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날마다 축제가 되는 삶 (출 3:1-5)

  • 잡초 잡초
  • 264
  • 0

첨부 1



본문 / 출 3:1-5
제목 / 날마다 축제가 되는 삶

우리는 요즘 <자살 신드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고 나면 어떤 사람이 무슨 사연으로 인해서 자살했다는 소식 !
그런 소식이 끊이지 않고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 평안할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나는 요즘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요즘 어떻습니까 ?
사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
사는 것이 <축제>라고 말할 수 있으시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여러분과 저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우리로 하여금 <행복에 이르게 하는 길>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험한 세상> 가운데 놓여져 있다 하더라도 !
아무리 우리가 <광야와 같은 땅>에 던져져 있다 하더라도 !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날마다 축제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의 현장>을 통해서 그 길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지난주에도 우리가 확인했습니다마는 모세는 지금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던져 버리고 그는 그렇게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불편한 <광야의 삶> !
그런 광야의 삶을 그는 과연 어떻게 <날마다 축제가 되는 삶>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을까 ?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대답을 <세 가지>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대답>은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시지요 !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거기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가까이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러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
  모세야 !

여기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광야에서 살고 있던 모세를 잊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인생을 자포자기하고 마약에 빠져든 한 청년이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어느 날 믿음으로 사는 신실한 간호사 한 분이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그러자 청년이 화를 버럭 내면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
청년의 반응이 이래도 그 간호사 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이 잠 든 사이에 그 간호사 분은 침대 머리맡에 쪽지 한 장을 남겨 두었습니다.
잠을 자고 난 청년이 그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청년이 그 쪽지를 읽고 나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쪽지에 담긴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그 청년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 청년은 늘 거절감을 맛보면서 인생을 비관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나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가 받아 쥔 쪽지에 담긴 내용은 누군가가 자기의 상황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그 때에서야 비로소 열렸습니다.
청년은 그 쪽지의 내용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했습니다.

보통 어머니들의 자녀 사랑은 대단합니다.
파렴치한 범죄행각을 벌이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 !
그 사람의 친구들은 그를 버릴지 몰라도, 그 사람의 어머니는 음식을 장만해서 감옥을 찾아갑니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사람 !
그 사람의 배우자는 그를 버릴지 몰라도, 그 사람의 어머니는 그의 곁에 남아 죽을 때까지 그를 수발할 것입니다.

여기 이런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런 어머니마저 우리를 떠난다 하더라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 !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아니하십니다.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우리 !
<광야의 삶> 속에 던져져 있는 우리 !
그런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노라 !  (사 49:16)

온누리 교회 <윤형주 장로님>을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은 <모태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의과대학>에 들어가면서 그의 신앙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면 <시체해부학>을 공부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
그 때 <해부학 교수님>이 시체를 겁내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는 뜻에서 <양주>를 권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해서 한 때는 양주 2 병 정도는 거뜬하게 마시는 수준이 되었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그의 인기는 5주 연속 <금주의 인기가요>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는 <돈과 명예, 그리고 인기>를 모두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75년 그는 <대마초 사건>으로 검거되어 <서대문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영하 17도나 되는 추운 방 !
그는 그렇게 추운 방에서 혼자 <외로움>과 <괴로움>과 <수치심>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제까지 자신을 향해서 뜨겁게 <박수갈채>를 보내던 사람들이 지금은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인생마저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이고 <파멸>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잘 나가던 인기와 영광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때 그 차디찬 감방에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셔서 성경을 놓고 가시더랍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성경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
어릴 때부터 성경은 언제나 그에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그 순간만큼 성경이 읽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답니다.

그가 성경을 펼쳤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그는 여기 이 <첫 번째 말씀>부터 감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머물고 있던 감방 !
절망으로 가득 찬 감방 !
바로 그 감방 안으로 <사랑의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날 그는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 때 그 평안은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가져다 준 평안과 전혀 다른 평안이었습니다.
그 때 그 평안은 <돈과 인기>가 가져다 준 평안과도 전혀 다른 평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포로가 된 그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입술에서 <찬양>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그가 부른 찬송이 <찬 208 장>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에 !
직접 우리의 장부를 디자인하시고 만드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꿈>을 우리 몸 안에 <디자인>하셨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지요 ?
왜 어떤 사람은 <미술>을 좋아하지요 ?
왜 어떤 사람은 <운동>을 좋아합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디자인>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몸 안에 각각 다른 디자인을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쉽게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험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는 <축제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이후 우리 모두의 삶이 언제나 이런 삶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날마다 축제가 되는 삶>이 되게 하는 <두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  모세야 !
그러자 모세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보이십니까 ?
하나님의 부르심에 <곧 바로> 응답하는 모세의 모습이 말입니다.
그가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곧 바로> 응답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음성>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여기 이 사실을 대단히 강조하셨습니다.
<요 8:47> 말씀을 보실래요 ?  신약성경 160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라 !

무슨 말씀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 10:27> 말씀도 보실래요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보십시오 !
우리가 주의 양이라면 주의 음성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

<계 3:20> 말씀도 꼭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 403면.
  볼지어다 !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는 삶 !
그런 삶이야말로 <축제의 삶>이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그런 삶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그리 될 수 있다 하지 않습니까 ?
이렇게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하옵소서 !
  종이 듣겠나이다 !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위대한 사람들의 입술에서 한결같이 터져 나온 고백은 언제나 여기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여기 이런 고백을 통해서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축제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 이 고백은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단순한 사건의 기록 !
그것이 <성경>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펼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말씀하옵소서 !
  종이 듣겠나이다 !

바로 <이런 마음 밭>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옥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이렇게 <옥토>와 같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내 안에서 썩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말라 죽지도 않습니다.
내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반드시 맺습니다.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그 삶이 <축제인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을 그저 설교자가 내게 하는 말씀으로 받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전>에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
  말씀하옵소서 !
  종이 듣겠나이다 !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메시지가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릴 때 !
그 날 그 말씀은 내게 <은혜>가 됩니다.
주의 날 주의 전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이 그처럼 <은혜>가 되면 지금 우리가 <아무리 깊은 인생의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어도 <축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 이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
하나님께서 <세상 만사>를 주관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직면한 상황 속에도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 않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든 상황 속에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
어쩌다가 재수 없이 !
그런 일은 정말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처 생각지 못하신 일이 !
하나님께서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
그 어떤 일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날 수 있는가 ?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삶>이 고단하십니까 ?
<지금의 삶>이 너무 힘에 부치십니까 ?
그런 상황을 놓고도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
  말씀하옵소서 !
  종이 듣겠나이다 !

바로 여기에 <문제해결의 길>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기 이런 모습으로 오늘의 삶을 <축제의 삶>으로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축제의 삶>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거기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기 이 말씀의 의미는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신>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산 사람들, 호흡이 있는 사람들 !
그들만의 <전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
이제부터 <네 인생은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무슨 말씀입니까 ?
이제부터는 <나를 네 인생의 주인으로 여기고, 그대는 나의 종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종>이라는 말에 기분이 언짢으신 성도님 계십니까 ?
그러실 것 없습니다.
<행 3:13>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종>은 <파이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바로 그 <파이다>라는 단어는 <종>이라는 뜻에도 쓰이지만, <아들>이라는 뜻에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여기 <하나님의 종>으로 오늘을 살라는 말씀에 언짢아하실 필요 없습니다.
거기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늘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제가 오늘 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라 하시면 제가 오늘 거기에 서겠습니다.
말씀하옵소서 !
종이 듣겠나이다 !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여기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여쭈어가며 살아가는 삶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지난 바자회 때도 경험했지 않습니까 ?
지난 주간 태풍 매미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
그 분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당신의 종>으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라는 사람을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
그가 기도했을 때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처럼 <대단한 능력>을 행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 능력은 <그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 
그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날마다의 삶>을 <축제가 되는 삶>이 되게 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는 모두가 <웃음>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삶이 심히도 고달파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자주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하루하루가 힘겨우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찍이 나를 <자녀> 삼아주신 것이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우리네 인생이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서는 도무지 안 되겠기에 !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
  하나님을 그대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기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여기 이 말씀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상실된 웃음>이 회복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그로 인해서 이제 이후 여러분의 삶이 언제나 <축제의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