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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딤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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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디모데후서 2:1-4)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예비군 군복만 입으면 아무데나 소변하고, 아무데나 앉고, 아무데나 드러눕습니다. ‘나는 예비군이다’하는 마음만 먹으면 행동이 그렇게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 마약을 하는 사람, 자학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자존감(自尊感)이 낮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존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삶이 흐트러지지를 않습니다.

  옛말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을 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신분에 어울리게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도 영광스럽고 위대한 신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통령의 아들이 돈 몇 만원 때문에 범죄하겠습니까? 대통령의 아들이 으슥한 곳에 가서 잘못된 일을 하겠습니까? 자기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 때문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신부들입니다. 이것보다도 아름다운 신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통령의 아내가 마음대로 나가서 이 남자도 사랑하고, 저 남자도 보면서  추파를 던지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된 우리는 세상도 사랑하고, 저것도 사랑하고, 이것도 곁눈질하는 우리가 아니라,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만 사랑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신부요, 또한 주님의 양이요,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리스도의 지체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렇게 고귀하고 위대한 신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나 자신됨을 생각하고, 그 이름에, 그 신분에 어울리는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군사입니다.

  그런데 빼놓을 수 없는 신분이 있는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단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에 메이게 됩니다. 그리고 말을 자꾸 들으면 그 말에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일단 말을 한번 해 봅시다. 다같이 하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군사다!  나는 예수님의 군사다! 나는 예수님의 군사다!”
  나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내게 이야기해 보세요. 그러면 나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어떤 책인가 하면, 애굽에서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그리고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시내산에 왔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고, 거기서 받은 계시대로 성막을 만드는데까지가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0절에서 41절에 보면, 이런 표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 삼십 년이라 사백 삼십 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 누가 나왔다고요? 여호와의 누가요?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 40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나왔다고 했는데, 41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로서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51절에는 <그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장 1절 이하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 광야에서 성막을 세우고 한달 되던 날, 시내 광야를 떠나기 20일 전에 인구조사를 시킵니다.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라고 했습니다.

  5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천막을 치되, 막사를 치되 그 군대대로 그 족장 그 지파대로 각각 그 진(陣)과 그 기 곁에 진 칠 것이니라>. 2장 32절에는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니 모든 진(陣)의 군대 곧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더라>라고 말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다 싸움에 나갈 수 있는 군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을 헤아릴 때에 여자의 수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남자의 수만 헤아립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남자만 헤아렸지, 여자, 어린아이, 노인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왜 아이들, 여자들, 노인들은 수(數)에도 들지 못했을까? 그것은 인격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신령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입니다. 군대에는 싸움에 나갈 수 없는 아이나 노인이나 여자들은 숫자에 들 수가 없습니다. 싸울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수에도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신약시대에 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은 수에도 들 수 없는 사람이라는 암시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이,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상관없이, 오늘 이 시대는 나이가 들었던지, 어떤 신분에 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나가는 능력있는 성도는 누구든지 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고, 하나님의 계수(計數)에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부산영락교회의 군사들을 헤아릴 때에 다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용감한 군사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숫자에 다 들어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했습니까? 하나님의 군대 되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군사되라고 인도해 주었습니다. 왜 우리를 애굽과 같은 이 죄의 세상에서  구원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라고. 그래서 악과 어둠의 영들과 더불어 싸우고 그 가운데 포로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탄에 메어있는 백성들을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라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우리들을 먼저 불러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군사임을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서, 군사를 부르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를 <군사>로 표현했습니다. 그 다음 5절부터 보면 우리를 <경기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를 <농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군사와 경기자와 농부로 우리를 비교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군사의 삶이 매우 닮았다는 것입니다. 유사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군인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교해 보면 흡사합니다. 그래서 ‘군인정신으로 주님을 따라가라’ 는 뜻으로 우리를 군사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의 군사는 고난을 통해 훈련받아야 합니다.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군의 부름을 받게 되면 먼저 훈련소에 들어갑니다. 훈련소에서의 훈련은 참으로 힘이 듭니다. 하루 종일 고된 훈련을 받습니다. 전투를 위한 훈련, 극기 훈련, 유격훈련, 사격훈련, 정신훈련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훈련을 받습니다. 이런 훈련은 다 힘이 듭니다. 힘들어도 이런 훈련을 받아야만 좋은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적과 더불어서 싸워서 승리하는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군사들도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을 각오해야 됩니다. 그리고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쫓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는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고난이 올 때가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올 때에 이 고난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잘 받게 되면 능력있는 용감한 훌륭한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이야기합니다. ‘훈련하기 위해서 땀 한 방울 흘리는 것이, 적진에서 피 한 방울을 아낄 수 있다’고 하며 계속해서 훈련을 시킵니다. 고된 훈련을 통해서만이 훌륭한 군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군사로 훈련받을 때 힘이 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기도의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전도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내일부터 부흥회를 통해서 말씀훈련을 특별하게 받게 됩니다. 봉사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겸손의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훈련을 받을 때에 시간과 몸과 물질을 드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고된 훈련을 받아야만 좋은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고난이 더 따릅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고, 복음으로 영혼을 건져내려고 하면 고난이 따릅니다. 힘이 듭니다. 시간이 듭니다.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일년에 예수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는 사람이 16만 명이 넘습니다. 순교당하는 숫자가 16만 명이라고 하면, 고난 당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인도네시아는 회교 국가이지만 복음을 전하는데 비교적 자유로워서 신학교도 많고, 교회도 마음대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회교로부터 여러모로 고난을 당하는데, 교회가 때로는 불타기도 하고, 때로는 맞아서 숨지는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살해된 고아들을 교회가 양육하는 일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고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보면, 고난이 따릅니다. 때로는 시간이 듭니다. 때로는 물질이 듭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 고난을 잘 이겨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강한 군사, 용맹있는 군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군사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한 줄로 받아들이면 넉넉하게 이기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피하지 말고 잘 훈련받아서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예수님의 군사는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군인이 일단 국가로부터 부름을 받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집을 떠나야 합니다. 가족을 떠나야 합니다. 집안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자기의 생활습관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길었던 머리도 잘라야 하고, 좋아하던 옷도 벗어야 합니다. 늦잠도 자지 못합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보고 싶은 것 마음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친구도 마음대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군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전신전력하기 위해서 자기의 사적(私的)인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葬事)하게 하옵소서.” 다시 말하면,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가서 장사를 지내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의 참된 의미는 <혈연을 초월하여서 나를 따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군대에서 장교들이 연휴가 되어도 멀리 여행을 못가는 것 아닙니까? 이것을 ‘통신축선상 대기’라고 합니다. 한 시간 이내에 부대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전후방을 지킵니다. 자식을 낳아도 아내 곁에서 자식 낳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군인에게 국방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일보다도 영적인 일, 하나님의 일을 더 우선적으로 할 수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이 말씀은, ‘직장생활을 등한이 하고, 또 가정생활도 대충하면서 교회만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일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직장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더 열심히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하는 큰 두 가지 이유를 들라고 하면, 하나는 이 직장을 통하여서 우리의 생계를 유지하고, 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물질이라든지 여러 가지 환경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야기합니다. <도적질하는 사람들은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빈궁한 자를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열심히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는, 열심히 노력하여서 우리의 생활을 하고, 또 빈궁한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기 위해서 열심으로 직장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직장을 통하여서 사람을 만나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교회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모르는 사람들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거의가 아는 사람, 친척과 이웃과 직장 동료들을 통해서 나오게 되는데, 우리가 직장에 가서 선한 생활을 하고, 열심으로 일하고, 모범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 예수 믿으면 저렇게 되는가. 나도 좀 예수 믿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심어주어서 친하게 지내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도해 내는 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서 직장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을 벌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직장생활을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들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생활은 뭐냐?’ 그렇게 생각되겠지요? 우리가 그런 삶을 살게 될 때에 우리 자녀가 바로 자라게 되고, 진정한 직장생활이 되고, 진정한 복된 아름다운 가정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힘쓰는 우리 영락의 온 군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의 군사는 군사로 모집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충성해야 됩니다. 명령에 순종할 수 있어야 됩니다. 군사로 모집한 자가 누구입니까? 군인은 국가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사람입니다.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순종 안하고, 납득이 되는 것은 순종하는 취사선택(取捨選擇)해서 순종하는 것이 군인의 위치가 아닙니다. 군인에게는 떨어지는 명령은 납득이 되든지 안 되든지 항상 “예!”하고 나가는 것이 군인정신입니다.

  작전계획은 병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지휘관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은 때로는 명령이 자기에게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위에서 하라 하면 그대로 하는,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좋은 군사의 자세인 것입니다. 지휘관이 “공격! 앞으로!” 하는데, 고개를 처박고 움직이지 아니하면 어떻게 그 군사가 승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본군인들이 천황에게 충성하는 것은 온 세계가 다 알지 않습니까? 만주사변 당시 여순항을 포위하는 일본군대가 철조망을 자르지 아니하면 진군할 수가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삼사백 명의 부대원을 데리고 있는 부대장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적어도 열 명쯤은 희생되어야 되겠다. 저 철조망을 자르기 위해서 달려가면 반드시 총에 맞아 죽을 것인데, 한 사람이 가고, 또 두 사람이 가고, 세 사람이 가고, 계속해서 열 사람이 가면서 한 사람이 철망 줄 한 줄씩만 잘라라. 그러면 우리가 저 철조망을 뚫고 진군할 수 있다. 누가 천황폐하를 위해서 가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가 가겠습니다”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부대장은 열 사람을 골라서 희생시킨 이후에 그 철조망을 돌파하여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군사로 부르신 분이 누구십니까?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불렀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주님께서 우리를 군사로 불러주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명령이 무슨 명령이든지, 그 명령은 항상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명령이기 때문에,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생명 바치라면 바치고, 죽으라면 죽는, 순종할 수 있는 군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군사로 부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삶은 뭐냐고 생각하겠지요? 우리가 부모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다보면, 자기도 기뻐집니다. 부모가 자식의 기쁨을 위해서 살게 되면, 거기에 부모의 기쁨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서 살면 그 기쁨은 참된 기쁨이 안 되지만,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면 정말 진정한 기쁨, 참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뭡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마지막 명령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우리가 순종하게 될 때에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주님의 기쁨에 우리가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 전하여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제자까지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마지막 말씀이 뭡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마지막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설명하시고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라>. 이것이 우리를 군사로 부르신 예수님의 명령이고,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님께서 <가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라>는데,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군사라고 하면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군사라고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안 이상, 우리를 부르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꼭 복음을 전하여서 오늘도 주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리라 다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군대가 육십만 장병이라고들 하는데, 육십만 명 중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진군! 앞으로 가!”하는데, 십만 명만 앞으로 간다고 하십시다. 십만 명만 명령에 복종하면 어떻게 적과 더불어서 싸워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육십만 전체가 다 죽음을 각오하고 명령에 복종하여서 “돌격! 앞으로!” 할 때에 나아가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의 부대입니다. 대장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돌격! 앞으로” 벌써 명령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20%만 명령에 순종해서 나가보세요. 80%는 다 꽁무니 빼고 머리숙이고 가만히 있다고 하면 그 군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금번 가을에 하나님께서 영혼추수를 위하여서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모든 성도, 모든 군사들이 다 총진군하여 많은 영혼을 건져내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흥회는 특수훈련입니다. 부흥회를 통하여서 은혜받고, 강한 군사가 되고, 능력있는 군사를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서 부흥회를 허락하시는데, 내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부흥회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동참하여서 새 힘을 받고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훈련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군인을 군대에서 가만히 두겠습니까?

  이 가을, 영혼을 건져내는 영적전쟁에 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 위하여서, 부흥회에 참여하여서 특수훈련을 받고 능력받고 힘 얻어서 앞으로 좋은 경험을 하여서, 영혼을 구원하여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정문 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생명이 하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1777년 미국이 독립전쟁을 할 때에, 영국군에게 사형된 미 육군의 네이만 대위의 유언입니다. 네이만 대위는 뛰어난 지휘능력과 용맹심으로 승리를 이끌다가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영국 군수뇌부(軍首腦部)는 그를 죽이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영국군으로 투항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네이만 대위는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총살 직전에 또 다시 한번 권유를 했습니다. “영국군으로 투항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너의 생명은 살려주겠다” 그때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생명이 하나밖에 없음이 안타까운 뿐이다. 내게 여러 개의 생명이 있다고 하면 오늘 여기에서 하나 죽고, 또 나머지 생명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겠는데, 내게 한개의 생명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고 외치면서 죽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바칠 수 있는 마음의 각오를 가지고 주께서 명령하실 때에 총진군해서 영혼을 구원하라는 주님의 최후의 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군사입니다. 군사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군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찬송이 달라집니다. 찬송이 군가 아닙니까? 군가를 부를 때 얼마나 힘있게 군사들이 부르던가요? 입만 달싹달싹 그렇게 안합니다. 목이 터져라고 부릅니다. 군사들이 말 할 때 한마디, 한마디를 얼마나 절도있게 합니까?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예배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헌신이 달라집니다.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되면 삶의 전반적인 것이 다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군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 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모든 생활이 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명령에 영혼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찬송할지라도, 예배드릴지라도, 기도할지라도, 헌신할지라도, 복음을 전할지라도 담대하게 나가서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영혼을 건져내고, 죄를 이기고, 마귀의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여 영혼들을 구원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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