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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을 위해 자기에게 독재자가 되라 / 약 1: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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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을 위해 자기에게 독재자가 되라
젊은 설교 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야고보서 1: 19-27

  어느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했습니다. 몸무게 검사를 하는데 기계가 워낙 최신기계이다 보니 체중계가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몸무게는 50Kg입니다" 라고 기계의 여자(?)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반의 고도의 비만인 여학생, 무려 몸무게가 80kg이 넘는 여학생이 조심스레 체중계에 올라갔습니다. 체중계가 뭐라고 했을까요? 기계에서 하는 말이 그럽니다. "한 사람씩 올라가 주세요"

  요즘 자신과의 싸움 중에 가장 흔한 전쟁이 살과의 전쟁 같습니다. 사람들이 살을 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자신과의 시험을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을 합니다. 자신을 통치하며 다스리며 통제하며 절제하며 자신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자신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컨추롤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식욕을 다스리고, 정욕을 다스리고, 욕망을 통제하고, 거친 성질을 통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절제하고 자신을 다스리고 자신을 통치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고, 많은 지역을 통제할 수 있지만 짐짓 자신을 통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영성에서는 패배자가 됩니다. 자신을 강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나 자신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잘 컨추롤 하는 작은 통치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컨추롤 하는 것이 싶지 않습니다. 자기를 다스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온전히 절제하고 자신을 다스리며 자신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을 잘 컨추롤 하는 작은 통치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신을 통치하는 독재자가 되지 않고 결코 영적인 덕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영성을 위해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삶에 충실한 작은 통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영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여기에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중요한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2절 후반부에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강하게 권면했습니다. 영적인 경건, 영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단서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직업의 세계』구본영, 211p) 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는 작은 통치자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경건을 위해 자신을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절제해야 합니다.

  경건을 위해 자기에게 독재자가 되어보십시오. 구체적으로 먼저 자신을 절제해야 합니다. 본문 27절에 참 된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킨다는 말은 절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절제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더디'라는 말이 절제라는 말입니다. 절제, 이것은 자신의 영적 세계를 잘 관리하는 길입니다. 자신의 영적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가 되는 길이 이것입니다. 그 길은 자신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면 그의 운명은 끝납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세계를 다스리지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서 역사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계를 통치하는 독재자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서 역사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14세기 벨기에에 레이몬드 3세라는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을 잘 보살피지 못했던 그는 혁명군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새 군주는 레이몬드 3세를 차마 사형에 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특별하게 건축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엄청난 탐식가인 레이몬드 3세가 몸집을 줄이면 탈출할 수 있도록 조그마한 비상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맛있는 음식들을 제공했습니다. 식욕을 절제하면 그는 얼마든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이몬드 3세의 몸은 점점 더 뚱뚱해졌습니다.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매일 많은 음식을 먹어치웠습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그는 식욕의 포로였던 것입니다. 백성을 통치했지만 자기를 이기지 통치하지 못하고 식욕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이기는 자가 온 세상을 이기는 자입니다. 자신을 통치하는 자가 성공하는 자입니다.

  영적인 덕성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건을 위해 자기에게 작은 독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절제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의 더디하라는 말은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절제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빨간불을 켜야 합니다. 자신을 통제하고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인지 아닌지 일단 판단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면 보류하십시오. 그리고 판단하십시오. 그 결정이 좋을 것 같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이것이 절제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만이 경건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작은 통치자만이 영성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절제입니다. 이 절제의 은사들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경건을 위해 자기에게 작은 독재자로 서십시오.

  둘째, 경건을 위해 자신의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의 세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을 다스리기가 싶습니까?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던가요? 법이 나를 통제해야 합니다. 규범이 나를 통제해야 합니다. 환경이 나를 통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다스림은 말씀을 통한 다스림입니다. 이것이 나의 경건을 보장해줍니다.

  본문 21절에서 25까지 보면 '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21절에 자신을 다스리려면 버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나에게 불필요한 것은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다스림을 받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마음에 시긴 도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씀이 마음에서 말합니다. 그러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길입니다.

  부자만을 연구해 가지고 유명해진 토마스 제이 스태니(Thomas J. Stanney)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백만장자 마인드』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백만장자들이 백만장자가 된 이유에 대해서 심층분석 한 결과 여덟 가지 특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은 결코 교육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고 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만장자가 되는 길은 성실함과 건전함과 원만한 가정과 종교적 신앙과 우정과 스포츠맨쉽, 낙천성, 책임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관리하는 사람, 자기를 컨추롤 할 수 있는 사람, 자기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법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덕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기관리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독재자는 자신을 잘 다스립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영성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작은 독재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자기관리를 잘 하는 것은 영성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관리 자기를 잘 조절하는 자가 공부도 잘하는 것입니다. 원동연 박사가 쓴 『5차원공부법』이라고 있습니다. 그는 공부를 잘하는 다섯 가지 비결을 말했습니다. 심력, 체력, 지력, 인간관리능력, 그리고 다섯 번째로 중요한 것이 자기관리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공부 못 하는 학생의 특징은 자기관리능력이 없어요. 잠시도 앉아있지 못합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놀고 싶으면 놀아야 합니다.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합니다. 쉬는 시간만 잘 지킵니다. 그런데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자기를 가누지 못합니다. 자기관리능력이 있어야 공부도 잘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을 유지하는 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것, 이것이 가장 최고의 영성의 길입니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다스리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다스리지 못 하는 것입니다. 알콜중독자가 알콜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범적인 죄에 탐닉되어 있는 자는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자신을 관대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너무나 방임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자신을 세상에 노출시킵니까?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가 되십시오. 오직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삶을 유지하는 길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작은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스릴 때 온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세계를 다스리기 이전에 자신을 다스리십시오.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적인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면서 자신의 세계에 충실한 작은 독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경건을 위해 자신를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해야 합니다.

  경건을 위해 자신을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해야 합니다. 통제를 통해서 자신을 다스리게 됩니다. 통제하면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구속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통제가 없이 질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원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자유를 축복으로 사용하지 않고 죄의 기회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자유가 주어진 삶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통제해야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영성을 위해 우리는 이 자신을 통제해야 합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혀에 재갈을 먹이는 통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야고보서 1장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 혀에 제갈을 먹이고 이를 갈 듯 자신을 통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적인 덕성인 경건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26절의 뉴앙스가 참 의미가 있습니다. 보세요. 나는 좀 경건하다 생각하고 자기 혀에 재갈을 먹이지 않는 자, 나는 좀 경건하니 재갈을 먹이지 않고 서도 경건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를 뭐라고 했습니까? 그 사람은 자기를 속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경건은 헛된 경건이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재갈을 먹여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통제하는 독재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경건을 위해 자신을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통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어떤 상황에 놔두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망난이가 됩니다. 성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통제로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망난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놔두면 그대로 두면 망난이가 됩니다.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통제해야 합니다.

  존 우든이라고 하는 농구 코치가 있는데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코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몸담았던 UCLA농구팀을 10년 동안 계속 참피언 자리에 머무르게 했으니까. 그 10년 동안 선수들이 얼마나 바뀌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UCLA는 전국적인 농구 챔피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코치가 잘했기 때문입니다. 코치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이 코치가 농구선수들을 훈련시키면서 입버릇처럼 항상 하는 교훈이 하나 있었습니다. 'selflessness' - 자기 자신을 절대로 드러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selfless, 자기를 죽여버리라는 것이다. 자기 과시 - 내가 잘한다, 내가 남보다 낫다, 이런 칭찬을 들으려고 하는 순간에 나도 망하고 팀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운동은 teamwork입니다. 그러니 나만 잘하려고 하는 순간, 팀은 끝난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자신을 통제하며 자신을 관리합니다. 그런 선수가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됩니다. 경건, 영성,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통제하지 않고서 경건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경건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시게 되면 경건을 사모합니다. 인간은 타락된 존재이기에 경건을 노력해야합니다. 이 노력의 자기 통제입니다. 자기를 통제하지 않고 경건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 거룩한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이 살길입니다.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결코 영성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경건은 자연히 다가오는 것도 우연히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경건은 자기 통제의 훈련에서 유지됩니다. 이 경건을 위해 자신을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

  유명한 안소니 멜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켜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켜 주십사하고 기도를 드렸다. 70이 된 오늘은 난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참 진리입니다. 자기를 통치해 달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입니다.

  경건은 자기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성은 내 삶의 변화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통제하지 않고 경건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자기를 정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경건을 위해 독재자가 되어 봅시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악덕 독재자가 아니라, 나를 통제하고 다스리고 절제하는 독재자 말입니다. 내가 나를 통치하지 못하고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경건을 위해 자신을 통치하는 작은 독재자가 되십시오. 영적인 덕성을 위해 자신을 다스리는 작은 독재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영성이 사는 길입니다. 내 믿음이 사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을 절제하며, 자신을 통제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자신에게 작은 독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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