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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언약의 일꾼 / 고후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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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새 언약의 일꾼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
본문 : 고린도후서 3장3절∼9절 


어느 군목이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 병사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둔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러자 병사는 "네, 나는 행복하게 죽었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교회학교 선생님께도 편지를 써 주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죽었으며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들을 잊은 적이 없었다고 써 주십시오."

몇 주가 지난 후 군목은 그 교회학교 교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사실 나는 지난주에 교회학교 교사 직을 사임했었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믿음 없는 내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포기하자마자 나의 가르침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는 어제 깨달았습니다. 나는 곧 교회학교 교사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끝까지 충성을 다하기로 결심합니다." Moody Monthly라는 잡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교회학교 교사, 작은 일 같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은 모두 소중한 것들입니다. 끝까지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러한 관점에서 봉독한 본문 고린도후서3장 3-9절을 중심으로 하여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새 언약의 일꾼

바울 사도는 본문 6절에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사용하셨고 다윗과 솔로몬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많은 사사들이 있었고 선지자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귀한 반열에 우리도 불려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일꾼이라 함은 구약의 일꾼들과 비교하며 사용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맺은 언약이 옛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옛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많은 일꾼들을 불러 쓰셨습니다. 이에 반하여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우신 새로운 언약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성취할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은 그 어떤 직책보다도 더 영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7-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직분은 율법의 직분이었습니다. 그것도 영광스러운 직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일꾼의 직분은 영적인 직분으로서 더욱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성도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세상에서는 직분의 귀중함을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로 판단합니다. 학교교사는 돈을 벌기에 소중하고 교회학교 교사는 돈을 벌지 못하니 소홀히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판단입니다. 세상의 일은 돈버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귀중하고 영광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귀하게 여기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26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모세가 민족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애굽에서 권세를 누리며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에서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길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일꾼이 되지 아니하였다면 잘 나가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벌써 많은 권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권세를 누리는 자리도 아닙니다. 무슨 큰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쁨으로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새 언약의 일꾼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온전히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성도들의 사명이 있습니다. 특별히 새 언약의 일꾼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성도의 가장 큰 책임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줌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육신의 신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어졌습니다.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겼다는 증거입니다. 얼마나 귀한 이름입니까? 우리도 그렇게 불려 져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예수 믿는 사람들 별 것 없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말도 듣습니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쩌나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진정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진정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다면 몇 사람 때문에 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 빨리 그리스도의 향기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러면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에서 두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법으로 하지말고 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을 봉독하십시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을 때 무슨 일이든지 만족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의 편지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 한다는 첫째 명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힘을 의지하다가 실패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였습니다. 포이에르바하와 같은 무신론자들은 뒤집어 보면 인간예찬론자들입니다. 그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하지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었던 우리 인간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교육시키고 개발시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신에게 매달리지 말고 인간의 힘으로 살아보자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주의, 자유주의 사상은 인류 역사에 큰 오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인간예찬론은 그 꽃을 채 피우지도 못하고 세계 1,2차 대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이로서 교육만 잘 받으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예찬론은 더욱 잔인해지는 인간의 모순을 체험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났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타락했을지라도 전혀 악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양심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완전해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더러는 "성숙한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현대인은 성숙했으므로 신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입니다. 무너지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법보다 영으로

둘째로, 성도가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법의 단계를 넘어 영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의 조문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아멘. 성도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법적인 단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율법)도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법이 있음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규범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동은 죄니까 하지 말라"가 바로 법의 요청입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 성숙의 차원에서 보면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고 우리의 심장이 하나님의 심장으로 대체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못하던 것을 비로소 하게 됩니다. 하고 싶어도 못하던 것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주는 능력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법의 단계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훌륭한 사람을 지칭하며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법에만 문제없으면 훌륭한 사람입니까? 이것은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훌륭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진정 훌륭한 사람은 아름다운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실정법을 뛰어 넘어, 자연법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자신의 힘만 의지하면 법적인 단계도 극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심장이 하나님의 심장으로 대체되어야 하나님의 법에 따라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편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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