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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은 언제 필요한가 [막 6: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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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신앙은 언제 필요한가 <막 6:46-52><2003년 9월 7일>


□ 신앙은 언제 필요한가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
고 예수는 홀로 물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
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
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
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
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마가복음 6장 46절-52절)

요즘 세상 살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신문과 TV에 나는 것을 보면, 계속 자살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엊그제는 결혼을 앞둔 처녀가 가스총을 들고 현금 수송차를 털려다가 잡혀가
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완전히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병에 모두 걸려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도 돈이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가치관으로 변했
다는 사실입니다.
군사 독재시절에서 보다 요즘 더 많은 불안한 현상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분
출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사회 발전인지 퇴보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지경입니
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
야 할까? 신앙적 차원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풍랑은 갑자기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이 누리는 행복은 순식간에 불행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
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 중에는 우리 인간은 항상 불안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
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일상성(日常性)에 파묻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 인
간의 실존은 본질적으로 허무라는 심연(深淵)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
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즉, 풍랑은 언제 우리에게 불어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삶이란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5병2어의 기적을 행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의 권능의 기적으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일
때, 제자들은 얼마나 신이 났었겠습니까!
☞ 6.25 직후에 우리가 먹을 것이 없었을 때, 그때는 미군부대에 취직하는 것
이 제일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였을 때 동촌 비행장에서 일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미군들이 아침 10시만 되면 티-타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도너스와 커피
를 마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아마 예수님 제자도 신이 나서 나누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배고팠던 군중들도 모두 배불리 먹고 흩어지면서 얼마나 흐뭇했겠습니
까?
이렇게 제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흐뭇한 일을 마쳤을 때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는 주님의 지시 따라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면서 밤은 깊어 가는데 바람은 그치지 않았
습니다.
익숙한 바다 사람들이었지만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진퇴양란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영적 귀한 교훈을 찾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배부름의 행복은 이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행복한 순간은 잠깐이요 인생의 삶의 역풍(逆風)은 점점 우리를 진퇴양란
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이런 경지에서 허우적거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 잘 나가던 50대의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너무나 갑자기 닥치는 풍랑이기에 가정의 행복은 순식간에 무너지
고 앞뒤를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풍랑은 자신의 전문 지식으로도, 자신의 탁월한 실력으로도 인생의 삶의
역풍(逆風)을 뚫고 나갈 힘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많던 재물도 한순간의 바람에 날아가듯 날아가 버리는 것이 세상입니
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의 말이 너무나 적중하는 경우를 봅니다.
시편 39:6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
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불행은 행복하다는 순간에 갑자기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
습니다.

2. 그러면 풍랑 중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기자도,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39:7)
제자들이 풍랑에 시달릴 때 주님은 저들 앞으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도리어 주님을 유령인 줄 생각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깊은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우리는 풍랑을 만나면 두려워하거나 좌절하거나 낙심합니
다.
풍랑 중에 내 앞으로 다가오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봅니다.
우리 인간처럼 약한 존재가 없습니다.
모두 평안하고 여유 있고 건강하고 행복할 때는 세상이 다 자기의 것 인양, 자
신만만하게 삽니다.

그러나 일단 풍랑을 만나면 캄캄해져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던 사람들도 풍랑 중에는 낙심합니다.
주님은 풍랑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풍랑 중에 있는 제자들을 지켜보시고 계시었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우리가 편안할 때, 배불러 만족할 때, 모든 일이 자기 생각대로
성취될 때, 주님 보다 친구가 더 가깝게 보이고, 성공한 사람들 찾아 나서 그들
과 교제하느라,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언제 만나게 되느냐?
풍랑 중에서라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 제자들은 주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실의 파도만 보고, 자기 앞에 일어나는 풍랑만 보고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좌절이냐, 다시 일어나느냐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주님을 보지 못하고 바람과 풍랑 자체
만 보면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좌절하게 됩니다.
낙심합니다.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을 주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풍랑 중에 도리어 주님은 나에게 가까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도리어 풍랑 중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3. 풍랑 중에 주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심야의 풍랑에 시달리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나타나 안심시키었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이 음성은 세상의 이성적 판단이나 지식으로는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신앙은 바로 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 보다 인간의 말이 더 크게 들릴 때는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약속, 친구의 보증, 힘있는 사람들의 후원을 의지해 보려고 하지만, 그
것들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들이요 물거품이 되기 쉽습니다.

☞ 어느 벤처기업을 하는 젊은이의 경우를 보았습니다.
자신이 어렵게 아이템을 개발하여 사방으로 뛰어 친구의 친구를 통하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후원자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한창 기대에 부풀어 자기도 이제는 고생이 끝날 줄 알고 기뻐했지만, 갑자기 의
지하려든 후원자가 인사이동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줄을 의지하다가는 이렇게 좌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서 참된 신앙의 눈은 떠지고, 지금껏 듣지 못했던 주님의
음성은 들려집니다.
내가 지금 풍랑 속에 휘말려 있을 때라면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 탕자가 이 음성을 듣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자기의 것이라고 하는 소유가 아직 남아 있을 동안에는 아버지가 그 머리 속에
는 없었습니다.
더 더욱 아버지의 집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아니했습니다.
오직 그의 관심은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자기의 것>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은 제 2차 적으
로 밀려납니다.
먼저는 내 젊음이 앞서고, 내 실력이 앞서고, 내 친구들이 앞서고, 내가 갖고 있
는 현금이 앞서지 하나님이,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보십시오.
저들에게 무슨 종교가 있습니까?
종교 없이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것 같아서 그렇게 살고들 있습
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모든 인간의 공통성입니다.
하지만 돼지우리에서 굶주려 죽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
고, 아버지의 집이 보이게 되었고,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하고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러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된 영화 <이집트왕자>의 가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기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어요.
희망이라는 게 힘이 없어 연약하긴 하지만,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당신이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 누가 알겠어요.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당신은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꺼예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기적을 이룰 수 있어요.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억압받고
헛된 생각들에 상처받기도 하죠.
희망이란 건 때론, 여름철새 같기도 해서
그저 너무나도 빨리 날아가 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나 지금, 여기 이렇게 서 있어요.
내 맘은 내가 설명할 수도 없는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어요.
내가 말할 수 있으라곤 생각도 못했던
그런 굳건한 믿음의 말씀을 찾아,
여기 서 있어요.

기적이란 게 당신이 원한다고 해서 항상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두려움 앞에서 손
놓고 있기가 쉽죠.
하지만 당신이 두려움에
눈멀어 있더라도
강철과도 같은 믿음으로
시련 가득한 길을
바라본다면 "희망이 가까이 에 있어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는 풍랑 중에 있는 분들에
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니 두려워 말라'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음성은 바로 풍랑 중에 있는 나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어야 하겠
습니다.
좌절하지 맙시다.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의 손을 잡고 풍랑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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