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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전도자가 되려면 / 마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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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바른 전도자가 되려면
▶ 본문: 마 9:35-38 
 
유명한 시인이자 예술 평론가였던 존 러스킨은 훌륭한 미술가가 되기 위한 세 가지 필수 요소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본인이 화폭에 담고자 하는 장면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둘째는 그 장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 , 셋째는 눈이 보고 마음이 느낀 것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기술 ,즉 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전도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전도도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입니까?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인데 전도는 영혼을 구함으로 인간의 생명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세상을 밝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영혼을 구하는 예술 (art of soul winning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잘 하기 이해서도 러스킨이 말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영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고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며 그 영혼을 찾아가는 발과 복음을 전하는 입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예수님에게서 이 세 가지를 다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하는 진정한 예술가로서 우리 모든 전도자들의 참된 모범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있었습니다.

사람을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는데 36절에 주님께서는 무리를 목자 없는 양으로 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보면 그들은 군중이고 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어떤 존재입니까? 양이란 존재는 목자 없이 살 수 없고 자기의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어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나오는 수많은 군중들을 볼 때에 영혼의 목자가 없음을 보시면서 장차 방황하고 유리하고 결국은 영적으로 멸망당할 것을 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눈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육체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눈이 없으면 절대로 전도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우리보다 돈 많은 사람들도 있고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세상을 멋있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육체적으로만 보게 되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영적으로 보면 누구든지 다 목자 없는 양과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결국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왜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눈으로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조건만 보고 주저하지 마십시오. 겉으로만 보지 말고 그들의 심령 깊숙이 있는 공허함, 피곤함 , 고뇌를 보자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투신자살을 했던 정몽헌 씨를 생각해보면 겉으로 보기에 그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육체적으로 보면 감히 그에게 전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 사람의 영혼은 너무 피폐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눈을 가지고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에게는 사람을 영적으로 보는 눈만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창자가 끓는 듯한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시고 깊은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올바른 전도자가 되려면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영적으로 볼 뿐 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불쌍히 여기되 예수님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전도를 못하는 까닭은 사람을 영적으로 보지 못해서도 그렇지만 영적인 상태를 불쌍히 여기는 진정한 사랑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어느 정도 믿으면 영적인 눈은 뜨여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들이 아무리 잘 살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별로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가에 따라서 전도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살아가시는 동안 사람을 영적으로 볼 뿐 아니라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파멸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창자가 끓어오르는 듯한 동정을 느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전 13장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삶의 질을 높여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다 되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은 아직도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을 향해서 민망히 여기시는 데 우리는 전혀 그것과 상관없이 산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이웃을 영적으로 볼 뿐 아니라 그들의 상태를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지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전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결국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심판과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사람들은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지옥의 고통이 어떻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가 예수 믿지 않았으므로 그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고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에게 자기의 형제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서 자기처럼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이곳에 온 사람이 그곳에 갈 수 없고 전해도 듣지 않을 것이며 땅에 있는 사람이 그 사실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눅 16장에 말씀을 알고 있고 천국과 지옥을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 믿지 않고 목자 없는 양처럼 그곳을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도 연민의 느끼지 않는다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유명한 전도자 무디가 시카고 집회를 가는 길에 거리에서 엎드려서 통곡을 하며 우는 것이었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깜짝 놀라며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 하여 위로를 하자 무디가 “여러분 , 이 거리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데 지금 저들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저들이 지옥에 가서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무디가 그날 저녁 집회를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이 새생명축제를 준비했는데 사람을 영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처럼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결국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 우리 가족이나 이웃, 동료나 친구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목자로 삼지 못한 분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마지막이 언제 올지 모르고 그분들이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적인 눈과 그들을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 실제적인 발걸음이 있었고 입을 열어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본문 말씀 35절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 전파하시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느니라

예수님은 눈으로만 전도하신 분이 아니고 마음으로만 전도하신 분도 아닙니다.

그분은 전도를 위해서 부지런히 다니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내가 건너편 마을로도 가리니 가서 전도하리니 내가 이것을 위해서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동안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는지 모릅니다.

돌아다니시면서 땀 흘리시고 손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입술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이 땅에서  전도자의 삶을 온전히 살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전도는 눈으로나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전도를 위해서는 부지런한 발과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생각하고 마음은 갖지만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발이 떨어지지 않고 입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안내서와 초청장을 드렸는데 어떻게 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전도 소책자와 작은 선물도 준비되었는데 그러한 것들을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찾아가서 초청장과 전도소책자와 선물을 주면서 움직이셔야 하고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한 광경(요 4장) 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피폐되어 있고 곤고한 한 여인이 있는 것을 아셨고 찾아가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랐겠지만 예수님은 영적으로 보셨고 불쌍히 여기셔서 말씀해 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만나고 복음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 일부로 여행길의 코스를 바꾸셨던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는 길에 보통 사람은 사마리아를 돌아서 가는데 주님께서는 일부러 사마리아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목적은 그곳에 있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피곤하셨던지 행로에 곤하여 털썩 주저앉으셨다고 했습니다. 한 영혼을 구하려고 그 피곤함을 무릅쓰고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행동, 예수님에게는 그 영혼을 보시는 눈과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을 뿐 아니라 모든 다른 것을 제쳐 놓고 음식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셨지만 그를 찾아가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에게는 영혼을 보는 눈과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 찾아가는 행동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는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존 로스키인이 말했던 훌륭한 미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세 가지 요소 외에 예수님은 영혼을 구하는 예술가로서 기도하셨습니다.

37,38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에게도 늘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는 기도 없이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일반 예술은 눈과 마음과 그것을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되지만 영혼을 구하는 극치의 예술은 그것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혼과 영을 쏟아 붓는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 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예술은 노력하면 됩니다. 음악하시는 분들, 미술하시는 분들 ,글 쓰시는 분들의 작품에 혼이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 예술과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오는 이 전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전도를 위해서는 혼신을 기울이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는 것을 하나님의 신으로 이루시겠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마음만으로도 안 되고 힘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영혼을 변화시키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역사를 위해서 우리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시면서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주신 약속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올바른 전도자로서 영혼 구하는 훌륭한 예술가로서 살아가려면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결코 영혼 구하는 일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서울 새생명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가졌던 영적인 눈이 필요하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도 새생명축제 예비 집회가 있습니다. 예비 집회는 우리에게 이러한 눈과 마음을 준비시켜주는 모임이기에 꼭 나와서 사람들을 육체적으로나 세상 적으로 본 것을 회개하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사람들을 영적으로 볼 수 있는 영안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에 가족이나 이웃을 영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육적으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지옥을 향하여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못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영혼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린 자료들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행동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시간도 내시고 물질도 쓰셔서 여러분들이 받은 귀중한 사랑을 그들에게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금요일에는 새생명축제를 위한 전교인 기도회로 모입니다.

기도 없이 새생명축제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함으로써 전도하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많은 것을 갖추었지만 가끔 교회를 보면서 안타깝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점잖게 새생명축제를 치르려고 하는 것을 볼 때에 안타깝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전도라는 것이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사회적인 신분이나 고상한 인품이나 교양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몇 주 전에 LA 방동섭 목사님 위임식에 교회를 대표해서 참석했는데 예상치 않게 멕시코에 계신 민우석 선교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비타민을 가져와서 각각 좋다는 세 종류의 비타민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 비타민으로 지금까지의 건강을 유지했다고 하고 어떤 분은 그 비타민으로 아예 사업까지 하는 분이었으며 어떤 분은 한 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비타민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왜 이렇게 비타민이 좋다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비타민을 먹어보고 좋으니까 그 먼 거리를 찾아와서 먹어보라고 권하는 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비타민도 우리 육체의 건강을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육체로만 삽니까?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 우리 영혼의 건강이 어떤지를 늘 생각해봐야 하고 죄라는 영적인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열심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묘약으로 그분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때에도 열심을 품고 그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새생명축제 때만큼은 성도들이 움직이고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해내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영혼의 비타민인 복음을 전하는 일에 같이 해야 합니다.

예술가 부럽지 않은 훌륭한 영혼 구원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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