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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길에서 일시적으로 실패할 때 / 수 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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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에서 일시적으로 실패할 때
여호수아 7 : 1-26

  우리교회에 신실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어려운 회사에 나갑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참 굳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킵니다. 회사가 3교대를 하는데 그런데도 토요일에 근무하고 와서 주일날 잠을 자지도 않고 예배를 드리고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합니다. 회사에서는 별명이 목사입니다.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인정받는 신실한 믿음 좋은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다단계판매에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니까 주위에 사람들이 신임하기 때문에 그는 여러 교인들을 자기의 다단계직원에 포함시켰습니다. 다단계회사가 여러 가지 문제를 보이면서 그의 사업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로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 교인들의 돈을 이용했기에 그는 교회도 나오지 못하고 잠적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믿음 좋은 집사님은 신앙생활을 떠났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일시적인 죄로 인해 믿음의 실패를 경험한 그는 낙심과 절망가운데서 극복하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9년 만에 돌아오기는 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믿음의 길에는 오직 승리만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생활은 얼마나 편할까요? 우리는 믿음 생활에서 승리에 대한 이야기만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실패할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길에서 일시적으로 실패하는 경우는 죄에 빠질 때 일어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승리에 대한 지속적인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 일시적인 죄에 넘어가 실패를 경험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 믿음의 거룩한 길에 들어선 신자가 자신이 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심지어 신앙을 포기하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을 볼 때 실망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변호하면서 이중적으로 죄를 짓고 위장하기 쉽습니다. 이런 믿음의 길에서 일시적인 실패는 신앙생활의 성장과 진보를 이루는데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즉시 하나님께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정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숙을 행해 진보하는 믿음의 길을 다시 계속 걸을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죄에 빠져 일시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 절망하지 말고 믿음의 길에 이런 과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정복하는데 실패한 다음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5절에서 9절까지 보면 절망과 포기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 륙인 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부르짖음입니까? 일시적인 실패를 경험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절망과 포기입니다. 사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포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죄에 빠져 일시적으로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실제로 경험한 바로는 잠시동안 일시적인 죄에 빠진 경우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죄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청년 여러분, 이런 일시적인 죄 때문에 갑작스럽게 닥쳐온 일시적인 실패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신앙을 포기해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완전을 행해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화는 한번 소유했다고 해서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성화는 나날이 새롭게 만들어 가야할 생활입니다.

  믿음이 생활을 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실패가 간혹 있을 수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실패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할 하등의 이유는 없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몹시 서글픈 일이지만 올바르게 대처해 나간다면 온전한 헌신과 더 완벽한 신뢰로 나아가는 중요한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즉시 하나님께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경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포자기하면 어린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다가 넘어져서 실망하여 다시는 걷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혹 일시적인 실패를 경험한다 하더라도 믿음의 전진에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오직 다시 전진하는 것뿐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둘째,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죄에 빠져 일시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 원인을 파악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살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의 원인을 보면 대부분은 죄에 빠졌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죄는 죄인 줄 알면서도 범하게 되는 고의의 죄를 말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죄에 넘어가거나 인간의 본능에서 일어나는 죄에 의해 일시적으로 실패할 경우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에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습니다. 그 죄는 쉽게 회개가 됩니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저지른 죄는 비난의 대상이기보다는 오히려 긍휼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죄, 지난번에 지은 죄, 의식하고 있는 죄에 빠질 경우 일시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은 아이성 정복에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방금 전의 승리에 도취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만과 방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주된 원인은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온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니, 아간이 전리품을 숨긴 것입니다.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 하나를 숨겼습니다.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죄에 넘어갑니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알고 있는 죄에 빠집니다. 그리고 좌절과 낙심과 절망합니다. 이것이 우리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것이 미미하든지 아무리 깊이 감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가 원수들에게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남에게 고의적으로 품고 있는 악한 생각, 자기의 유익 추구, 무자비한 판단,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게을리 함 등 우리가 이런 것에 의식적으로 빠져있으면 우리의 생활은 절름발이가 되거나 마비가 되기마련입니다. 이 때 결국 믿음의 길에서 일시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말씀이 진리가 아닙니까? 결국 우리가 죄에 빠져 일시적인 실패를 경험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내 연약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보다 인간을 통제하는 것이 있을까요? 인간은 여기에 약합니다.

  코카콜라 창업자인 아사 D. 캔들러라고 하는 사람은 본래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알코올, 이 술에 중독이 되어서 술을 안 먹으면 살 수 없고 술을 먹지 아니하면 정신이 들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에 끌려가서 오랫동안 여러 차례 훈련을 받았습니다. 나와서 다짐합니다. 성실하게 자신을 지켜나갑니다. 그러나 어느새 또 술에 대한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강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속에서 가지는 이 악한 욕구, 이 욕망을 거절해야만 내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그는 깊이 깨닫고 집에 돌아가 아내의 손목을 잡고 자기가 깨달은 바를 고백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내어놓고 아내와 함께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술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이 이제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악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코카콜라라고 하는 큰 기업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믿음의 길에서 순간적으로 세상에 미혹될 수가 있습니다. 믿음에 길에서 일시적으로 과거로 돌아가고픈 미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경건의 훈련에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어찌? 또 왜? 그 자리로 돌아갔습니까? 실패의 자리를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지만 어느새 실패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충만한 믿음의 자리가 실패의 자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만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면 일어나야죠. 그 자리를 떠나야죠, 그러나 그런 결단이 쉽던가요? 어렵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그 자리에 빠졌는지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원인의 원인을 발견해가면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심과 욕망입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의 연약함입니다. 나의 연약함이 보이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죄로 인해 일시적인 실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연약함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믿음의 길에서 실패하는 것보다 나의 연약함을 놓고 기도하면서 믿음의 길에서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실패가운데 빠진 사람은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아직 빠지지 않았다면 나의 연약함을 놓고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셋째,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죄에 빠져 일시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 땅에서 믿음의 길이란 휴게소는 있지만 종착역은 없습니다. 오직 종착역은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그 곳입니다. 우리가 종착역까지 가는 길에는 비록 연착은 있다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믿음은 중간에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지막까지 주님과 함께 걷은 과정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믿음의 길에서 엉뚱한 한 길로 가거나, 길을 잘 못 들어 허송시간을 보내는 수가 있습니다. 결코 중단할 수 없는 길, 믿음에는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할 진행형뿐입니다. 그러기에 넘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피곤함에 지쳐 휴게소에 지체했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야할 길입니다. 결코 쉬는 자리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될 길입니다. 잘못 들어갔어도 다시 돌아와 여전히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믿음의 길은 일시적으로 중단은 있어도 영원한 포기는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었을 때에도 그 처절한 패배 후에 낙담과 실망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의 생각이었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7장 10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호통을 칩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만 있느냐?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백성과 여호수아는 낙담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시적인 실패에서 낙심해 있는 그들을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일시적으로 실패한 이후에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것이 겸손한 모습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후에 즉시 주께로 달려간다는 것이 뻔뻔스럽고 뉘우침도 없는 행동으로 여겨지겠지만 결코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즉시 일어나 다시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일어나 돌아온 당신을 주님은 먼저 맞아주십니다. 주님은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주님은 우리가 실패의 길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위고는 20세 때부터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그의 명성과는 달리 사생활은 달랐습니다. 심한 주벽과 탐욕에 빠졌고, 타락했고 허탄한 생활을 했습니다. 온가족을 괴롭혀 자녀들도 시달렸습니다. 1841년 여름, 사랑하는 딸 레오프딘느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시체가 센 강에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비극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심판이다. 나의 딸이 죽은 게 아니라 내가 죽은 것이다." 그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깨끗한 생활, 경건한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쓴 소설이 장발장입니다. 한 사람이 새사람이 되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 고민, 그 고통이 거기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라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자화상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일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돌아와 일어서는 것을 사람들은 받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은 받아주십니다. 기뻐하시면서 받아주십니다. 오히려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비극입니다.

  청년 여러분, 믿음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죄에 빠져 일시적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까? 이 때는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변명을 하거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른 새벽 아침"에 일어나 악한 것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이를 즉시 찾아내어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는 돌로 치고 불살라서 완전히 처리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여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굳건히 주님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일어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밝혀지고 그 죄가 없어진 이후에 하나님께서 즉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영광스러운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8장 1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할렐루야!

  혹 실패의 자리에 있습니까?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서 다시 일어서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힘들게 일어선 다리에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고백하고 일어서는 우리를 다시 받아주시면서 승리를 위해 이곳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어서 새롭게 출발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맺는 말 

  엘리옷이라는 여인이 어느 날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습니다. 이 아가씨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난 종교나 하나님에 대해 관심 없어요" 그러나 며칠 뒤 이 아가씨는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목사님을 찾아가 사과했습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때 목사님은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무 때나 그저 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여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이 중년이 된 이 여인은 병들어 죽음에 임박해 있었습니다. 그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교회에 갔고 혼자만 남았습니다. 여인은 문득 20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20년 전에 목사님이 하셨던 말 "아무 때나 그저 오십시오" 이 말에 시상을 얻어 그녀는 찬송가 339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죄에 빠져 일시적인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이 찬송은 그를 늘 새롭게 일으켜 세웠다고 합니다.

  큰 죄에 빠진 말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내 죄를 씻는 능력은 주 보혈밖에 없도다 정하게 되기 원하여 주께로 거저 갑니다.
  큰 죄악 씻기 원하나 내 힘이 항상 약하니 보혈의 공로 믿고서 주께로 거저 갑니다.
  내 죄가 심히 무거워 구하여 줄이 없으니 내 의심 떨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죄 용서하여 주시고 내 마음 위로하심을 나 항상 믿고 고마워 주께로 거저 갑니다.
  주 예수 베푼 사랑이 한없이 크고 넓으니 내 뜻을 모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기도와 결단>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일시적으로 넘어졌어도 소망이 있는 것은 이 실패가 영원히 우리의 파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주님은 나를 일시적인 실패에서 건저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일시적인 실패로 떨어진 것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 앞에서 절망하고 포기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내가 고의적인 죄에 빠진 것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일어서지 않고 낙심에 빠져 있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혹 일시적인 죄에 빠져 있어 실패의 덧에 걸려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은 다시 돌아와 죄를 고백하고 새롭게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이 일시적인 넘어짐의 문제였는지 보십시오.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나는 일시적인 고의적인 아는 죄에 빠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이 없다면  우리도 자신의 연약한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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