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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극복한 사람 (삼하 15: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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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한 사람
(삼하15:30-37)
 
 
  본문은 다윗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다윗의 기록가운데 오늘 말씀은 아들의 반역으로 인생의 가장 참담한 경우를 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때입니다.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 싸인 형국으로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상태입니다. 그야말로 사방으로 꽉 막혔습니다. 또 이런 때 쓰는 말이 '풍전등화'(風前燈火)입니다.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뜻으로서 존망이 달린 매우 위급한 처지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 다윗이 그런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사면초가, 풍전등화의 위기속에 그는 지금 칠흑같은 인생의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 우리가 이렇게 삽니다. 지금 우리는 개인적으로, 나라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살기도 힘들고, 몹시 어지럽기도 한, 그야 말로 위기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위기'라는 말에서 '위'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기'는 기회라는 의미입니다. 위기는 위험한 순간이지만 놀라운 기회입니다. 회복과 도약과 성장의 발판이 되는 기회입니다. 지금은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위기의 상황이지만 동시에 기회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충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위기를 맞았지만 잘 극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오늘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다윗이 취한 행동을 주목해 보십시오. 본문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말씀의 시작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의 참담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일찍이 이렇게 비참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사울왕을 피해 쫓겨 다닐때에도 다윗은 이렇게 많이 울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머리를 가리우고 울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있을 때 머리를 가렸습니다. 그렇게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맨발로 갑니다. 맨발은 곧 수치의 절정을 표시합니다. 이처럼 맨발로, 머리를 가리우고 하염없이 울면서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시련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울게 했을까요? 그의 재임기간에 반역이라는 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공과 의로 나라를 다스렸던 다윗입니다. 정의사회를 구현시키고, 역사상 가장 번영을 꽃피던 다윗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아마 그 자체가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힘들었던 것은 반역의 주역이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아주 특별한 아들입니다. 다윗은 그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이름에서 찾습니다. '압살롬'이란 이름은 '아버지의 평화'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평화를 사모하며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하며 기대를 가졌습니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도망갈 때에도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품었던 사람은 아버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어쩌면 왕권을 압살롬에게 넘겨줄 수 있을 만큼 그를 총애했고 그에게서 뛰어난 면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들이 지금 자기의 가슴을 향하여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정말 참기 힘든 시간이고 울 수밖에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는 아들을 대적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가 떠난다는 것은 곧 왕권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룬 왕권입니까? 다윗은 사울이나, 솔로몬처럼 그렇게 얻은 권력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 얻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지금까지 이룬 업적이 중요했고, 과거가 소중했던 사람입니다. 쉽게 얻은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만, 어렵게 얻으면 쉽게 버리지 못하는 법입니다. 다윗이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며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가 왕권에 집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중한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잊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그는 결코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는 소중한 지혜를 배웁니다.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을 버려야 하고,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내가 지금까지 쌓은 업적과 노력과 수고 때문에 그 자리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래서 더 애절하고,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더 좋은 길로 이끄시기에 지금보다 더 큰 축복을 바라보고 때론 미련없이 버리고, 훌훌 털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꾸 집착하면 과거에 매여 한발도 나가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연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지위와 자리와 명예입니까? 아니면 체면입니까? 버려야 합니다. 손에서 놓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서 자유해야 위기를 극복합니다. 다윗처럼 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다윗의 주변을 생각해 보십시오.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 났을 때 다윗 주변에는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대세가 기울어지는 쪽으로 저울질하다가 철새처럼 날아가는 사람들의 비열한 행동이 온 나라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다윗이 상상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평안할 때는 몰랐는데 어려움이 오니까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다윗을 가장 놀라게 했던 배신자는 '아히도벨'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산으로 가는 도중에 그 사실을 보고 받습니다. 다윗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히도벨은 평생을 함께 한 다윗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그는 다윗 왕도가 번영하도록 힘을 다해 도왔던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의 조언을 듣지 않고서는 중대한 정책을 결정한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임했던 아히도벨이 배신합니다. 다윗의 심장이 녹아내리고, 하늘이 내려 앉은 충격입니다. 다윗은 그 소식을 접하고, "하나님이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라고 하면서 그의 비통한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시편 41편과 55편에 보면, 친구에게서 배신당한 그의 비통함이 구구절절이 나와 있는 것을 봅니다.

  아히도벨을 비롯하여, 하나 둘씩 다윗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모두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두 변절자는 아니고,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을 따르던 백성들이 함께 울면서 따라 갔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또 본문 앞에 보면 외국인 용병이었던 '잇대'라는 사람이 이끄는 600명의 용사도 다윗 편에 있었습니다. 또한 충신이었던 요압과 아비새가 다윗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다윗의 남은 자는 '후새'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다윗의 충신이었고,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반역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다윗에게로 달려와 다윗을 부여잡고 같이 울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같이 울어줄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 다윗에게는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후새는 옷을 찟고, 흙을 머리에 감싸고 다윗과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거기에서 그치지가 않습니다. 후새는 다윗을 돕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의 명령에 따라 압살롬의 모사로 들어 갑니다. 거기에서 후새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막았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지금 기가 죽어 도망가는 다윗 일행을 당장 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후새가 그것을 막았습니다. 그때 아히도벨의 전략이 채택되었다면 다윗은 끝장났을 것입니다. 그후에도 후새는 압살롬의 기밀을 다윗에게 전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압살롬의 군사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그가 제공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다윗의 충신들, 용사들, 친구들이 다윗을 지켰고, 왕권을 회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왕국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험난한 때에, 그래서 맨발로 울면서 걸어가야 하는 때에 다윗에게는 주변에 늘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힘이었습니다. 반역이 일어나는 숨가픈 현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둔것입니다. 후새, 잇대, 요압, 아비새, 이 모두는 다윗의 위로였고, 힘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주변에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떠나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반드시 남겨 두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울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반드시 붙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믿음의 친구가 언제나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살게 하고, 특히 어려울 때 힘을 주는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울고 같이 손잡고 밤새도록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커다란 힘과 용기를 줄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이끄십니다. 이런 사랑을 느끼면서 위기를 극복해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그가 지금 머문 곳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감람산에 있는 예배처소였습니다. 32절에 보면, 성경은 그곳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이라고 소개합니다. 예루살렘에 성막이 있었지만 감람산 꼭대기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가나안 정복 이전에는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지방 성소가 되었습니다. 물론 성전이 지어진 이후에는 없어졌지만, 다윗시대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울면서 감람산 꼭대기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머물며 거기에서 하나님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르며, 다시 통곡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었고, 왕권이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신세타령하는 통곡도 아닙니다. 자기를 돌아보면서 흘린 통회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밧세바의 사건이 있을 때 하나님앞에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던 다윗이, 이제는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나자 다시 자기를 깊이 돌아봅니다. 그리고 이젠 하나님외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의지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반역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압살롬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그는 이방나라가 벌벌 떠는 용맹스러운 장군입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쿠데타를 물리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또한 다윗에게는 앞서서 소개한 용감한 군인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더욱이 반역의 핵심이던 아히도벨만 처단하면 민심을 돌이키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대결보다 도피를 택하며 떠납니다. 전적으로 자기의 책임을 통감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문제가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을 직감했습니다. 범죄 이후에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가정과 나라의 핵심에 자기가 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살길이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문제를 푸는 열쇠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충신들이 싸우자는 제안을 뿌리치며, 맨발로 걸어서 감람산 꼭대기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통곡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윗을 이끄셨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은 떠나지만, 그 길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제는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러 간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그는 하나님을 다시 만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때에 함께 하는 하나님, 마음이 괴롭고 아플 때 떠나지 않는 하나님, 지쳐 쓰러져 갈 때 힘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외에, 주님외에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소망과 해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때 원망과 불평을 멀리하고 하나님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로부터 떠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궁극적인 해답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다윗은 위기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삶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지만 위기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나를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거기서 모든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의 명예를 걸고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이 믿음과 확신으로 한주간을 보내시고, 당면한 모든 어려움과 위기를 잘 극복해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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