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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자가 되자 / 약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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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로운 자가 되자
본문: 약 3:13

[서론]
우리 한국 사람은 머리가 좋기로 세계에 알려진 민족입니다. 세계 어디로 가나 머리로 한 몫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좋습니다.  머리도 비상하게 잘 돌아 갑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게 큰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길에 차를 막아 놓고 멱살 잡고 싸우는 사람들 보세요.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즘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사람들의 구호에 “쟁취”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 말은 “싸워서 취한다”는 말이지요.  싸우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또 봅시다. 매년 천재지변이 일어나지만, 항상 그 대비책은 잘 안됩니다.  공사를 하더라도 엉성하게 하여 더 큰 재앙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天災가 겁나는 것이 아니라, 人災가 겁이 나는 세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앙이 올 것을 미리 보고 철저하게 대비합니다. 

우리는 요행을 많이 기대합니다. 태풍이 온다고 그렇게 방송을 해도 “뭐 별일 있겠나! 그냥 지나 가겠지” 하면서 노래방에 가서 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경고가 올 때에 그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좀 지혜롭게 행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사실 지식 보다는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지식이야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지식을 활용하여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까지 지식이 없어 고난 당하는 것 보다는 지혜가 없어 더 많은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차를 막아 놓고 왜 싸우고 있습니까? 그렇게 싸우는 것이 좋지 않음을 몰라서 그렇습니까?  아니다.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싸웁니까?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불미스런 일은 지혜가 부족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까? 


[1] 지혜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5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고 했습니다.  즉 지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십니다.  우둔한 사람에게도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똑 같이 내려 줍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여 복으로 만들어 냅니다.  반면 우둔한 사람은 잘못 처리하여 화를 자초하고 재앙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지혜의 기초를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지혜는 상식을 따라가는 것이고. 삶의 기초적 원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식을 거역하면 좋은 것 같아도 결국 좋아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마태복음 25장에 신랑을 기다리는 10명의 신부가 있습니다. 모두 다 신랑을 기다리는 점은 똑 같고, 등불을 준비하는 것도 똑 같습니다. 그러나 한 부류는 신랑이 밤에 오실텐데, 혹시 늦게 오실지도 모르니, 기름을 조금 더 준비했습니다.  밤에 늦게 올지 모르니, 기름을 더 준비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 상식을 따르는 것이 지혜의 기초입니다.  지혜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며, 좀 더 용의주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지혜를 얻어야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선행으로 지혜의 온유함을 보이자

바울 사도는 이제 더 나아가 선행함으로 지혜를 보이라고 말합니다.  선행과 지혜는 무슨 관계입니까?  선행은 지혜의 표현입니다.  지혜는 선행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4에 산상보훈을 듣고 지키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요, 그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에 순종하여 선행을 베풀고, 하나님 나라의 율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자라는 것입니다. 

잠언 31장10절 이하에 현숙한 여인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양식을 가져와 집사람들을 먹이고, 일군들에게 일을 정해주는 여인을 현숙하고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맡은 일에 충성하는 여인이 지혜로운 여인이고,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지혜로운 여인은 앉아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 남을 지시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챙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 하라 저리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면서 선행을 하며, 봉사를 하며, 은혜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곧 지혜로운 자가 되고 있습니다.

지혜자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지혜자는 남과 다투지 않습니다. 지혜자는 소리 없이 봉사합니다.  숨은 봉사, 숨은 희생을 하는 사람이 곧 지혜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혜롭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입을 닫고 남을 도와 주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지혜로운 자가 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자기가 선한 일을 한 것을 떠들고 다니고 싶은 사람은 아직도 지혜자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직도 싸움을 하고 싶은 사람은 지혜에서 멀리 있습니다.  아직도 남에게 지시하고 싶은 사람도 지혜자가 되기 멀었습니다. 

지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행을 하되 입을 다물고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훈련시키면 그는 지혜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 중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미래를 위해 준비하자

마지막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라야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 준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자녀를 낳고 양육하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보면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를 만들지 못하고 지나 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동안 지혜자로써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 보지 못한 사람은 육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되어 보고, 아버지가 되어 봐야 자신의 부모를 이해합니다.  그때에야 철이 들고 생각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낳아 잘 길러내는 사람은 지혜자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자녀를 생산하고, 그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훈육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자와 양육자, 그리고 교사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에 속합니다. 이들이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고,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젊은 자매가 결혼하여 아기를 낳아 등 뒤에 업고 다니고, 양육하는 것은 곧 지혜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와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해도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와 사회는 지혜있는 사람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누가 지혜있는 자가 되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지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면서 지혜를 요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가 임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말 없이 선행하는 자는 지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말 없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지혜자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준비할 때에 지혜자가 된다고 합니다.  앞 일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오늘 하루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게 되면 지혜자가 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중에 가장 중요한 투자는 곧 자손을 낳아 기르고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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