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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쇠사슬에 매인 사신 / 엡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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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 엡6:19-20
  제목 / 쇠사슬에 매인 사신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신이란 말은 헬라어 프레스 뷔스에서 유래한 말로서 황제가 신임하는 사람으로서 황제를 대신하여 타국으로 파견된 사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사신은 황제의 대리인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코 감옥에 갇히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에 대해 사신이라고 표현하였을 뿐 아니라 쇠사슬에 매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사신입니까?
  로마의 황제보다 더 높은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갇히고 쇠사슬에 매였어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로 있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쇠사슬에 매이고 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쇠사슬에 매이는 것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겠다고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죄악의 사슬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서 쇠사슬에 매일지언정 죄악의 사슬에 매이면 안됩니다. 복음 사역자는 죄에 매여버리면 복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사랑의 사슬에 매여야 합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후 5:13-15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권하여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사랑에 매이게 됩니다.
  날 구원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의 줄이 자신을 매였기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미쳤다" 는 소리도 듣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랑의 사슬로 매시기 위해서 물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물으신 것은 그를 그리스도에게 사랑으로 붙들어 매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랑에 붙들린 자들은 결코 배반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주님께 천국열쇠를 받을 정도의 칭찬을 들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이후에는 주님을 떠나거나 부인한적이 없습니다.
  즉 믿음에 붙들렸을 때는 넘어지고 실수했지만 사랑에 붙들린 이후에는 그는 부인하거나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에서 엄청난 기독교 박해가 있던 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에 매인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봉사도, 헌금도, 충성도, 모두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원망이 없고 불평이 없습니다. 사랑이 매인자는 자신을 희생하고 아낌없이 나누어주고도 더 못해서 안타까운 맘을 갖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사명의 사슬에 매여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것은 당연히 할 말을 담대하게 하게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받은 사명 즉 복음을 전하는 일에 철저히 매여있음을 의미합니다.
  행 20:24절을 보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그는 사명에 매였던 것입니다. 

  사명은 맡은 일이며 받은 일입니다.
  내일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시며 영원한 왕이신 주님의 일입니다. 사명을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자유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꼭 해야한 하는 일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신 된 우리들이 맡은 사명이 무엇입니다.
  그것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이 귀한 복음을 힘닿는 대로 땅끝까지도 전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세움받은 목적이며 우리의 존재 이유인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센 강물로 뛰어들어 헤엄을 쳤습니다.
  강가에 있던 사람들은 그 용감한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강물을 거슬러 강물을 건너왔을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 강물에 빠뜨렸기 때문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헤엄쳐 건너왔노라고 말입니다.

  결국 상황이 그를 용감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만이 있으면 죽게 되니 죽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헤엄을 쳤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누구도 해내지못할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런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잘나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죽으니까 할 수 없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이번 중앙아시아 개혁신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저는 행복한 생각을 했습니다.
  10명의 학생들이 입학하여 전체 32명의 학생들이 생겼습니다.
  32명의 학생들을 1년동안 가르치고 훈련하는 데 필요한 경비가 매달 1,000,000만원씩 일년 1,200만원 정도면 됩니다.
  그렇게 3년을 가르쳐서 졸업시키면 이들이 전도자가 되고 목회자가 됩니다. 한달에 백만원정도 투자하여 이렇게 수지맞는 일이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 경제 논리로 따질 성질이 아니지만 경제론리로 계산을 해본다고 할 때 이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박 터지는 일이었습니다. 매년 배출 되는 졸업생들이 나가서 1사람씩만 전도해도 한 생명의 가치는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으니 계산할 수 없는 대박이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천국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익이 별로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주님앞에 섰을 때 봅시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받을 축복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일것입니다. 지금 당장을 우리가 심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주께서 맡기신 사명 감당을 위해 부지런히 뛰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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