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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을 위하는 사람 / 시 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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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을 위하는 사람 / 시 122:1-9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이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란 뜻은 ‘거룩한 성, 거룩한 토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셨다고 시편 147:2에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지이며, 신앙의 중심지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곳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상징하며(행 20:28),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도성’인 천국을 의미합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계 21:2)
우리는 이 예루살렘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처소이고 귀히 여기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바로 이 예루살렘이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즉 교회를 위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 교회를 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약속하셨느냐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즉 교회를 위하는 사람은

첫째, 하나님의 성전의 출입을 기뻐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1절) 혹시 여러분들 중에 교회에 나오는데 ‘가기 싫은데, 오늘 할 일이 많은데, 누구 만날 일이 있는데, 집에서 지금 벌여 놓은 일이 많은데’ 하면서 교회에 안갈 수는 없고 해서 억지로 교회에 나온 분은 없을 줄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에 기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초상집이 아니고 잔치집입니다. 교회는 마귀가 역사하는 장터가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축복의 거룩한 성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올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날 때도 기뻐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볼 때도 기뻐하고, 또 여러분들이 각기 맡은 사명에 대해서 충성할 때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 크게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1:4에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을까요? 거기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잇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또 하나님 앞에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그곳에서 신령한 은혜와 구원의 은혜, 치유의 은혜도 주시고 또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주시는 은혜도 입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면 모든 일이 다 만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억지로 하면 그것이 짜증스럽고 만족하지도 않고 불평 불만이 생기며 또 그 일이 후회스럽기도 한 것입니다. 즐거움으로 하면 힘겨운 일도 쉽게 되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나가게 되고 형통한 은혜 가운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입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4절)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 감사하는 말을 하는 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말과 감사하는 생각, 감사하는 자세 속에 좋은 일이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 불만, 원망, 짜증스러운 것 등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기뻐지고, 또 사람도 반가워집니다. 미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마음에 반가움은커녕 볼수록 싫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만날수록 기뻐지고 사랑스럽고 항상 모든 일에 사랑과 믿음이 더 돈독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6:2에 보면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를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할 때도 감사함으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또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시50:23)고 말씀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생활 속에 감사가 있을 때에 교회를 위하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성전을 평안하게 하는 자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6절) 여기에서 평안은 화평이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5:9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 속에서 서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화평이 없고 분쟁과 시기, 싸움, 미움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의 행위가 아닙니다.
화평을 깨뜨리고 화평케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렘 9:8~9)고 했고,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되는 복이 임한다(마 5:9)고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15에 보면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화평의 세계입니다. 화평이 없다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걔시지 않거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생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에는 분명히 화평이 수반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야고보서 3:18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법칙이요,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우리 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평을 심으면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심은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되고, 선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그 기쁨이 배나 더 임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화평을 심기를 기뻐해야 됩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화평해지고, 우리 교회가 평안해지고, 우리나라가 평안해지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분만 있으면 웃음꽃이 피고 감사의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분만 있으면 분쟁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마서 12:18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화평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닫고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 화평을 심어야 됩니다. 이 지구상에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UN이 창설되고 각 나라마다 모든 세계가 평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나 어떤 정치, 혹은 인간의 어떤 논리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화평은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해서 온 세계로 나타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교회가 세워진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은 물론이고, 그 지역이 아름다워집니다. 항상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6절) 마귀는 교회를 미워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역사하는 곳에는 교회를 폐쇄시키고, 성직자들을 투옥시키고, 신앙의 박해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인간의 마음이 아닙니다. 어두움의 영이 그 속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도 보통 은사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본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교회를 사랑하고 신앙생활을 기뻐하는 것도 보통 은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먼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해 주신 것입니다. 날 구원해주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육성은 강퍅한 마음들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온유하고 부드러운 것이 가리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할 때에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듭니다. 성령의 역사 안에서만이 사랑의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하든지 흑백논리를 전개하는 것보다도 성령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성령께서 그것을 실천하게 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의 연조가 있어도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죽을 때까지 인성, 육성에 머무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체력도, 인간의 기억력, 인간의 시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 사는 것도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실 때는 미움도 사랑으로 변하여지고, 원망과 불평도 감사로 바꾸어지고, 탄식과 한숨소리도 찬송으로 바꾸어집니다.

참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고전 13:5)고 했습니다. 죄악을 범하고 남을 헤치는 것도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이 있다면 평생 교회를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성전의 출입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전을 평안하게 하고,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①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6절) 형통이란 안되는 것이 되게 되고, 없는 것이 있게 되고, 작은 것이 크게 번창하고, 일이 잘 되고, 점점 더 많아지고 창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7절) ③하나님의 집을 위한 복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9절) 주를 위하여 살려고 하면 필요한 건강도 주시고, 필요한 물질, 필요한 시간과 여건, 환경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십니다.

항상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교회를 평안하게 하고 사랑함으로 형통의 복과 평강의 복,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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