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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 (엡 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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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 (9/7)
본문 : 에베소서 4:11~14

얼마 전 대구 월드컵 경기장 근처 모 병원에 환자 병 문안차 심방 갔다가
그 병원 로비에 전시된 건강 안내 책자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치매란 무엇인가?

  치매란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뇌에 발생한 각종 질환으로 인하여
  여러 인지기능을 상실하고 이로 인하여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건망증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이다.

  건망증은 어떤 사건에 대하여 몇 가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치매는 사건 자체를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건망증 환자는 그러다가 내용을 귀뜸해 주면 "그렇습니까?" 하면서 기억을 되살리지만
  치매환자는 아무리 귀뜸을 해 주어도 기억해 내지 못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렇게 기억력에 문제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기가 힘든 것이 치매이다.

  무엇보다 치매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환자의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기분이 좋았다가도 금방 나빠졌다 때로는 토라졌다 하면서
  자신도 힘들게 하고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러다가 가끔은 스스로를 잘 억제하지 못하여
  아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고함 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우울증 현상도 보이다가 때로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 몇 가지가 실려 있었는데
그것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걷는 것은 몸 전체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걷는 운동은 치매 예방에 좋다.
  또한 되도록이면 혼자 지내지 말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좋다.
  나이 들면 뇌가 노화되기 쉽지만 경로대학이나 취미활동 등에 시간을 투자하여 좀더
  창조적인 일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치매는 예방할 수 있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고혈압을 잘 조절해야 하며, 담배도 끊는 것이 좋다.
  담배는 몸 안에 있는 혈관에 많은 해를 가져다 주는데
  특히 뇌혈관을 수축하여 혈류(血流)를 떨어뜨려 뇌혈관과 심장에 많은 해를 가져다 주며
  담배를 피워 적혈구 수가 늘어나면 피가 끈적끈적하게 되어 모세 혈관도 막히게 된다.
  그래서 치매를 예방하려면 담배를 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통계학적으로 보아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안피우는 사람 보다 뇌혈관 질환이 많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건강은 항상 관리해야 하는 것이며 조심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의사나 간호원들의 수고를 기억하였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로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살아가는가?
  그들은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의사나 간호원들의 수고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보호되고 질병을 치료하여 나아가는 것처럼
또 다른 차원의 건강을 위하여 수고하며 애쓰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1-12절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어서 14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詭術)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교우들로 하여금 신앙이 건강하도록 보살피고 지도할 뿐 아니라
그 신앙이 자라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이들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詭術)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교우들 가운데 보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열심히 하려는 나머지 문자주의(文字主義)에 빠져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정도(正道)를 걸으라!..고 성경이 말씀했다고 해서
평상시 길을 걸을 때... 오른 쪽도 안보고 왼쪽도 안보고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했다 해서
문자(文字) 그대로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려고는 하는데
이것이 잘 안되니까 기쁨없이 스스로 늘 자학(自虐)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생활 잘 하기 위해 항상 회개기도하면서 깨끗하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회개란 것이 지난 날의 모든 것을 다 100% 회개하는 것은 안되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회개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며 괴로워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좀 잘 믿어 보려는 자세와 시도는 좋지만 영적 지도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그만 이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본문 14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궤술(詭術)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이러한데서 교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교우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렇게만 된다면!!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교우들이 건강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건강을 잘 유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운동도 하고 건강식품도 먹고 하지만
건강을 스스로 체크하면서 잘 지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건강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가인 의사나 간호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물론 각자가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영적 전문가에게 상담도 하고 지도도 받으며 살아가야
자신의 영적 건강이 잘 유지될 뿐 아니라 혹 문제가 생길지라도 크게 도움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타계(他界)하셨지만 강원도 황지 예수원의 토레이 신부님께 어떤 분이 상담했습니다.

  저는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나 후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거듭나고
  성령세례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노이로제라는 신경증 문제들이 저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제 생각에 저의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상처들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조언을 바랍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토레이 신부님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형제의 편지를 읽고 저는 형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받은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편지에 형제의 부모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었지만
  만일 과거 부모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고 특별히 그것이 충돌과 거친 말들로써
  표출되어진 적이 있다면 형제가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 아기로 있었더라도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 말은 형제가 느끼는 것의 많은 것들이 형제의 부모님이 서로를 책망하며 썼던 말들의
  각색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혈류 속에 있는 아드레날린은 아기의 혈류 속으로
  영양분과 함께 들어가 아기는 신체적으로 어머니가 느끼는 것과 똑 같은 
  노여움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은 이것을 위기 상황으로 인지하고 자신의 뇌에 모든 말들을 다 기록해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 지난 후 그와 비슷한 말을 듣게되면 자율 신경 안에서 자동적으로
  위급상황 신호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은 그 스스로 싸우거나 도망치기
  위해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되지요. 그러나 삶에서는 이제 싸울 상대도 도망칠 곳도
  없으므로 이미 분비된 아드레날린은 사용되지 못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여 분비된 아드레날린은 바로 그 사람에게 불안감이나 불행감 노여움이나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때로 이것은 이와는 정반대 과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실제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 이전에 녹음된 메시지 즉 부모들이 사용했던 온갖 말들이 떠오르면서
  형제는 형제 자신이 지금 그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은 전혀 형제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단지 녹음된 메시지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정서적으로 부담을 주는 그러한 모든 생각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그것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그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녹음된
  메시지들이 나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고 그런 추한 것들을 말하여 나의 머리 속에
  녹음되게 한 그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형제도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생각들, 녹음된 기록들을 지우시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형제는 형제의 마음이나 마음 상태를 믿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래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으면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형제가 느끼는 대로가 아니라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얼마 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리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형제가 느끼는 대로가 아닌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며...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용감한 일을 하며 살기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형제는 형제 자신의 기억이나 느낌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더 객관적인 사람으로 빛 가운데 걷는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성령님께서는 형제에게 더욱더 많은 은혜와 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저는 토레이 신부님의 이 조언과 처방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현대인들 가운데는 의외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육적 의사가 필요하며 영적 의사도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 11절에서 언급하는 사도 혹은 선지자 혹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
이 사람들은 초대교회 당시 정말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섬겼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무슨 말씀인가 하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교제하였다는 것이며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기도하기에 전혀 힘썼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점이 중요한가 하면 가르침을 받으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보면 점점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리거나 요동치도 않게 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12절 말씀처럼 사도의 가르침이 성도를 온전케 했기 때문이며
봉사의 일을 바르게 하도록 했기 때문이고,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바르게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도의 가르침
즉 오늘날의 직제(職制)로 말하면 영적 지도자인 목사의 가르침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교의 기독교 학과 교수인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 교수는
신앙은 하나(엡 4:5)이지만 그러나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신앙은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지적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초월적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사회적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개인의 성격이나 교회나 교단 혹은 그가 살아온 신앙적 배경에 따라
신앙을 다르게 이해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양한 측면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영적 지도자가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르게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해야하는데
주로 한 두가지 요소에만 관심 있거나 한 두가지 요소만 두드러진 사람들에게
신앙이란 그렇게 한 두가지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 요소, 감정적 요소, 의지적 요소, 공동체적 요소, 사회 도덕적 요소,
자기 인식적 요소, 초월적 요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잘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각자가 신앙의 이 7가지 요소를 이해하게 한 후
자기가 부족한 신앙의 요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 부족한 요소를 채워나가면서 성장해 나아갈 때
그 사람의 신앙상태는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며
그렇게 신앙이 성장해 나아갈 때
결국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도 이르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하면 처음에는 신학자 안셀름(Anselm)의 지적과도 같이
신앙이란 맨 처음에는 본질상 이해를 추구하는 것(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므로
지적 요소가 그 기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 하기 시작하면서 배우는 것은 말씀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신앙의 지적 요소가 발달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신앙 발달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앙이란 것이 다 지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지적으로 이해하는 면이 결여될 때
그의 신앙은 막연한 신앙이나 비현실적 신앙으로 떨어질 위험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요소에 있어서 감정적 요소란 지적 요소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감정이라고 하는 가슴이 수반되어야
객관(客觀)이라고 하는 신앙의 지적 요소가 주관(主觀)도 되고 내 것이 되어
이제야 말로 '나도 신앙생활하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될 뿐 아니라
'나도 신앙생활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신앙생활에서 이 감정적인 요소는 잘 발달하였으나
지적인 요소가 덜 발달하게 되면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 하면
뜨겁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뭔지 잘 모르므로
이단이나 사이비 혹은 맹신(盲信)이나 광신(狂信)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요소에 있어서 지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를 골고루 갖추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신앙의 요소에 있어서 의지적인 요소는
신앙의 지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가 행동이나 삶으로 나타나게 하는
마지막 고리와 같은 것으로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마력(馬力)이 붙은 신앙적 지식이란 
반드시 의지를 통해서만 실제화되며, 결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음 신앙의 공동체적 요소가 있는데
이것은 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너무나 개인주의적으로 빠지지 않게..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나 그 신앙생활이 "나나나나"하는
자기 중심적 신앙생활이 되지 않도록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신앙의 공동체적 요소입니다.
말하자면 개인도 중요하고 공동체도 중요하다고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나 공동체를 무시하여
공동체 신앙생활도 하지 않고 혼자만 신앙생활 했을 때
그러한 그가 천국에 가서 어떻게 천국 공동체 속에서 잘 지낼까 염려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공동체성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 도덕적 요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도덕적 요소라는 것도 공동체와 함께 생각해야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이 사회 속에서 도덕 윤리를 무시하면서 존재하는 그러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세워주고 건강하게 하여
사회를 건강한 사회 성숙한 사회로 만들어 가는데 신앙이 앞장선다는 것입니다.

만일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지적 요소 감정적 요소 의지적 요소를 다 잘 겸비는 했지만
이 도덕적 요소가 미약하게 되면
그는 교회 안에서는 열심있는 신앙인이라고 칭찬 받을지 몰라도
사회 속에서는 손가락질 받고 지탄받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이 되려면
이렇게 공동체적 요소나 도적 윤리적 요소까지도 고루 갖춘 신앙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또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자기인식적 요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항상 깨닫고 인식하고 산다는 것으로서
항상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의 자신됨 즉 죄인됨을 인식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함 받은 자로서 자유와 기쁨을 가지고 산다는
이러한 자기 인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의 초월적 요소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신앙에는 이성과 논리, 과학이나 의학, 자연 현상을 뛰어 넘는
초과학적이고 초의학적이며 초자연적인
그야말로 초월적인 요소가 분명히 신앙의 영역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 하면서 이렇게 지적 정적 의지적 요소나
도덕윤리적 공동체적 자기인식적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제일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요소가 바로 이 부분, 초월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물론 신앙의 영역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으며
이 초월적인 요소도 분명히 들어 있지만
이 초월적 요소에만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게 될 때
그 사람의 신앙 구조는 왜곡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한 사람이 건강하게 신앙생활하면서 자라서 성숙한 경지에 이르려 한다면
이 7가지 신앙의 요소가 골고루 그리고 균형있게 자라는 것이 건강한 신앙일 뿐 아니라
그렇게 점점 자라게 되면 반드시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담임하는 담임목사로서 교우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신앙생활은 오늘 말씀처럼 균형있게 자라갈 수 있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신앙인의 건강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성과 감정 의지 셋 다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신앙생활을 감정적으로 하는데 주로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주의해야 할 점은
신앙생활을 지적으로 하는 사람보다 감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이단이나 사이비
혹은 신비주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看過)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메마르게 하자.. 지적으로만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요지는 신앙생활을 균형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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