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실패를 딛고 승리의 길로 / 수 8:1-9

  • 잡초 잡초
  • 745
  • 0

첨부 1



제목 : 실패를 극복하라.
본문 : 여호수아 8:1-9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증언과 우리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삼마"라고 고백합니다.  질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를 고백합니다.  언제나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여호와 이레"를 고백합니다.  평안을 주시는 "여호와 살롬"을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서 이스라엘백성이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체험적으로 고백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닛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끊임없이 보고 느끼며 고백하는 것은 삶 속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며 전능하심으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승리하며 살기를 명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승리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의 보고서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이기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서 이기는 삶을 살다가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여호수아는 약속된 땅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승리를 누려야 할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르쳐주시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날마다 승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의 사건을 보면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7장의 아이성의 사건은 승리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승리하는 백성이 아니라 패배하는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전진하는 백성이 아니라 후퇴하는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오늘 7장의 모습과 오늘 읽은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실패는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귀한 인생을 살다간 하나님의 사람들도 모두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다윗도 삶 속에서 여러 번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들어간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의 종 엘리야도 차라리 죽고 싶다는 절망의 순간까지 들어간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도 많은 실패의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아이성의 패배와 같은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위대함은 실패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실패를 잘 극복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들의 실패를 감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승리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스스로가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과거의 삶의 수많은 실패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실패의 모습이 과거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백하는 것과 같이 "전에는" 잘못된 삶을 살았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이며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입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 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세상에서 승리한 많은 사람들의 이면에는 너무나 많은 실패가 뒷받침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자의 위대한 발명뒤에는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실패가 있었습니다.  아시안게임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의 건강함과 날렵함, 그들의 재능을 부럽습니다. 물 속에서 고기처럼 행동하는 수영선수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10초대에 100미터를 달리는 선수를 보면 놀랍습니다. 

과녁의 정 중앙을 그대로 맞추는 사격선수와 양궁선수들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모든 모든 선수들이 겪었던 수많은 실패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아마도 잘 알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제까지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 달리기 선수도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수영선수도 처음 헤엄을 배울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것입니다.  야구선수도 처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방망이는 공에 맞았나요?  강타자들, 홈런을 제일 잘 치는 타자는 자주 스트라익 아웃도 당했지요.  최고의 선수들도 수많은 실패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아이성과 같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실패가 문제가 아닙니다.  실패를 대하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앉고 다시 일어난 사람들의 특징은 실패를 인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일을 통하여 보다 나은 길로 가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반복된 실패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실패는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해결하기 위하여 실패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실패를 인정하고 새롭게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정신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되고도 유교의 정신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실패를 감추는 사람과 실패를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를 겪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롭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간은 민족에게 문제가 닥쳤을 때에도 감추려고 하였습니다. 실패를 감추려고 한 것입니다.  감추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유교문화는 실패를 감추려고 합니다. 한국의 문제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하여 반복되는 재해를 당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와우아파트의 붕괴에서 실패를 감추었기 때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독교문화는 실패를 살리는 문화, 회개와 갱신의 문화, 십자가 신앙은 실패를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앞에 자신의 죄를 들어 내어 놓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앙은 실패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드러내 놓고 새롭게 출발하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어 놓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 놓지 못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실패를 감추려는 것이다.  외식합니다.  외식과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문제가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아간의 죄가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억지로 끌려와서 내려 놓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드러내어 놓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한 번의 실패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영원한 패배자는 남의 탓을 합니다.  한 번의 실패자는 솔직히 사과하지만 영원한 패배자는 핑계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청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과감히 버리는 것입니다. 방향의 전환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둘째로,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성의 실패는 영원한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도전하여 승리로 바뀌었습니다. 아이성은 패배한 성이 아니라 두 번 도전한 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로 우리를 영원히 옳아메지 않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놓는 것만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아간의 죄를 드러내어 놓으신 것은 정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이스라엘백성에게 승리를 주기 위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씻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죄를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핍박하는 사울을 부르심도 바울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새롭게 거듭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진정한 실패자의 특징은 한 번의 실패와 불행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리스도도 정죄하지 않는 정죄를 스스로 하면서 더 깊은 죄악에 빠집니다.  더러워진 옷을 빨려고 하지 않고 더 더럽게 입습니다.  한 번의 실패로 자기 비난과 자기 학대의 삶을 살다가 인생을 포기합니다.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많은 실패자에게 용기를 주어 다시 일어나게 했던 로버트 슐러목사님은 용기라는 지우개로 실패의 공포를 즉각 지우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마음의 자세를 가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 실패란 당신이 실패자란 뜻이 아니라 아직 성공자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패란 당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패란 인생을 허비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새 기분으로 도전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실패란 이제 포기하십시오’하는 의미가 아니라‘더욱 노력하십시오’하는 의미이다.  실패란 이것으로 끝이야 하는 의미가 아니라 별도의 새로운 것에 도전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 승리의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다. 실패하여 주저앉은 여호수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이성에서의 실패가 가나안전쟁의 패배는 아니었습니다.  성공을 향한 과정이었습니다.  죄를 발견하여 청산하게 하시고 다시 전진하게 하시었습니다. 
수 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수 8: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실패의 늪에서 벗어나라고 권하십니다.  실패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일어나라.  실패에 늪에 빠져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출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살다가 여러 가지 면으로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 있어도 그것으로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인생에서 실패한 실패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 때 주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십니다. 여인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심이 아닙니다. 주님도 그녀가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용서하시며 새롭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실패자의 실패를 용서하십니다.  그렇다고 죄를 덮어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해결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다시 죄를 범치 말라는 것입니다.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성공으로 만드는 사람은 과거의 자신의 실패에 얽메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그러한 죄를 반복하지는 더욱 않습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큰 일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평생으로 덧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 드러난 죄까지도 증인이 있어도 아니라고 우깁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발전을 하기 힘듭니다.
십자가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지적하지만 동시에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를 청산하심으로 다시 살게 하십니다. 죄를 청산하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신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민족이 기독교 신앙으로 거듭나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바로 죄를 시인하고 용서받고 다시 출발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하는 신앙의 국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한 번의 실패를 영원한 패배로 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극복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분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이성의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알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병원에 가면 많은 조사를 합니다.  철저한 조사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원인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인을 발견하였습니다.  유다지파- 세라족속 - 삽디가족 - 삽디의 손자 아간에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의사가 수많은 장기 가운데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아간에게서 깊이 조사해보니 시날 산 외투 두벌, 은 이백세겔,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가 문제였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의 삶 속에 발생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죄때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질병도 있었고 마귀가 시험하여 하나님의 허락하에 있었던 시련도 있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나의 삶 속에 나타난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듯이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인과 해결책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예언자를 통하여 알려 주시기도 하였고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나의 문제를 찾는 신앙이다.  아간의 불순종과 이스라엘의 교만이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실패를 극복하려면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성도들마다 문제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이 문제입니다.  불순종이 문제입니다.  한 부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재산이 주님을 따르는데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지식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문제점을 청산하여야 합니다.

실패의 요소를 제거하라.  철저히 버리라. 회개하라.  새로운 삶을 출발은 청산입니다.  과감한 과거의 청산입니다. 모든 것을 사하시는 십자가앞에 내려 놓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게으름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욕심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쓸데 없는 염려와 걱정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복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청산하여야 합니다.


넷째로, 다시 승리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다시 출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실패로 인생을 중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승리를 향하여 다시 전진하라는 주님의 전진명령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새롭게 출발을 하여야 합니다.  실패를 뒤로 두고 새로운 성공을 향하여 전진하여야 합니다.  실패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교훈 삼아 다시는 그러한 실패를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다시 시작할 것을 명하십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교회에게 첫행위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을 다시 명하십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향한 명령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큰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 점령을 명하십니다.  그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약속을 포함한 명령입니다. 

수 8: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명하실 때에는 항상 귀한 약속을 함께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의 약속과 함께 고향을 떠날 것을 명하셨습니다.  전도를 명하시면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전도의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승리를 약속하고 전쟁터에 나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순종을 명하십니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명하실 때는 항상 함께 하실 것과 밟는 땅을 다 주시겠다는 승리의 약속을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명령도 동일합니다.

* 욕심을 버릴 것을 명하십니다.
수 8:8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전쟁을 하면서 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가질 때도 있고 버릴 때로 있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빈 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믿고 따를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 때를 기다릴 것을 명하십니다.  공격의 때까지 잠을 잤다고 하였습니다.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조바심을 갖거나 미리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미리 염려하는 가운데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얻었다가 어려움을 당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수 8: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승리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때를 기다리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죄로 인하여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죄가 아니라 삶의 과정속에서 연단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작고 큰 실패의 경험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패를 다른 성공으로 만든 믿음의 선배들을 통하여 삶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한 평생 승리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승리자가 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진정한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