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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4,000년 기다린 3일 (요 2: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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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기다린 3일(요 2;19-22) 
               

시집간 딸이 추석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다음 토요일 올림픽 경기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아이다> 입장권입니다. 이태리 파르마 왕립 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는 것입니다. 10만원짜리입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8만명 들어가는 곳에서 오페라를 계획한 그 큰 마음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10만원 입장권은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60만원 자리부터 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페라 광고에 이런 문귀가 있었습니다.

<500년 기다린 하루입니다>

500년 간의 문화와 역사의 흐름을 내용으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500년 걸린 역사를 오페라로 등장시켰으니 500년 기다린 셈입니다.
나는 이 광고를 보면서 예수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은 4,000년을 기다려서 이 땅에 오신 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창조하셨습니다. 네 강이 사방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생명과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죽음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만일 신문에 이런 광고를 낸다면 어떨 가요?
<이 땅에 죽음이 없는 땅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습니다. 어떤 병도 절대로 걸리지 않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100억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마다 일생 목표는 100억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문마다 방송마다 연일 1호 입장자가 누구이고, 2호 입장자가 누구이고.... 다음 1000번째 입장자는 누가 될까요?라고 떠들면서 초미의 관심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입장권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아담과 하와는 그 좋은 에덴동산을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아담과 하와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죄를 대신지고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벌하실 때에 마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이 말씀은 성경에서 예수님의 예언의 첫 신호로 받아드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예언의 가장 중요한 출발 나팔소리입니다.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남자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모두가 남자가 낳는 것입니다. 자녀는 남자의 성을 따릅니다. 씨가 남자 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여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요셉과 약혼하기 전에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자 없이 태어나실 분이시기에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서 마귀를 진멸할 것을 예언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언에 따라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언하신 지 4000년만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러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3일동안 무덤속에 계셨습니다.
이 3일은 위대한 3일입니다. 4,000년 기다린 역사를 이루는 3일입니다.

3일의 위대성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헤롯 성전을 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이냐고 감탄하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동안에 일으키겠느뇨>

요한은 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해석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는 3일동안 무덤속에 계셨습니다. 이 3일은 위대한 3일이었습니다. 4,000 년 동안 기다린 3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가 막혀서 물었습니다.
<이 성전은 46 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 일으키겠느냐>

이 3일은 위대한 3일이었습니다.

1. 완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셋째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시키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람의 자녀로 오게 하셔서 인간의 죄를 짊어 지고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온 세상을 구원시키실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딱 한 마디로 요약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한 마디 속에는 4,000년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4,000년 동안 기다린 3일이었습니다. 김 대중 대통령이 75세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취임하면서 속으로 그랬을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꼭 명심하여야 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삶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멋지게 인생을 50년 살았다면 골골 아프면서 근근히 80세 산 것보다 질적으로 좋은 삶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므드셀라가 비교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33년 사셨습니다. 그러나 다 이루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실패자라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짧은 세상을 사셨지만 할 일을 다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은 므드셀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므드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782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다>(창5;25-27)

969년을 이 세상에서 살았는 데 한 일은 오직 하나 <자녀를 낳았으며>입니다. 애만 낳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30배를 살았으나 애기 낳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4;25)

이렇게 요한복음은 끝나고 있습니다. 삶은 얼마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알차게 살았느냐가 문제입니다. 4,000년 기다린 일을 예수님은 3일 동안 다 이루셨습니다. 그 3일은 위대한 3일입니다.
묻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내가 이 일을 위하여 40년을 기다렸다> <이 일을 위하여 50년을 투자하였다. 이제 이루었다>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일생을 다 드렸다. 이제 이루어졌다.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이런 것이 있습니까? 3일은 4,000년 기다린 완성의 날이었습니다.

2.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4,000년 하나님이 기다리신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완성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완성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죽으신 지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일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로 올라 가셔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3일은 과거 4,000년의 완성이자 앞으로 예수님 재림을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않을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의 영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장로님들 23명이 우리 교회 선교지를 다녀왔습니다. 너무나 늦은 감이 있지만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12년 동안 그 곳에 130 개 이상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20개 유치원, 고등학교 한 곳,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현장을 돌아 보고 돌아 왔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행군이었습니다. 그 좋은 곳에 가서 수영복 한 번 입어 보지 못 하고 고생을 하다가 돌아 왔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올로 타이얀 방주교회였습니다. 이 섬은 우상이 너무 심하여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교회를 세우려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교회가 세워지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벽을 무너뜨리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아름답게 해변가에 세워진 교회에서 약 200여명이 모여 예배드리며 눈물이 났습니다. 신 정호 장로님이 돼지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온 동네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런 구석까지 우리 교회가 선교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온 장로님들이 흐뭇하게 돌아 왔습니다.
3일은 완성이자 시작입니다.

3. 재창조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속에 3일을 계셨습니다. 3일은 재창조 기간이었습니다. 죽을 수 있는 예수님이 죽을 수 없는 부활의 주님, 승천하실 주님, 영원히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거하실 몸으로 재창조된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46년간 153,600 명이 지은 성전을 헐면 3일만에 세우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더 좋은 성전을 지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십니다.
성전에서는 날마다 10가지 기적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 여인들이 희생제물 연기때문에 잘못 된 적이 없다.
2. 제물들이 안 죽으려고 공격적이 된 적이  없다.
3. 하나님께 드리려는 제물에 파리가 앉은 적이 없다
4. 대제사장이 부정으로 인하여 대속죄일을 집행하지 못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5. 비때문에 번제단 불이 꺼진 적이 없다.
6. 어떤 바람이 불어도 번제단의 불은 항상 하늘 위로 수직으로만 타올랐다.
7. 떡과 소제물에서 부정한 물질이 발견된 적이 없었다.
8. 뜰에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모였어도 절할 때 하나님께 충분한 공간이 생겼다.
9. 예루살렘에서는 뱀이나 전갈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
10. 아무리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숙박할 곳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성전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3일 만에 재창조되신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더욱도 놀라우신 분으로 재창조되셨습니다.
<수험생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한 의사 황 치역씨가 <대한민국 0.1%>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지난 10년 간 수능시험을 치룬 70만명 가운데 성적이 좋은 0.1%안에 들었던 학생 100명을 골라 공부 비결을 파헤쳤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거나 쉬운 80%에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 20%에 80%의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무엇인가 남다른 안목의 자기 갱신이 있었습니다. 무엇에나 이기려면 자기 재창조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끊임없는 자기 재창조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숲 속의 왕은 사자입니다. 왜 사자가 숲 속에 왕이 되었습니까? 사람과 눈이 가장 비슷한 동물은 사자라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아래만 봅니다. 풀만 봅니다. 먹을 것만 봅니다. 그러나 사자는 언제나 멀리 봅니다. 하늘을 봅니다. 길게 봅니다.
다시 보고 다시 출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3일 무덤속에 나오신 후에는 늘 하늘 나라만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속 3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완성입니다.
2. 시작입니다.
3. 재창조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안나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안나라는 여자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집가서 7년 동안만 남편과 살았습니다. 7년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안나는 84년동안 과부된 몸으로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금식을 밥먹듯이 하였습니다. 안나의 오직 목표는 하나님이 보내 주신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 순간을 위하여 84년간 금식하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기다리고 준비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은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지 8일만에 예수님에게 할례를 행하려고 예수님을 안고 비둘기 한 쌍을 가지고 아기 예수를 안고 부모가 왔습니다. 안나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84년간의 한이 풀리는 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84년을 금식하며 기다렸습니다.
안나는 84년 동안 금식하면서 지낸 것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한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한 날을 한 순간을 위하여 84년을 지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에게 묻습니다.,
그 순간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 무엇이 있는가요?
예수님처럼 4,000년 기다린 3일
안나처럼 84년 기다린 그 하루
아이디 오페라처럼 500년 기다린 그 무엇이 있는 가요?
70 대 성도 여러분은 70년 동안 기다린 그 무엇이 있는 가요? 60대는 60년 동안 쫓아 온 그 무엇이 있는 가요? 그 것 하나만 보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가요? 50대, 40대, 30대 성도 여러분은 지금 그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 무엇이 있는 가요? 그 것만 이룬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가요?
그 것을 찾아야 합니다.
4,000년 기다린 3일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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