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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든 / 요 3:14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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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든
요한복음 3 : 14 - 16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대하여 애굽 땅에 두루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새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고된 노역이 그들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긍지를 잃지 아니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출애굽을 감행토록 했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계속되는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지칠대로 지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을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름길로 가는 에돔 땅 통과가 거절되었습니다(민 20:14-21). 그리고 먼길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하므로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영영히 버리시는 형벌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한 섭리적 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에 물려서 사경을 헤매는 백성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이 놋뱀을 쳐다본즉 살리라고 했습니다(민 21:8). 이 말을 들은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 21:9) 고 했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매어 단 장대는 오늘의 국기 게양대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필이면 뱀에게 물린 자들에게 뱀을 만들어 쳐다보게 했을까. 그것은 보기 싫은 뱀을 쳐다보게 함으로 그들의 병세를 더욱 실감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입니다. 이렇게도 하나님은 사람을 이성의 마지막 부분까지 죽이고 신앙의 보금자리를 만드십니다.
여기 광야의 놋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적 계시로 충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뱀으로 상징)를 알지도 못하면서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장대에 높이 달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연호를 B.C에서 A.D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예수 십자가를 기초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든"

Ⅰ. 기독교에 대하여 본체론적인 대답을 하십시오.(Ontology)

1) 기독교는 하나님의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God).
본문 3장 16절에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주체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이성 종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와 질서의 근원자이시며 모든 생명 세계의 생명이시며 무생물 세계의 주관자이십니다.

2) 기독교는 계시(타율주의) 종교입니다.
(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revelation)
본문 3장 16절에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계시라는 말은 감추었던 것을 나타내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두 가지 계시 곧 두 책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자연에 관한 책이요 다른 하나는 성경입니다.
자연의 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그의 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 때문에 있을 필요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자연을 해석하는 그 이상의 역할입니다. 성경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주와 사람과 역사를 바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 얻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 외에도 사색적 도덕적 삶의 전체를 주장하는 원리를 제공해줍니다.

불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안다고 합니다. 희랍인들은 진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이런 저런 간섭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기독교는 인간 스스로 진리를 소유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전하는 것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는 곧 신구약 성경 66권입니다. 그 진리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love).
본문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죄인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죄의 경중은 판사의 선고에 따라 받는 형량이나 벌금을 보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범한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롬 8:32). 결국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만큼 큰 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죄인을 위한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보다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든"

Ⅱ. 기독교에 대하여 방법론적인 대답을 하십시오.(Methodology)

1)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faith).
본문 3장 16절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불뱀의 독에 죽어 가는 백성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아났습니다(민 21:9). 여기에 쳐다본다는 말은 믿는다는 의미와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또 믿는다는 말은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쳐다본다는 말을 현실화 하면 바로 자신의 천박한 지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 앞으로 나오는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믿음을 한 단계 성숙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시는 성찬의 식음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제의 장소는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2) 기독교는 개인 개인의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individual).
본문 3장 16절에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습니다.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라고 했습니다(민 21:9). 여기 '세상을 사랑하사'란 말과 '믿는 자마다'라는 말은 구원의 보편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6-29절에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보편성에 선택의 교리를 제외하면 안됩니다. 『믿는 자마다』는 철저히 개개인의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표격적인 믿음이 아니라 독립된 한 영혼 한 영혼의 필연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세상에 지역과 종족을 초월해서 개인 개인을 상대하는 종교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든"

Ⅲ. 기독교에 대하여 가치론적인 대답을 하십시오.(Axiology)

기독교의 가치는 절대적인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대 믿음입니다. 사람 스스로는 어느 것 하나 절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믿는 것도 우리 힘으로 안 된다는 당위적 결론을 얻게 됩니다.
기독교의 가치를 논할 때 믿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쳐다볼 때 죽음에서 살아나는 가치를 맛보았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믿음이 전제한다고 할 때

1)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become The son of God).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권세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종처럼 삯을 받고 일하는 자가 아니라 기업을 누릴 자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절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헸습니다.

2) 기독교는 주리지 아니하는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that is never get hunger).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먹음으로 굶주림에서 자유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 시간부터 인간들은 영적 기갈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우면 땅에서도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그 자체가 풍요로움 바로 그것입니다.
시편 37편 25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3) 기독교는 생명과 부활의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the life and the resurrection).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마르다를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신학자 하이트믈러(Heit muller)는 말하기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자아 주장의 말씀들 중에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부활』, 『그 생명』이란 말은 예수님 자신에게만 있는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를 향해 그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과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것과 믿는 자는 장차 생명의 부활을 얻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이것을 믿느냐고 직접 물어보셨습니다. 마르다는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했습니다(요 11:27).

4) 기독교는 영생의 종교입니다(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Eternal life).
본문 3장 16절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영생』이라는 말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에 영원히 참예하는 것입니다.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는 천국에서 예수의 생명을 받아 영원히 안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5) 기독교는 이 땅에 거룩한 교회 운동의 종교입니다.
11 (Christianity is the religion of Church movement).
골로새서 1장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의 필요 불충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당연히 받아야 되는 필연적 고난입니다.
즉 머리가 되신 주님의 고난은 몸의 지체인 교회가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이 지상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머니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예정하신 신자들의 몸이요 집단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연단장소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풀무에서 횃불을 나오게 하셨을 때보다 교회의 상태가 더 생생하게 잘 표현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에 감격하여 찬송하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교회는 불붙는 듯한 사탄의 침노에 맞서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천국 백성의 표징은 주님의 몸된 교회생활에서 나타납니다. 교회 생활이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과 정비례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양심이 이미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영을 바로 받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용서받은 해방의 감격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원히 죽지 않고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고통당하지 말고 놋뱀을 쳐다보는 단순한 방법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바로 예수를 영접하고 십자가에 달린 그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불신골육들과 내 이웃들을 어서 속히 주님께 데리고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다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때를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누가 우리에게 기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거든
기독교는 하나님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타율주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기독교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고 물어오거든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개인 개인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기독교를 믿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오거든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주리지 아니하는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생명과 부활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영생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기독교는 이 땅의 거룩한 교회운동의 종교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누가 우리에게 한국 기독교의 장래를 물어오거든 신림동에 있는 갈보리 교회를 보라고 하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이 세대에 좋은 교회를 찾거든 주저하지 말고 저와 여러분의 교회, 갈보리 교회를 소개해 주십시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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