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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닛시 /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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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 / 출17:8-16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는 모든 분들께 이 예배를 통해서 사모하는 분량으로 충만케 채워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여타 피조물보다 우수하고 존귀하게 창조하신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 이 사실 알아야 합니다.  전능한 자로 창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유한한 존재요 제한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무한자가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또한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 유한자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인간이 무한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고, 급기야는 정녕 죽게 되는 운명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환경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실패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지혜나 능력은 탁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 탁월한 능력으로 과학과 문명을 발달시키고, 그래서 날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계속적으로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인간 능력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a.지난 19일에는 영국의 BBC방송은 앞으로 20년 안에 인간이 달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의(유럽 우주기구-베르나드 포잉 박사)말을 인용해서 보도한 바가 있습니다.

b.예전에는 암에 걸리기만 하면 절망적이었지만, 그러나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웬만한 암은 아주 말기에 발견되지 않는 한 치료되는 확률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후면 암도 정복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c.냉동 인간 얘기도 나오고, 인간의 수명을 120세 정도로 연장시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하여간 인간의 과학기술은 가히 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곳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가히 인간의 능력이 무한정 발전하고 있t급니다. 발전에 고속 예진을 달아 놓은 것 갔아요. 이 발전을 아무도 저저하지 못할 정도로 하여간 인간의 과학기술은 눈부신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오만해 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인간은 넉넉히 꿈의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이 사실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인간은 애초 창조될 당시부터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신일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 없는 인간 낙원을 건설해 보려고 하는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a.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 한 번 낙원을 건설하고 잘 살아 보자고 하는 허황된 꿈을 실현해 보려고 했던 최초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b.바벨탑은 또 무엇입니까? 하나님 계신 곳까지 성과 대를 쌓아 하나님과 한 번 견주어 보고, 하나님 없는 인간문화를 건설하자고 하는 시도였습니다.

c.먼 옛날의 이야기 말고 근자에 있었던 사건을 예로 들자면, 공산주의가 뭡니까?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면서, 주의 종들과 경건한 성도들을 잡아 죽이고, 교회당을 무기창고 만들어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 없는 무산자의 낙원을 건설하자는 것 아닙니까? 피의 숙청을 통하여 이상세계를 실현해 보려고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공산주의 깃  발을 쳐들고 야심차게 출발했는데, 1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실패를 자인하고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d.오늘날 하나님이 없다하는 무신론자들의 실상을 보십시오. 멀리 볼 것 없이 하나님이 없다 하는 무신론 정권(북한)과 기독교의 부흥을 이룩한 남한 사회의 실상을 손바닥에 놓고 비교해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저들을 돕지 아니하면 저들 정권이 무너질 지도 모르는 절박한 역사의 실체를 우리가 똑똑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의 실례를 들어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과학을 자랑하고, 문화를 자랑하고, 그 영역을 한 없이 넓혀 가면서 하나님 없는 이상 국가를 실현해 보려고 교만을 떨어도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은 먼지와도 같고 검불과도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한국 굴지의 재벌의 불행스런 말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재산, 하나님 없는 성공, 하나님 없는 명예의 허무함을 대변해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기도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가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겁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다. 기도는 영적 양식을 공급 받는 젖줄이다.」여러 가지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겁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런 정의를 내려보고 싶습니다. 「기도는 인생을 승리케 하는 능력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 행진하던 중에 아말렉 족속과 한 판의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해 보면 이 싸움은 하나마나 결과가 뻔합니다. 아말렉은 전쟁에 능한 족속인 반면 이스라엘은 전쟁에 전자도 모르는 백성들입니다. 본문에는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 볼 수 있습니다.

a.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훈련된 군사가 있었을 리 만무입니다. 400년 이상을 노예 생활, 종노릇만 했지 무슨 군사 훈련을 했겠습니까? 그야말로 오합지졸입니다.

b.전쟁에 나가려면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무슨 무기가 있었겠습니까? 학자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즉 애굽에서 나올 때 그동안 수고해 준 대가로 무기를 받아 가지고 나왔을 것이다. 상상해 보십시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흔쾌히 내 보낸 것입니까? 아니지요. 장자가 죽게 되는 무서운 재앙이 임하게 되니까 어쩔 수 없어서, 내보내게 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뒤 쫓아 왔는데... 무기를 주어 내보낼 리 만무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애굽의 군인들이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기를 수거했을 것이다.」이것도 또한 코메디 같은 상상입니다. 사람만 빠져 죽고 무기만 바다 위에 동동 떠올랐겠습니까? 넌센스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광야에 나와서 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다.」이것도 또한 무리한 상상입니다. 무기를 만들었다 치십시다. 얼마나 무기다운 무기를 만들었겠습니까?



이러한 이스라엘에 비하여 아말렉은 상당히 난폭하게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음을 성경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25:17- 입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아말렉은 아주 강퍅하고 야만적이고 잔인했습니다.

a.고대 아랍의 전쟁 규칙으로는 전쟁에 적합하지 않아 뒤떨어진 자들은 살려주어야 하고, 심지어는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b.그런데 저들은 피곤하고 병든 뒤쳐진 노약자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수 없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습니다.

c.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잔인하기에 이를 데 없는 자들이었다. 이런 자들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애당초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싸우나 마나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고 하는 말이 우리의 옛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보나 마나입니다. 잘 훈련되고 난폭한 군사들과 대항하여 싸우는 이스라엘의 모습, 아마 호미와 괭이를 들고 나가 싸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객관적인 전투력을 가지고는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정쟁에서 저들이 승리했는데, 그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모세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팔이 아파서 손을 내리면 후퇴하고 손을 들고 기도하면 전진하고,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부축하여 잡아 주어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그랬더니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의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1)전쟁의 승리의 원동력은 전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됩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a.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의 장면을 생각해 봅니다.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집니다. 칼과 방패도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물맷돌 5개를 들고 나갑니다. 그가 골리앗과 맞서서 하던 말이 이것입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b.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투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성을 돌았더니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세상을 아말렉과 같은 무섭고 잔인한 현실에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모두 실감하는 것입니다만, 인생살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은 재벌 총수의 죽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인생은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힘들어 죽겠다. 좋아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재미있어 죽겠다. 재미없어 죽겠다. 바빠서 죽겠다. 할 일 없어 죽겠다.」- 이래도 죽겠다 저래도 죽겠다. 온갖 죽겠다는 것뿐입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철학적인 언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요 인생은 이래도 죽겠고 저래도 죽겠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기껏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해 보려고 하는 무기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나가 싸우려 하는 무기, 호미, 괭이 정도 밖에는 변변한 무기가 없습니다. 즉 호미나 괭이 정도를 가지고 인생을 성공시키려 하는 우리들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해 보나 마나 실패입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10명의 보고가 무엇입니까? 『저들에 비하여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지혜를 자랑하고 능력을 자랑하지만 기껏 메뚜기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것이지요.



2)모세가 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적을 제압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은 나가서 싸우고 지도자 모세는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랬더니 이기게 되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려 인생을 승리케 하는 능력이다.」 그래요. 인생은 전능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은 결국에는 빈손입니다. 허무함입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에 도취되어 스스로 속아서는 안 됩니다. 지난번 재벌 총수가 사망했을 때 매스컴은 그를 가리켜 『가난한 재벌』이라고 표현하여 소개를 했습니다. 저는 참 의미 있게 그 사실을 음미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재산은 결국에는 가난한 재벌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로구나 하나님 없는 성공도 역시 결국에는 실패한 성공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로구나!」 서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나님 없는 성공을 꾀한 자들, 지금 저들의 실상이 어떻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없는 승리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내게는 하나님 없는 승리를 이룩할 능력이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모세는 이 비밀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을 전쟁터에 내 보내고 자신은 산에 올라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기도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여기 이 목사를 여러분의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여기 목사가 잘 났건, 못 났건 어째든 여러분의 영적인 지도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목사가 여러분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필연적으로 싸워야 만하는 이 전쟁터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해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목사를 극진히 사랑해 주시고 대우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사랑과 대우를 받으며,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하여 대신 돈을 벌어 드리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돈 버는 일이라면 여러분들이 저보다 훨씬 전문가들입니다. 제가 출세하고 높이 올라가서 여러분들을 하나씩 끌어 올려, 낙하산 인사해서 모두 한 자리씩 앉혀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해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멈춘다면, 기도하지 아니하고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사는 목사라면 저는 삯꾼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해 왔습니다만, 근자에 더욱 제가 여러분들,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또 결심하게 되었는데, 더욱더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잘 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고, 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어서 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촌이레교회의 목사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고, 또 제가 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3)그 다음, 모새가 인간인지라 팔아 아팠습니다. 자연히 손이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돕는 자(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저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제 팔을 좀 붙잡아 주십시오. 때로는 인간이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꾀도 납니다.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이 제겐들 왜 없겠습니까? 외롭고 쓸쓸하고 섭섭한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저라고 왜 자존심이 없으며, 상처를 안 받겠습니까?



*용서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제는 온 종일 이런 생각이 제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하나님 따라가기 힘들고, 사람 비위 맞추기 힘들구나.」 제 어머님하고 어제 전화 통화 하면서 「어머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요즘은 참 목회가 만만한 것이 아니로구나. 힘들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그랬더니 우리 어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하나님 비위 맞추는 것은 원칙이라고 있고 일관성이라고 있지, 사람 비위 맞추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니 한도 없고 끝도 없더라.」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모세가 인간인지라 팔아 아팠듯이, 여기 목사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제가 아무런 잡념 없이, 피곤을 느끼지 아니하고 여러분들의 영육간의 승리를 위하여 손을 높이 들고 기도에 전념하도록 저를 좀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도와주시느냐?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은 것처럼 제 팔을 붙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피곤하지 않도록, 꾀가 나지 않도록, 나태하거나 게을러지지 않도록 제 팔을 꼭 붙잡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 말씀드립니다.

매일 밤 10시부터 11시까지 한 시간 동안 저와 함께 교회에 나와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하고 함께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 모든 식구들을 위하여,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마지막 때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을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살벌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위기입니다. 괜찮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호미, 괭이 들고 날뛰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척 해 봐야 메뚜기 정도 밖에는 되질 않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붙잡아 주시고 도우시고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닛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인생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나 「여호와 닛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하고 함께 이 기도의 대열에 참여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하고 함께 이 승리의 감격을 경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제 팔을 붙잡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새 일을 시작하실 것이며, 우리 모든 식구들에게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닛시」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승리케 하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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