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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쉬심과 같이 / 히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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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히브리서 4:9-10
▶ 제목 : 하나님의 쉬심과 같이 

불란서의 유명한 작가 피에로 상쏘가 쓴 책「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은 3년 전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책입니다. 이 책은 “속도”를 현대의 미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완강하게 거부하고 오히려 “느림”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침마다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는 감동을 아느냐?”,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아느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 문화의 가장 큰 비극은 “쉼의 상실”이며 반대로 현대 문화의 구원은 “쉼을 회복”하는데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만큼 쉼을 상실한 사람들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삽니까? 외국에 나가보면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라는 말은 기억을 합니다. 빨리 빨리라는 말이 한국 사람들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급하고 바쁘게 다닙니다. 이어령씨의 말에 의하면 우리 조상은 원래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옛 우리 조상들의 행적을 상고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느린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걸음도 천천히 걷고 음식도 천천히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어령씨에 의하면 라면이 나오면서부터 우리가 급해졌다고 합니다. 라면이 일본에서 시작이 되었는데 종류를 다양화시킨 것이 한국 사람입니다. 숫자마다 라면의 이름을 붙여서 일번지라면, 이백냥라면, 삼양라면, 사발면, 오양면, 육개장, 칠보면, 팔도라면, 구운면, 열라면... 이렇게 여러 종류의 라면을 만들어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 인스턴트 문화가 발달되면서 우리가 굉장히 급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유가 없고 조급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 열심히 하고 참 좋은데 한국교회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여유입니다. 바쁘게 사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할 것은 쉼을 상실하고 안식을 잃고 이런 것을 한다면 우리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상실한 우리의 쉼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도록 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안식을 마련하고 결국은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세 종류의 안식이 있습니다.

첫째 ,이미 들어간 안식이 있습니다.

이미 얻은 안식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얻는 것입니다.

3절에 “이미 믿은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이미 얻은 안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ꡒ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로 쉬게 하리라ꡓ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다 맡아 주시고 진정한 쉼을 주시는데, 우리가 예수를 믿었노라면 한번은 이러한 쉼을 누리는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아직도 우리 마음에 쉼을 느껴 본적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 자체가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마음속에 쉼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친구들이 차이점을 묻자, 환경이나 모습이나 말투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무엇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하지만 내 마음 속에 큰 무거운 짐이 없어지고, 평강이 생겼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짐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그 죄를 탕감해 주시기 때문에 그 형벌을 우리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밖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질병의 고난 또한 주님이 맡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진정한 평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쉼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예수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두 번째 ,아직 들어가지 못한 안식이 있습니다.

9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안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 누리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고 순종하고 사는 것은 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 안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여러 번 강조를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느라고 손해를 보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이 믿음을 끝까지 붙잡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다 살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안식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 살다가 떠나는 여행길과 같지만 하늘나라는 영원한 세계인데 거기서 안식을 누리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안식은 우리에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이 안식은 영원한 안식의 표본이요, 잠시 우리가 맛을 보는 것이지 영원한 안식은 우리가 다 누리지는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에서는 “우리가 안식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지금 안식을 조금 맛보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마음놓치 말고 더욱 힘써서 이 안식에 들어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 2:12절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믿음을 놓치지 말고 믿음으로 살고 말씀에 순종해서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애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왜 못 들어갔습니까? 말씀을 믿음에 화합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예로 들면서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들어가게 될 안식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가 가졌던 안식이 있고 앞으로 우리가 누릴 안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ꡒ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쉼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ꡓ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 안식을 경험한 자는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는 것과 같이 누리는 안식이 있는데 이 안식은 현재에 누리는 안식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안식이 있다는 말인데 우리들은 과거의 안식과 미래의 안식은 중요시하면서 현재의 안식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안식에 대해서 너무나 과소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쉰다고 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거나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들은 부족하고 미래에 올 그 안식을 소망하는 것은 강하면서도 현재에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그것은 미래에 우리가 누릴 안식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금욕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미래에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안식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누리는 안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서 이 안식을 누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는 누구든지 다 잠을 잡니다. 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시편 127편에 “우리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면 늦게 자고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면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애쓰고 수고하고 일만 한다면 얼마나 헛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잠을 주시는데 잠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잠을 자고 잠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즐길 줄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자도록 만드신 것, 잘 수 있는 이런 여건을 주신 것, 이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잠을 소홀하게 여기고 잠자는 것을 고맙게 여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는 것 그 자체가 큰 축복이고, 우리가 단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는 증거인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일주일의 생활을 하면서 안식일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이레 되는 날은 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계명에까지 적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안 하면 안 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우리만 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안의 가족도 쉬고, 종들도 쉬고, 손님들도 쉬게 하고, 심지어는 육축과 짐승들까지도 다 쉬도록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십계명의 제 4계명인 안식일의 계명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세우신 계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계명을 따라서 이레 되는 날 쉬어야 됩니다. 안식일에 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발로 차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위해서 나머지 엿새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안식일을 확보하여 지키면서 이 날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재충전도 얻고 몸도 쉬면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또 일주일을 지탱해 나가면서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하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데 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훈련을 하는 시간이 이 안식일, 우리가 지키는 주일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안식일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저도 잊고 이것을 다른 것과 바꾸어 버립니다. 물론 안식일동안 쉬지 않고 일하면 돈도 조금 더 벌고 사업이 잘될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함으로 돈 좀 더 벌고 자기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소중히 여기시는 안식은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소중합니까? 안식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일, 이것은 우리의 축복인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로 이것을 다른 것과 바꾸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철을 따라서 우리들에게 쉴 수 있는 절기를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세 차례씩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의 절기를 지켰는데 절기를 지킬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기마다 다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쉴 수 있도록 하며 안식을 주시려고 이 절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때때로 계절을 따라서 주시는 안식의 기회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계절에 있는지 모릅니다. 휴가철, 이번 주간과 다음주간이 휴가의 성수기를 이룰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의 빈 자리가 조금 있는데 비가 와서 못 오셨는가 생각했더니 휴가철이라서 못 오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휴가를 떠나는 계절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에 겔럽에서 조사한 것을 신문에서 보니까 금년 휴가철은 예년에 비해서 휴가 가는 사람들이 줄 것이라고 하는 예상입니다. 겔럽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 보니 금년에는 휴가를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50%, 휴가를 갈 계획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50%이었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휴가를 갈 계획이 있다는 사람이 60%,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40%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 전 1994년의 통계를 보아도 휴가를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56%,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44%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보다도 금년에는 휴가를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줄었습니다. 왜 줄어들었겠습니까? 그 이유를 분석하고 설문 조사를 해보니 결국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넉넉한 사람들은 금년에도 휴가를 많이 가지만 경제적으로 저소득층은 휴가를 안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고 이런 때에 우리가 휴가 얘기를 하는 것조차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일년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가는 계절을 맞이했는데 휴가를 갖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기회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고 미래에도 안식을 주셨지만 현재에도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안식의 기회를 바로 알고 잘 선용할 때에 이것이 복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의 기회를 다 놓쳐 버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영원한 안식에는 들어가겠지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고생만 하다가 안식이라는 것은 조금도 모르고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장차 영원한 안식에도 들어가길 원하시지만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안식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합시다.

하나님을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안식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만드시고 제 이레 되는 날 안식하셨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안식하셨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서 안식하셨겠습니까?

안식은 귀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도 안식하셨음과 같이 우리도 안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십니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시면서 안식을 즐기셨습니다. 예수님도 물론 안식일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단잠을 주무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는 분으로 알지만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가끔 잠자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은 주무실 때에 단잠을 주무시는 것입니다.

한 번은 배를 타고 가실 때 배가 풍랑을 맞아서 다 잠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거기서 쿨쿨 주무시고만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죽을까봐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예수님은 주무시고만 계시니 하도 답답해서 예수님을 깨우면서 “예수님,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깨어나서 “왜들 이렇게 걱정들을 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하시면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서 잠잠케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무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육신적인 잠을 통해서 안식을 가졌고 또 안식일 날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갖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충분히 안식을 누리면서 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시면서도 또 기회가 있는 대로 쉼을 누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떤 분이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해 보니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3년 동안에 기록 가운데서 예수님이 쉬셨다고 하는 말이 10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쉴 줄 아시는 분이십니다. 무수리처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때는 일을 몰아서 집중적으로 하실 때도 계셨지만 예수님도 쉴 줄 아십니다. 일하시다가 무리들을 떠나서 혼자서 조용한 곳에 가서 쉬시는 예수님, 그러한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쉼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전도를 하면서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동안 쉬어라 하시면서 그들을 한적한 곳으로 보내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에게 휴가를 주시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쉬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쉬는 것을 귀하게 여기면서 자신들도 쉬셨고 또 제자들에게도 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쉼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 쉼을 잘 활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 쉼을 누리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육신적으로만 쉬려고 하고, 이기적으로 쉬려고 하고 세상적인 향락이 마치 쉬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여름휴가철에도 많은 사람이 쉰다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육신을 즐겁게 하고 참 쾌락에 빠지는 것을 휴가라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쉼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쉬셨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쉬셨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을 감상하시기 위해서 쉬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미래의 일들을 계획하시는 것이 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 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그것을 같이 나누는 그러한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족들과 휴가를 가지면서 서로 싸우고 다투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런 시간들이 된다고 하면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시간들, 앞으로를 위해서 계획하는 그런 시간,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쉬면서 우리의 육체적인 힘과 영적인 힘을 재충전하는 시간들,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휴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으로 과거에도 주셨고 미래에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재에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이 있음을 알고 그 안식을 소중하게 여기고 안식을 누릴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안식을 누리는 가운데 감사하고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우리들에게 재충전이 되어서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끝까지 걸어가고 믿음을 지키는데 유익하고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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