기도원에서 지난 주일 낮 11시에 김 종도 원장 목사님의 인도로 역시 8․15 해방 기념주일을 지켰는데, 애국가는 부르지 않았지만, 그 대신 우리 교회에서 하지 않은 교독문 70번 광복절을 교독하면서,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리다.”

이런 내용을 뜻깊이 음미하면서, “예수님은 해방의 주시다”라는 제목의 설교 말씀으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8․15 해방이 이루어진 3대 요인을 첫째는 하나님은 은혜요, 둘째는 조국 선열들의 수난이며, 셋째가 연합국의 승리라고 설명하신 원장 목사님의 견해에 저는 동감이며 매우 적절한 평가라고 생각됩니다.

3. 흐르는 물과 같은 역사

1) 과거의 사건

역사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58 년 전 8․15 해방이란 물줄기가 한반도를 휩쓸고 흘러 내려갔으므로, 이미 하나의 과거 역사사건이 되고 말았으나, 흘러간 물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고 바다로 흘러 내려가 그 본질 자체가 남아 있는 것처럼, 8․15 해방 자체는 과거에 흘러간 지난날의 역사이지만, 그 해방의 영향, 효과, 또는 결과는 어엿이 세계라고 하는 광활한 바다 속에 그 본질이 살아있어, 현재의 역사를 이룩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2) 현재의 결과

작년에는 우리 고장 부산에서 월드 컵이라는 국제행사가 진행되어, 여태껏 16강 한 번 못돼본 우리 한국이 16강을 뛰어넘어 8강, 4강이라는 신화적 대 성과를 이룩하더니, 금년에는 바로 지난 21일 저녁 이웃 도시 대구 달구벌 월드 컵 경기장에서, 세계 169 개국에서 모여온 7천여 명의 선수단이, 북한 응원단 303 명을 포함한 6만여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무당당히 입장하므로, 2003년 22회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화려하게 펼쳐진 것을, 성도 여러분이 다 T.V.를 통하여 관람하신 줄 압니다.

그 역사적인 입장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한국 선수단에 집중되었지요. 169 개국 가운데 마지막인 168번째로 코리아(Korea)라는 임시 국명이 새겨진 피켙(picket)을 따라, 남북 선수단 322 명 (남 197, 북 125)의 대 인원이 동시에 손에 손을 잡고 통일의 행진을 펼쳐 빨간 트랙(track)으로 들어서자, 경기장을 가득 매운 6만여 관중은 떠나갈듯한 함성과 박수를 보내며 순식간에 감격의 물결에 휩싸이었던 것이 아닙니까?
밝은 남색 상의와 베이지(beige) 하의로 단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대회 최대규모의 선수단 322 명은, 한민족 한핏줄의 진한 동포애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화합의 행진을 벌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온전히 8.15 해방의 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36년 저 유명한 독일 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경주에, 평북 신의주 출신의 한국 청년 손 기정 선수가 우승하여 힛틀러 총통과 악수를 하였는데, 그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본의 일장기가 달려 있었던 사실은 너무나 기막힌 역사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평양 사범학교 졸업반인 5학년에서 전교 생도들과 함께 그의 보고연설을 직접 들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 해의 우승 후보자였던 미국 선수 자바라가 선두를 달렸답니다. 손 선수는 이를 악물고 ‘저 놈 자바라를 잡아라 잡아라’ 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달리고 또 달려 마침내 그 선수를 제치고 우승을 했다는 것입니다.

떳떳한 한국 사람의 쟁취한 승리의 월계관이 일본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회상하면서, ‘88년의 성공적인 서울 올림픽과 작금년의 연속적인 양 세계 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8.15 해방이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며 진실로 감개무량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4. 불완전한 해방

8.15 해방의 3대 요인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확하게 설명하신 김 종도 목사님께서는, ‘6.25는 8.15의 잘못된 해방의 결과’라는 사실을 분명히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제가 아는 대로 보충적으로 말씀을 좀 강론하고자 합니다.

8.15가 잘못된 해방이란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해방 자체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요, 애국 선열들의 수난과 희생의 은덕이며, 연합군의 피흘려 싸운 결과로 이루어진,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진실로 감사하고 대단히 고귀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남북 통일의 완전한 해방이 되지 못한 매우 유감스럽고 아쉬운 해방이었다는 그런 뜻이지요. 이것 역시 옳게 판단한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요 평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론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 윌슨은(Woodrow Wilson<1856-1924>, ‘한 나라의 독립은 그 민족의 피흘려 싸운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민족 자결론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발표한 약소민족을 위한 선언이었습니다.
이 유명한 정치가의 선언으로 교훈을 얻고 자극을 받아 한국 민족이 분연히 일어나 용감하게 또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으켰던 민족 자결운동이 곧 1919년의 기미(己未) 만세운동이었던 것입니다. 1919(기미)년 3월 1일을 기하여 2,000만 대한 민족이 일제히 일어나, 일본 제국주의의 간악한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높이 외쳤던 것입니다.

2) 3․1 독립 만세운동

이 거대한 운동은 민족 역사에 길이 빛날 애국운동의 일대 거사로서 우선 정치적 사건에 속하는 것이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바가 크므로 당연히 한국 교회사에도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그 근본 원인이 물론 왜적의 극심한 탄압과 한국 민족의 애국심에 근거한 것이지만, 바야흐로 부흥 일로를 달리고 있는 한국 교회 신도들의 신앙운동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약한 자를 도우시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통해서 각성, 권기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지도자 33 인 중 기독교인이 (길 선주, 이 승훈 등) 16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며, 이는 결국 약소 한국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적 구원과 아울러 정치적 자유도 얻게 하시려는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3.1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6 개월 여 계속되었으며, 참가자가 136만 명, 피살자가 6,670 명, 피상자가 14,600여 명, 투옥자가 52,720 명이었습니다. 검거 당한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고, 피해를 입은 중에 심한 부분이 교회였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을 예배당에 모아 놓고 집단적 학살을 강행한 야만적 사건도 있었습니다.
악독한 일본이 총칼로 이 애국운동을 진압하고 당장 독립은 허락해 주지 않았으나 세계적으로 미친 영향은 대단히 컸던 것입니다. 그 때까지 일본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자가 되므로 철도가 가설되고 모든 생활이 안정되어 한국 민족은 일본의 통치를 환영하고 있다고 전 세계에 선전해 왔던 것인데, 이 독립 만세운동으로 일본의 선전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탄로되고, 한국 민족은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는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되므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연합국의 승리와 함께 한국의 자주독립이 성취된 것입니다.

3) 카이로 선언과 얄타 협정

그러나 우리 한국 민족의 윌슨의 약소민족 자결주의 실천은 3․1 독립 만세운동으로 대중운동은 일단 끝났고, 안 중근 의사를 비롯한 애국 열사들의 개별적 또는 국부적 항일투쟁은 적지않게 있었으나, 3.1 운동과 같은 대대적인 민족운동은 전개하지 못했지요. 바꾸어 말하면 왜적 일본을 향하여 선전을 포고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피흘려 싸우기까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악랄하였고, 그렇게 악독하고 강경한 왜적을 상대하여 단독으로 싸울만한 능력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도리어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의 용병으로 연합국을 상대로 싸워야 했고, 일반 한국 국민들은 노력 동원으로 후방에서 전쟁에 수반되는 잡무를 정리하므로 일본을 도와 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군사적으로 보아 완전히 일방적으로 연합국의 힘으로 해방이 된 것이기 때문에, 전후 처리도 우리 뜻대로 못하고 완전히 연합국의 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한국에 대한 전후 처리에 직접 관련된 열강의 2대 결정이 카이로 선언과 얄타 협정입니다.

(1) 카이로 선언

세계 제2차 대전의 종국이 가까워 옴에 따라 일본의 패전과 함께, 한국과 대문을 포함한 해외 영토들을 결국 잃게 되리라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Roosevelt) 대통령, 영국의 쳐칠(Churchill) 수상, 및 중국의 장 개석(蔣介石) 총통이 함께, 1943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에 모여, “앞서 말한 3대 강국은 한국 민족이 처하고 있는 노예상태를 깊이 생각하여 머지않아 한국이 자유롭게 독립하리라는 것을 결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후 상태에 대한 이 첫번 공식 선언은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의에서 다시 확인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열강이 큰 잘못도 저질렀는데, 그것이 곧 얄타 협정이었던 것입니다.

(2) 얄타 협정

미국, 영국 및 쏘련(스탈린 수상)의 세 대표들이 1945년 2월 얄타에 보여 대전의 종식과 함께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여 본국으로 돌려 보내기 위하여, 쏘련군이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하고, 미군이 그 다른 절반을 차지할 것을 허락하는 비밀 협정을 체결하였던 것입니다. 이 얄타 협정에 따라 8.15 해방 후 쏘련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오고, 미국의 병사들이 조금 후에 주로 인천을 통하여 남한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두 나라의 방문객들을 해방자로 갈채, 환호리에 받아 들였고, 북위 38도선을 일본인 포로의 인도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단순한 경계선이라고만 생각하였지요. 본래의 의도도 그런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현실상 큰 국가적 비극의 선으로 일단 영구화되어 오늘까지 오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다른 야심을 품지 않았으나, 쏘련은 오랫동안의 숙원인 남진정책 실현의 기회로 삼을 생각으로 김 일성 괴뢰정권을 내세워, 결국은 5 년 후에 조국의 일대 비극인 6.25 동란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역사적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6.25는 8.15의 잘못된 해방의 결과라는 말도 나오게 된 것이지요.

5. 제2의 해방

여기에서 저는 58 년 전의 8.15 해방을 제1의 해방으로 보고 이제 앞으로 남북통일의 완전한 해방을 제2의 해방이라고 명칭을 붙여, 이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다고 부르짖어 강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1) 필연적 성취

남북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 뿐 아니고 북한 사람들도 한결같이 통일을 원하고 또 될 것으로 믿고 통일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인심이 곧 천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곧 우리 사람들 마음 속에 반영된 것이란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여러 세기 동안 동일언어, 한 풍속, 그리고 한 운명의 공동체로 함께 살아 왔습니다. 저들은 진실로 민족적으로․문화적으로․경제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한 실재입니다. 현재의 인위적 남북의 분단이 오래 갈 수가 없어요. 반드시 철폐되고야 말 것은 분명한 필연적 사실입니다.

2) 한국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하나님이 우리 배달 겨레에게 주신 아름다운 사랑의 동산입니다(찬송가에 있는 대로). 아침의 고요한 나라,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국토와 사 계절(四季節)의 조화있는 순환, 그리고 때를 따라 생산되는 맛좋은 오곡백과와 해산물 등 진실로 경탄할만 하지 않습니까?

유구한 반만년 역사 속에서 강대국들의 수많은 침략과 공격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보우하심으로 약소 민족으로서 그 명맥을 연면히 보존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근세에 와서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된 이래 역사상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교회의 신속한 부흥 성장을 이룩하여, 현재 신․구교를 합하여 5만 교회, 200만 명의 신도를 산하며, 1만여 명의 선교사를 세계 각국 여러 민족에게 파송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동방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였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의 결과 일제로부터 8․15의 해방을 주시고, 6.25의 침략자 공산군을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경찰군을 동원하여 완전히 격퇴하여, 국민 생산 2만 불에 육박하는 오늘의 번영을 가져오게 하신 하나님의 한국에 대한 각별하신 사랑과 계획을 뚜렷히 읽을 수가 있습니다.
과거 제1의 8.15 해방이 정치적인 해방으로, 국가와 민족의 육신적 사회생활을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하여 자유롭게 하신 남북 분단의 불완전한 해방이었다면, 앞으로 있을 제2의 해방은 종교적 해방으로, 우리 대한민국 민족들을 공중에 권세 잡은 자 악령과 사단의 세력에서 자유하는 영적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며, 남북의 통일이 성취되는 완전한 해방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6.25 동란을 통하여 이북의 그리스도인들과 성직자들이 대거(大擧) 남하하여, 제주도로부터 부산,대구,서울 등지를 망라하여 비교적 교세가 취약(脆弱)하던 남한 일대 도시와 농어촌에 부흥을 일으켜 복음화하고, 앞으로 3.8선을 열어 일찍이 한국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선천,신의주 등 북한 전역의 교회문을 열도록, 남한의 수많은 교역자들과 남아 돌아가는 신학교 졸업생들을 그야말로 대거 북한으로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복음화 계획을 살펴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3) 기독교인들의 사명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지사가 될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범죄를 징계하시기 위하여 70 년 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사랑하여 민족의 범죄를 회개 청산케 하시기 위하여 적어도 70 년 정도의 수난기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우리 민족의 하나님께 대한 죄가 많답니다. 본래 이방 나라의 하나로 재래로부터 토속적인 미신 행위가 어떻게 많은지 몰라요. 이만큼 개명한 오늘 현재에도 무당과 점쟁이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박에도 공산당과 일반민중이 서로 살상하고 복수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린 죄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제1의 8.15 해방 후 58 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12 년이 남아 있습니다. 예언자가 아닌 우리들이 꼭 70 년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70 년을 표준하여 그 안팎으로 제2의 해방이 될 것을 기대하며, 한국 기독교인들의 간절한 기도와 우선 남한 복음화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부산 영락의 교우 여러분, 이 막중한 사명을 우리부터 다하기 위하여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힘써 기도하며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고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최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합시다. 오늘의 성경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하신 것은 종교적인 영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도록 복음신앙 위에 굳게 서서 13절 말씀대로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는 방종을 경계하며,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줄 알고, 민주와 공산의 상반된 이념 투쟁으로 분열되어 피차 으르렁거리며 팽팽히 맞서 있는 오늘의 긴장상태를, 하루 속히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지혜롭게 지양 극복하고 국토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힘써 기도하며 민족 복음화에 앞장서는 본 부산 영락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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