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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요 3:14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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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 : 14 - 16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유대의 관원이자 선생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늙으면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진지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거듭난다'는 말의 의미는 두 번째로 태어난다는 의미와 하늘로부터 태어난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전자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계십니다(요3:11).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민수기 21장 8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에서 갑자기 광야의 뱀 사건을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예수님 자신의 의도를 바로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구속사건의 진리이자 곧 사람이 영생을 얻는 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신 말씀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처럼' 은 '이와 같이'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했는가?

Ⅰ. 하나님의 사랑은 주권적인 사랑 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자체가 사랑입니다.

1) 그 사랑은 능동적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은 수동적인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을 수 없는 지극히 능동적인 사랑입니다.

2) 그 사랑은 선수적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Ⅱ. 하나님의 사랑은 온세상 죄인을 향한 사랑입니다.

1) 이세상 죄인들에게 효과있는 사랑입니다.
본문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상』(코스모스, )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인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의 전통적 사고에 대한 일대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들에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 세상은 모든 피조세계와 모든 인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타락한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 삭개오 집에 들어가셔서 구원을 선포했습니다(눅19:9).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며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마9:2). 예수께서 시몬의 집에서 한 죄 많은 여자에게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눅7:48).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죄인입니다.

2) 이세상에 대한 제한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세상을 향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하여 제한된 사랑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아이러니가 아니라 하나님 자기 사랑의 정당성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주권적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6절에도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11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냈으나 세상은 그를 몰랐습니다. 이 세상은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Ⅲ.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 니다.

본문 3장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위의 두 성경은 예언과 성취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확증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민수기 21장 8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은 십자가 대속의 희생적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대적할 때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에게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달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말대로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 즉 살게 되었습니다(민 21:4-9).

이 말씀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사망에 처한 죄인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직유법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있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Ⅳ.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며 전 종족적인 사랑입니다.

본문 3장 16절은 다시 말하기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는 범위가 전 세계적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랑은 지역적으로 전 세계적입니다. 종족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인류에 미칩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절대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지역적으로 종족적으로 시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마저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은 그를 믿는 믿음도 주신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택자들은 궁극적으로 믿고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Ⅴ. 하나님의 사랑은 영생을 주시는 사 랑입니다.

본문 3장 16절은 또 말하기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영생』은 바로 '구원'입니다. 영벌에서 영생으로 옮기는 구원입니다. 여기에 영생 앞에 『멸망치 않는다』라고 함으로 영생을 더욱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3장 18절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데 멸망하지도 않고 심판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를 이중적으로 표현하므로 영생과 영벌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곧 영생과 등식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축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거역한 죄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아니한 죄입니다. 이로 인한 우리의 죄 값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될 만큼 큰 죄악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은 사죄의 환희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 부활의 기쁨입니다. 생과 사의 극과 극의 분기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 사랑은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죄인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주적이며 전 종족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영생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된 소식은 우리가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된 소식을 먼저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빚진 것이 아니라 그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기 때문데 빚진 자들입니다. 빚진 자들은 항상 그 빚에 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일이 바로 빚을 청산하는 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처럼 주신 그 사랑으로 이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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