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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에게서 배울 것(1) (삼하 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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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서 배울 것(1)
(사무엘하 12:7-23)

사울과는 달리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다윗은 철저히 회개함으로 성공한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사울에 비하면 다윗이 더 큰 죄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울보다는 다윗을 더 사랑하셨습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예배를 실패하도록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극복하는지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죄와 회개라는 문제에 부딪힐 때 다윗은 그 모범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다윗과 관련하여 죄가 무엇이며, 이 죄에 대하여 다윗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울이 예배에 실패한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다윗이 예배의 성공자였던 것은 그가 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죄는 무엇이며 그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죄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말할 때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죄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본문을 통하여 살펴봅시다.

1. 감사를 상실한 게 죄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잘못을 꾸짖기에 앞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7-9)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다윗에게 해주었던 것을 열거하십니다. 과거에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주었는데 왜 악한 짓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바꾸면, “네가 내 은혜를 잊지 않았다면 악을 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감사를 잃은 것이 죄라면 그 죄를 극복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감사를 회복하면 됩니다. 수많은 시편이 바로 다윗의 감사문입니다.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2. 말씀을 업신여긴 게 죄입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게 하나님 보실 때 어땠을까요?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9) 또,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10) 예,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겼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겼다는 말과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저지르는 죄는 그것이 겉으로 크게 드러나든 아니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데 기인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니 당연히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다윗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13)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이런저런 구차한 방법을 동원하며 변명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었다고 하면 내 생각을 말하면 절대로 죄에서 놓임 받을 수 없습니다. 죄가 결정되는 것은 내 생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생각에서입니다.

1. 대가를 지불합니다.

다윗의 죄는 분명히 용서받았습니다. 그의 죄에 대한 고백은 하나님의 용서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한 대가는 치렀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10-12절)은 다윗이 치러야할 죄에 대한 지불명세서입니다. 칼과 재앙이 다윗가문을 떠나지 않고 왕비들이 백주에 욕을 당하는 등의 재앙이 있을 것이라 합니다. 실제로 그는 아들 압살롬의 모반 사건을 겪으며 이런 일들을 경험합니다. 또, (15절) 이하에서도 밧세바에게서 얻은 아들이 병에 걸려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용서받았어도 죄의 결과는 지불해야 합니다. 용서받으면 구원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못을 뽑아도 못 박혔던 자국까지 없어지진 않습니다. 죄짓고 용서받으려 하지 말고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 불만이 없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얻은 첫 아들을 잃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7일 동안 금식하고 아들이 병에서 놓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이 금식하는 것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결국 그 아이가 죽고 맙니다. 다윗에게는 처절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알고 난 후에 금식을 중단하고 의복을 갖춰 입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밥을 먹습니다.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20)

여기 숨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말로 알아봅시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22,23) 죽기 전에야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이미 죽었으니 하나님의 일에 불만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용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나만 당한다, 부당하다, 과하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만 그런 죄를 짓는 게 아닌데 왜 나만 벌을 주느냐고 합니다.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현상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 왜 벌을 주느냐고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좀 나은 것은 죄에 비하여 너무 과한 벌을 주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세 가지 모두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다윗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기꺼이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다윗이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은 어떤 사건이나 환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일수도, 마귀의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처리하는 일을 통하여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이미 회개가 진정한 예배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은 죄를 저지르고도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저지른 이후에 그 죄의 문제를 잘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이후가 중요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함으로 어떤 벌도 달갑게 받을 때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자가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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