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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라고 믿었으니 (롬 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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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고 믿었으니
(로마서4:18-25) 2003. 9. 21(주일낮)

이번에 남부지방과 강원도를 강타한 매미의 특성은 중형 태풍으로 중심부근 최대풍속 38m/s이며, 순간 최대 풍속은 60m/s에 달했으며 약 300mm의 강수량을 뿌린 태풍입니다. 1959년 사라 태풍의 경우는 중심부근 풍속은 35.8m/s, 순간최대 풍속은 52.7m/s였다는 것을 참고하면 이번 매미태풍의 정도의 위력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태풍 하나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탄 10,000배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번 매미 태풍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대락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태풍 ‘매미’로 많은 과수농가가 피해를 입었지만 파이프나 철골로 덕 시설을 한 과수원은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습니다. 철골파이프에 묶어 키우는 과원은 이번 태풍에 50%가량 낙과 피해를 입었으나 덕 시설이 없는 과원은 80% 정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나 사과 과원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군위면 군위읍 내량리>의 홍성일씨 같은 경우에는 덕 시설을 한 덕분에 낙과율이 20%미만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철골 파이프(덕), 즉 지주대를 이용한 과원의 과실의 낙과율이 낮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매미"와 같은 태풍속에서도 낙과율이 적은 이유는 지주대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주대는 누구이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지주대에 접붙임 받고 그를 의지하면 분명한 결실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벤치마킹이란 원래 토목공학에서 측량할 때 쓰는 기준점인 벤치마크(Bench Mark)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업의 경영 철학에서 적용하는 용어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벤치마킹이 있어야 합니다. 닮고 싶고 되고 싶은 인물, 즉 기준점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 만큼, 저 정도는 되어야 겠다는 기준점이 있어야 풍랑이 일어도 인생을 표류하지 않고 자신을 굳건히 지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홍정욱, 그는 세계최고의 대학 하버드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국제 변호사겸 M&A 전문가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30대 초반의 언론사 사장으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삶의 단계 단계마다 적절한 벤치마킹(bench marking) 인물을 설정하고 그의 삶의 방식을 닮으려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케네디를 벤치마킹했습니다. 지금은 언론인으로서 CNN 창업자인 미국의 언론인 '테드 터너'를 벤치마킹 인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사무기기 전문 업체인 제록스는 70년대까지 세계시장의 97%를 점유하는 사무기기 업계의 왕자로 군림해왔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와서 일본의 케논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았고, 8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시장 점유율이 50%이하로 떨어지는 커다란 경영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제록스의 경영진들은 도대체 케논이 어떻게 하길래 품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내놓을 수 있는가 하고 디자인, 가격정책, 원가관리, 생산관리, 품질판매 등 모든 것을 벤치마킹하고 그것을 회사의 경영과정에 적용, 개선해 나간 결과 품질수준을 높였고, 결함수를 낮추었고 생산원가를 50%, 부품갯수를 50%로 절감하고 개발기간을 66%로 단축하는 엄청난 경영성과를 올렸습니다.

우리가 벤치 마킹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선배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기도 하며 그것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기준점을 가지고 살면서 불가능을 가능케 했으며 희망을 잃어 버렸을때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특히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기준점으로 삼고 벤치 마킹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모습이 아브라함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하는가를 알아보면서 은혜를 같이 나누겠습니다.


1. 소유의 유무를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을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면 우리는 곧잘 자신의 형편을 얘기합니다. “내게 있는 것들 중에 기대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학력이 좋은가? 재산이 있는가? 권력이 있는가? 지위가 있는가?” 무엇인가는 가진 것이 있어야만 희망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가지고 미래를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인생을 외모로 판단합니다. 조건이 좋은 사람에게는 기대를 걸고, 조건이 나쁜 사람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계산치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죽은자를 살게 하시고, 존재하지도 아니하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세계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축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아브라함이 늙었을때 주어졌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그때까지 자식이 없었으며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세, 사라는 구십세가 되었기에 그들에게 자녀가 생겨난다는 것은 표면상으로 믿을 수 없고 성취되리라는 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생산 연령을 훨씬 넘었으며 사라도 자식을 잉태할 나이가 지난지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하다고 믿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리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아브라함을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믿음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벤치마킹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유의 유무, 능력의 유무에 관계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력이 있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그것은 <말씀의 실제성> 혹은 <말씀의 체현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 내용대로 현실화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자가 다시 오리라"는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현실 곧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기록된 '대로' 현실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이 체현성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듣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설교 들음뿐 아니라 성경 읽기나 묵상, 성경공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을 듣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의중과 음성을 느끼거나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의 유무>에 따라서 계산치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생각할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의지한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빌립, 마태 등은 세상적으로는 무능력한 자였습니다. 갈릴리 출신의 무식한 어부들이 아니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세리입니다. 이들에게서 감히 세계를 변화시키리라는 기대를 걸 수 있을까요? 이들은 철학자도 아닙니다. 웅변가도 아닙니다. 정치인도 아닙니다. 부자도 아닙니다. 명예도 없습니다. 배운 것도 없습니다. 존경 받는 계급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로 하여금 온 세상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공부 못했다고, 가정의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효도하는 자녀가 없다고 해서, 아내와 남편이 무능력하다고 해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해서, 빚을 많이 걸머지고 있다고 해서, 남자가 아니라고 해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원망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여러분들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믿음은 누구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바라보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보면 우리는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모든 것들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신 일들이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가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십시오. 주님 손에 맡겨진 것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작은 것을 5000 명이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식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한다고 하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비관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노력은 거의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여러분들은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찬송가 341장(너 하나님께 이끌리어)을 부르시겠습니다. 어려울때 큰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여러분의 꿈을 도우실 것입니다.


3. 현실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맞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9절에 보며,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을 문제를 문제라고 보지 말고 오히려 말씀의 약속을 믿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현실의 문제 앞에서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살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됩니다.

소설가 스티븐슨은 결핵에 걸려 각혈하면서 유명한 소설을 썼으며, 마더 테레사 수녀는 평생동안 만성두통을 이기면서 인류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파스칼은 청년시절부터 온몸을 괴롭히는 신경통을 이기고 "팡세"를 쓰기도 하였으며, 여러분이 아는 대로 베토벤은 청각장애자로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선교사 마틴은 폐결핵과 악전고투하면서 식인종들과 인디언들에게 복음전도했으며, 프랑스화가 르누아르는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엉금 엉금 기어다니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뿌드는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19절 끝에 ".....알고도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라는 말은 [맛선다], [대면한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현실의 문제가운데서도 약하여지지 않고 맛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실의 문제와 대면해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내 손에 있는 것이 너무 작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부모 탓하지 마시고, 세상 탓하지도 마십시오. 오직 내가 가진 것이 축복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가 가진 것이 적다 할지라도 불가능을 가능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희망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습을 본받아 바랄 수 없는 중에 이룰 수 있는 여러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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