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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백성의 헌신(2) - 시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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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시편 110:1~7 
  제목 : 주의 백성의 헌신(2)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한가위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그리고 매서운 태풍 매미도 잘 통과했습니까?

40여년 만에 들이닥친 태풍으로 말미암아 23년만의 최대 흉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 해보면 이 태풍 뒤에도 감사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를 당한 당사자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미시적으로 본다면 태풍 같은건 정말 우리의 삶에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태풍 역시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자연 섭리의 일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거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제목들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태풍이 지나간 푸른 하늘 조차도 우리에게는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 살피던 말씀을 계속해서 살피겠습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주의 백성의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헌신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먼저 살폈습니다. 누구에게 헌신하는가를 알때에 우리는 새롭게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번 추석명절 지나면서 여러분 누구에겐가 감사의 선물을 보내보신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무엇을 드릴 것인지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분이 누구신지 바로 안다면 우리는 새롭게 그 분을 향한 헌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0편 1절은 우리가 헌신해야 할 분을 왕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우리가 섬기는 왕은 보통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우편에 앉히신 왕이십니다. 그가 최후 승리를 거둘 때 까지 보좌에 앉으신 왕이십니다. 능력과 주권과 위엄의 자리에 앉으신 왕이십니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 그 영광과 능력의 자리에 앉으신 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여러분의 재능, 여러분이 가진 것을 드려 그 분께 헌신하십시오. 그 분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난 여름, 많은 분들이 국내외 곳곳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므로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더위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성도들도 후원하는 일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기도로, 격려로, 물질로 헌신했습니다.

또한 나아간 곳만이 선교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선교지입니다. 현대인의 마지막 선교지는 자기 직장이고 자기 동네입니다. 거기서 왕 되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헌신해야 할 분은 왕이신 동시에 영원한 제사장으로 시편 110편 4절은 소개합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헌신해야 할 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영원한 제사장 예수께서는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마치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전능자의 우편에 앉으신 왕 주님은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신 제사장이십니다.

왕 되시고 제사장 되신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기 백성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당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는 영원한 제사장, 왕 되신 분께 헌신하는 백성이 드리는 결단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왕을, 궁극적으로 승리하실 왕을 섬기는 분들입니다. 영원한 제사장, 그 분께 헌신하는 백성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주일 지나갔고 명절도 지나고 태풍도 불었으니까 뭐가 기억에 남아있겠습니까마는 지난주일 여러분이 두 번째로 살폈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왕을 위해서 그 제사장을 위해서 우리가 헌신할 때를 살폈습니다.

#우리가 헌신해야할 때는 언제였습니까?# 바로 오늘이요 지금입니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천년 전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곳곳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한 것은 그 싸움의 일부를 감당한 것입니다. 국내외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여러분은 잘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며 싸우는 자들입니다. 다가올 그리스도의 승리를 바라보면서 우리 앞에 주어진 싸움을 싸우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가 우리 주님께 모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후 승리는 주님께 속한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그 왕의 이름에 합당한 영예를 돌리고 충성을 다하는 복된 대열에 들어서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필 주제는 “주의 백성의 헌신,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주의 백성으로 우리는 어떻게 헌신해야 합니까?# 3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한 구절씩 살펴봅시다. #“주의 권능의 날에”# 무슨 말입니까? 지금은 주께서 그 권능을 교회를 통해서 만방에 드러내는 날입니다. 주의 권능의 홀을 보내셔서 원수 가운데서 다스리는 때입니다. 우리의 왕,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그의 군사이기에 우리 주의 기치가 휘날리는 그곳에 함께 모여야 합니다. 주께서 권능의 홀을 보내셨기에 열방 중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소식을 여러분은 듣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주보에 실리는 승전보를 여러분은 읽고 계십니까? 열방과 족속, 나라와 방언 가운데서 선교사들이 보내오는 승리의 소식을 감동적으로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까?

왕이시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애정을 가진 백성들은 주보에 실리는 이야기들을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보에 어떤 이야기들이 실리고 있는지를 읽어보셔야 합니다. 그 일에 마음을 함께 합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요청을 지금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이 대한민국만큼 글 읽는 비율이 높은 동네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미국사람들도 우리보다 글 못 읽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우리글은 정말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마음먹으면 일주일이면 다 배울 수 있어요. 숟가락 젓가락 구별해 쓸 줄 아는 사람 같으면 일주일이면 글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경로대학 오셔서 한글학교 한번 배워보십시오. 그러면 더듬거리지만 한글 다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싸움은 주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 왕의 승리를 위한 것일진대 우리는 헌신하는 자세를 날마다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백성 된 우리는 어떻게 헌신해야 합니까?

본문 3절이 보여주는 헌신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본문은 그들을 일컬어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벽이슬을 관찰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아름다움을 눈여겨보신 적이 있습니까? 신선함의 상징인 이슬을 하다못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라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주의 거룩한 백성들은 새벽이슬처럼 새 날의 활력이 넘치는 백성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일을 즐겁게 자원하는 백성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지못해서 눈치를 봐서 일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를 구속해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왕에 대해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백성들이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새벽이슬의 신선함이 여러분의 헌신에는 언제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열두시 시간 맞추어서 예배의 자리에 나오셨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새벽이슬의 신선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황금분활이라고 했던 열시 예배와 열두시 예배에서 열두시 쪽으로 무게가 더 실리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열시에 나올 수 있는 분들 열시에 나오셔서 예배드리면 좀 덜 복잡할 것입니다. 몇 시에 나오든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감동을 가지고 기대하는 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시들어진 꽃송이 전달 받으면 기쁘겠습니까? 장미꽃 한다발 선물로 받을 때에 시들어진 것 받고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들어빠진 후에 탄식을 주님은 듣기 원하시지 않습니다. 생기 넘치는 헌신을 받으시기를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은 새벽이슬같이 아름답고 신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후회하지 마십시오. 지난 여름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분들을 앞서 보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지 못한 것을 마지막 병상에서 후회하지 마십시오. 아직 생명의 원기가 여러분에게 있을 때에 새벽이슬 같은 헌신을 주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셨을 때에, 여러분의 손에 가진 것 있을 때에, 통장에 잔고가 남아있을 그 때에 주를 위해서 충성하십시오. 재산 다 날리고 나서 ‘그 때 주를 위해 쓸 걸’ 하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내가 그 때 교회를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사용할 걸,’ 어리석은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새벽이슬 같은 헌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말 때문에 혹시 연세 드신분들 “우리는 이제 한물지나갔다”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많아져도 얼마든지 젊음의 생기를 가지고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다른 교회 성도들은 그 말 믿지 못해도 우리 울산교회 성도들은 그 말 믿을 수 있습니다. 최복만 장로님, 우성욱 장로님, 얼마나 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까?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의 명단에 여러분들의 이름이 들어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요람에 이름이 빠지는 일이 가끔은 있습니다. 잘 하려고 하는데도 실수가 납니다. 또 어떤 때는 교회의 법칙에 따라서 70이 넘으면 서리집사에서 명단도 빠지고 사진도 빠집니다. 그러면 얼마나 섭섭해 하시는지 몰라요. 섭섭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요람에 사진이 빠지는 게 아닙니다. 주보에 이름이 빠지는 게 아닙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다면 그야말로 안타까울 것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나아오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좀더 문자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세마포 흰 옷을 입고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모습을 여러분 떠올려 보십시오. 이 싸움은 주께서 싸우시는 싸움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주께 나와 섬기는 자들하고 여러분을 비교해 부십시오. 거룩함은 주의 백성의 표시입니다. 주님의 사역자들의 힘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지 않을 때 무력한 자들이 되고 맙니다.

이 싸움은 주께서 대신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옷에 피뭍힐 일은 없습니다. 계시록에 보니까 주께서 이미 그 싸움을 싸우셨다고, 선혈이 낭자한 옷을 입고 포도주 틀을 짓밟고 계시는 분으로서 주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제게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의 싸움을 싸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결,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기입니다.

거룩함의 소원이 있으면 주님 앞에 나오고 싶습니다. 주일이 기다려 집니다. 성도들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사역자들을 보면 기쁩니다. 그런데 거룩함을 상실하면, 죄악에 뒹굴다 보면 주일 오는 것 부담스럽습니다. “또 주일 오네.”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 와서 성도들 봐도 눈길을 피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쳐다보면 마치 내 죄를 다 보는 것처럼 겁이 납니다.

거룩한 옷 - 주님 주시는 의를 사모하고 주께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그가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소원을 주실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영원하신 왕 그 분께서 새로운 힘을 날마다 공급하실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주를 위해서 충성하기로 작정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제사장이신 주님은 새벽이슬 같은 신선함으로, 아름다움과 순결함으로 충성하기를 바라십니다. 새벽이슬 같은 신선함과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마음을 합하십시오.

최선의 헌신을 하는 주의 백성들을 보면 보는것만 해도 힘이 납니다. 그러기에 주를 위해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 그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놀라운 영향력을 세상 속에 미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울산교회보다 큰 교회, 한국에 많이 있습니다. 한 오륙년 되었나요? 서울의 온누리 교회에 올라간 적 있었지요? 집사님 한분이 그러셨어요 “우리 울산교회 보다 큰 교회 있는 것 처음 알았다”고 그러더군요. 미리 알아놓으십시오 많이 있습니다. 울산교회보다 큰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교회가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부르는 찬송 소리가 여느 찬송 소리와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헌신하려고 하는 자세가 남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을 믿습니다. 저는 결코 서울에서 일할 데 없어서 울산 온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경상도 사람들 사귀는데 세월 걸리지만 마음 합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8학군 출신들이 대학 1,2학년 까지 잘 나간다고, 그런데 3,4학년 접어들면서 부터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더 한몫 한다고 그러더군요. 합천산골짝, 거제도 이런데서 인물 안 납디까? 우리 울산 사람들 마음먹으면 천하를 바꾸는 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천만이 넘는 기독교인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숫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말 왕께 드리는 헌신처럼 헌신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 영화에서 멋지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 놓는 사람들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세상에 사라져버릴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 나라를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드는 영광스러운 일에 부름받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을 영원한 왕, 승리하실 그분을 위해서 드리십시오. 그 분이 우리에게 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 생명을 버리시고 마지막 피를 쏟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주 위해 충성하기로 결단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 교회가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남은 만 명의 군사들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300명을 추리셔서 기드온과 함께 하나님의 승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 분께 가까이 가기를 소원하십시오. 한 사람도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함께 주를 섬길 때, 거기에는 놀라운 상승효과가 나타납니다. 혼자 찬송 하는 것 보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같이 하면 더 힘을 얻습니다.

백 사람의 헌신은 열 사람의 헌신의 열 배가 아니라 백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를 섬기기로 작정하고 나아가면 우리 울산교회는 울산광역시 전부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헌신의 소식은 한국을 새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새벽이슬 같은 신선함을 여러분의 주께서 여러분의 삶에 원하고 계십니다. 새벽이슬 같은 아름다움을 여러분으로부터 기대하고 계시는 왕이 계십니다. 새벽이슬 같은 순결함을 여러분의 삶에서부터 주님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활기를 가진 자만이 주의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무력한 젊은이들보다는 생기 넘치는 노년의 삶을 더 아름답게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성 노회, 사랑 선교회는 결코 일이 이제 다 끝난 모임이 아닙니다. “나는 올해는 안 올라 갈 거다” 안 올라 가려고 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여러분의 헌신을 통해서도 앞으로 주의 교회를 위해서 놀랍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우리 울산교회는 성노회 연령에 속하는 두 분 장로님처럼 앞장서서 주의 일에 헌신하는 분들 있습니까? 젊은 사람들 몇 년하고 돌아와서 종적을 감췄지만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듣고 있습니다.

노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아니한 소원들을 가지고 기도하게 될 때에 여러분은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성노회, 1,2 사랑 선교회는 1,2 청년부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무력한 젊은이들보다는 생기 넘치는 헌신하기로 작정한 노년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추석에 자녀들이 가져오는 선물꾸러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저 녀석들 마음속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노년들이 많아질 때에 우리 울산교회는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매월 붙여주는 용돈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 젊었을 때 가졌던 그 신앙의 정열이 내 자녀들에게 있는지를 살필 때에 교회는 날로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성노회, 1,2사랑선교회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의 대열에 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젊은이라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어르신 여러분, 노년이라고 이제 힘이 없다고 결코 말씀하지 마십시오. 기력이 여전치 못하지만 아직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이 평생 이룬 것 보다 더 큰 일 이루어 가실 수 있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살아계시기에 주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새로운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왕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승리자로 지금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의 소원에 따라서 합당한 삶을 살아보십시오.

새벽이슬은 날마다 내려서 초목을 새롭게 합니다. 새벽이슬같은 주의 백성들의 헌신도 날마다 요구됩니다. 주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영원히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전5555 1년 4개월 앞두고 있습니다. 1년4개월 앞둔 채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초가을 시원한 날씨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헌신의 소원을 새롭게 다져야 합니다. 물론 저는 비전5555를 스스로 세운건 아닙니다. 외압에 의해서 타의반 자의반 이렇게 기도하며 오천명의 예배자, 오백명의 헌신자, 오십명의 장단기 선교사, 국내외 장학생, 다섯곳의 개척교회 후원과 설립을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1년여 앞두고 한번 보십시오. 물론 아직도 오천명 예배자, 별반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통계가 보여주는바에 의하면 오천명 등록자를 울산교회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백명 헌신자, 각 영역에서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십명 국내외 선교사들 벌써 87명, 50년 되면 100명은 채울것입니다. 국내외 장학생 오십명, 아주 미진한 부분중의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 곳 개척교회, 일산 벧엘교회, 대구불꽃교회, 제2울산교회, 제3울산교회, 그리고 이제 10월 달에는 시간만 나면 일본 가서 다섯 번째 교회 개척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달 말에 선교사님 이사하고 우리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복만 장로님은 혼자 나가셔서 벌써 일곱 곳 교회 개척을 했고 그중에 여섯 곳은 예배드릴 건물까지 갖추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후원 했던 것, 하나도 개인용도로 쓰지 않고 다 모아서 여섯 곳 예배처소를 만드는 일에 드렸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가 간구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넘치게 해 주시는 분들이 여러분과 제가 지금 예배하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위해서 즐거이 헌신하려고 하면 덥던지 춥던지 날씨 상관 하겠습니까? 주의 날을 위해서 우리가 가진 것 시간입니까? 드리십시오. 재능입니까? 드리십시오. 물질입니까? 드리십시오. 그 승리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그 영광에 동참할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고 있습니다. 최후 승리의 싸움을 위해서 주의 권능을 힘입고 싸워야 할 오늘 여러분은 살고 있습니다. 그날의 승리가 오늘 헌신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여러분의 왕, 영원한 제사장으로 믿고 고백하고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고백에 어울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한주간의 삶 168시간 순간순간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이 여러분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왕, 여러분의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통해서 영원한 제사장 사역이 이 땅에 편만해 지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사죄함 받지 못한 사람들이 용서의 복음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백반 울산 시민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새생명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나라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을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부 2부 예배시간 보니까 틀림없이 지난주간은 명절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다가 태풍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태풍에 다 날아갔는지 새로 나온 사람 한사람도 없었어요. 보통 때는 여름 지나면서 한번도 그런 일 없었는데. 이제 태풍도 다 불었고 하니까 다시금 원대복귀 합시다. 

사람들은 죄 용서 받지 못해서 행복하지 못한데 애꿎은 조상 탓만 하고 있습니다. 조상 앞에 술잔만 따라드리면 복 받을 걸로 생각합니다. 부모 그렇게 돌아가게 한 것은 누구 잘못인데 돌아가시고 난 뒤에 술잔만 따르면 복 받을 걸로 생각하는 그 얌체들, 살아계신 부모를 잘 섬겨야 됩니다. 복 받으려면.... 꼭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한다니까요. 성경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그랬는데 살았을 때는 공경하지 않고 백화소주 갖다가 따라드린다고 잘 될 걸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대열에 여러분이 함께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의 무디어진 주를 향한 사랑들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더운 여름 지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지쳐있는 모습을 가지고 때로는 서로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가을바람 불어오는데 새벽이슬 같은 헌신을 주께 드리기로 각오하십시오.

우리 왕,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을 위해서 우리의 삶 마지막 순간까지 쏟아 붓기를 소원합시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드리고 주를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를 소원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악하여지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창녀와 같이 되어지는 이 세대 가운데서 주의 마음에 합한 신앙공동체를 이 땅에 많이 회복하여 주기를 간구합시다. 마을마다, 세워진 교회마다, 주를 위해서 지사충성하는 군사들이 모여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여서 자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여서 자기주장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 유익 꿈꾸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드릴 것이 없을 때는 눈물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피 까지도 쏟겠다는 각오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자세를 돌아봅시다. 막연히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셨습니까? 이제는 구체적인 헌신을 계획하십시오. 사람들의 평균 수명 이라는 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남자 72세, 여자 79세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나이를 빼면 지금 몇 년 남았는지 계산할 줄 알아야 안 됩니까? 물론 그보다 빨리 갈수도 있고 좀더 하나님이 남기실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정도 계산은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몇 년 남았는지 봐 가면서 살아야지 언제까지나 손자들, 손녀들 매달려 가지고 그렇게 세월 보내면 안 됩니다.

나는 손자들에게 매여 있는 우리 권사님들 볼 때에 안타까운 생각은 들지만 마음으로 크게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너희 아이 너희 키워라” 이말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저는 그럴 겁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세 명은 낳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목사들 닮아서 그렇죠? 여차하면 다섯 명도 낳으라고 권합니다. 말 듣는 사람이 아직은 없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워야 됩니다. 연세가 들어가면 이제 곧 신랑 만날 건데 신부 화장 해야지 언제 손자 손녀들 기저귀만 갈아 채운다고 그러고 있어서 어쩔 겁니까? “너 뭐하다 왔니?” “난 손자 키우다가 왔습니다.” 그러실 거예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주님 일은 맞습니다. 그러나 좀 더 큰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것이 주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지 한번 양심에 물어보십시오. 제가 남의 양심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젊음의 아름다움은 쉬이 사라집니다. 구체적인 헌신계획 한번 잡아 보십시오. 나의 남은 햇수 몇 년인데 그 날 어떻게 주를 위해 쓸 것인지 계산한번 해보십시오.

우리의 날들은 쉬이 지나갑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주님 아는 영광의 광채가 빛나야 합니다. 그때 화장품 가지고 얼굴 다듬을 거라고 매달리지 말고 하긴 하겠지만 옛날처럼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거든요. 이제는 신앙의 아름다움이 얼굴에서 빛나야 할 때 아니겠습니까? 할일 많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뭐하다가 왔니?”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시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돌아오기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예배한 모든 주의 백성의 마음 속에 주를 위한 다짐이 새로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이제는 새롭게 충성하고자 하는 소원이 가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꿈이 현신 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손댄 일들, 이루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치열한 마지막 싸움을 싸우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방에서 도움의 요청을 듣고 있습니다. 내미는 손을 보고 있습니다. 그 내미는 손을 붙잡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도움을 응해야만 합니다.

어떤 요청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민감한 공동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헌신을 오늘 드리는 모든 자들에게 새벽별과 같이 빛나는 내일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승리하는 한 주간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멋있게 주를 위해서 남은 생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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