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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죽은 사람들 / 히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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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죽은 사람들
히 11:21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가 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동시에 믿음으로 죽었던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은 죽을 때에 ‘믿음으로’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였으며, 요셉은 임종시에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다고 말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믿음으로 잘 사는 것 뿐 아니라, 믿음으로 잘 죽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인생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올바른 믿음으로 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우리 후손들과 주변 사람들에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증거하며 이 땅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것과 믿음으로 죽는 것은 별개의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믿음으로 잘 살아온 사람만이 믿음으로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잘 보낸 하루가 평안한 잠을 가져다 주듯이 잘 보낸 일생이 평안한 안식의 죽음을 우리에게 선물한다”고 했습니다만, 일생을 좋은 믿음으로 살아온 사람만이 믿음으로써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야곱과 요셉은 믿음으로 죽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그들은 어떻게 믿음으로 죽은 것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중 21절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창세기 48장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야곱이 임종하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먼저 불러 놓고 축복을 하는데 오른손과 왼손을 어긋나게 해서 오른손은 차남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장남인 므낫세의 머리에는 왼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비록 육체적으로는 대단히 쇠약하고 육신의 눈은 어두워서 볼 수가 없었지만 그의 심령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은 가운데 그런 축복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전통과 관습을 따른다면 혈통적인 장남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는 것이 정상적이겠지만,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는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서 야곱은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남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된 것이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육체가 약해지고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면 정신도 흐려지고 영적인 분별력도 흐려진다고 합니다만,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야곱은 비록 육신의 눈은 어두워져서 사물들을 볼 수 없었지만, 영적인 눈은 너무나 밝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분별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4:16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육신도 쇠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 사람만은 날로 새로워짐으로써 오히려 젊을 때보다 영적인 눈이 더욱 밝아지는 것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의 22절에서는 야곱의 아들인 요셉도 역시 믿음으로 임종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참 훌륭한 삶을 살았으며 아주 큰 업적도 많이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이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그가 임종할 때 그가 남긴 유언의 내용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창세기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거기서 요셉은 죽을 때가 되자 자기의 형제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남기는데, 그것은 자기의 죽으면 그 당시 그들이 살고 있던 애굽 땅에다 묘를 쓰지 말고 유골만 입관한 채로 잘 보관하고 있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장차 애굽에서 나가게 될 때 자기의 유골을 메고 나가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이북 땅에 살다가 월남을 한 분들이 죽을 때에 내가 죽거든 남한 땅에다 무덤을 쓰지 말고 유골만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통일이 되면 내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기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요셉이 자신의 유골을 애굽에다 매장하지 말고 장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들이실 가나안 땅에다 묻어 달라고 한 것은 앞서 우리나라 실향민의 유언 이상의 중요한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죽음과 자기의 장사 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동포들과 후손들에게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이 장차 자기의 유골이 묻히기를 바랬던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며 장차 그들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인 동시에 장차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자기의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시신을 애굽 땅에다 매장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언약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요셉은 애굽의 애굽 땅에 임한 7년 동안의 큰 흉년에서 온 백성을 구원해 낸 구원자였으며 애굽의 경제 제도를 발전시킨 위대한 정치가로서 그 당시 애굽의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실질적인 통치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요셉이 만약 죽게 되면 그의 장례는 화려하게 국장(國葬)으로 치러지고 그의 유해는 애굽의 왕족들이 묻히던 묘인 피라미드에 묻힐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집트의 유적들 중에서 요셉의 피라미드를 구경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처럼 애굽 땅에서 큰 묘에 묻히는 장례를 원치 않았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유골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애굽 땅에서 나가게 될 때 자기의 유골을 메어다가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도 부탁을 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유언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출애굽의 사건을 믿는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땅에 들어와서 비교적 편안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라는 탁월한 한 사람으로 인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동족들에게 이 애굽 땅은 우리에게는 어디까지나 이방 땅에 불과하며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밖에 없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서 자기의 유골을 그 땅에 묻지 말라고 유언을 했던 것이며 바로 그런 요셉의 마지막 임종의 모습이 바로 믿음의 행동이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임종시의 유언은 자기의 동족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애굽으로 상징되는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사모하며 살 것을 당부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죽은 후에 이름 석자 남기는 것을 아주 큰 명예로 여깁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세상의 상징인 애굽 땅에 인간적인 흔적이나 자기 이름 석자마저 남기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며,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자기의 동족들에게 우리는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가야 할 나그네와 같은 존재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자기의 시신을 애굽 땅에 장사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우리가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야 할 나그네에 불과하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떠나가게 되는 날,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오직 하나님 나라만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최종의 본향임을 증거하면서 떠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인 야곱과 요셉이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후손들을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적인 물질이나 재산보다도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유산으로 남겨 주면서 떠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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