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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을 빼앗기지 앟는 비결 - 빌 1: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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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빼앗기지 앟는 비결 


(빌 1:15)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합니다.

(빌 1:16) 좋은 뜻으로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세우심을 받은 줄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빌 1:17)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다투는 마음으로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빌 1:18)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 참으로 하든지 거짓으로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잇으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빌 1:19) 나는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도와 주셔서 내가 풀려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빌 1:20)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빌 1: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빙빙 돌다가 결국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는 차창에다 이렇게 쓴 쪽지를 꽂아 두었습니다. "저는 이 구역을 15분간 돌았습니다.  여기에 주차하지 않으면 저는 일자리를 잃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얼마 후 일을 보고 돌아 온 그는 주차위반 딱지와 함께 꽂혀 있는 쪽지를 보았습니다.  "저는 이 구역을 15년 째 순찰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딱지를 떼지 않으면 제가 일자리를 잃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직장인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크나큰 손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는 큰 손실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집요하게 우리들의 기쁨을 빼앗아 가려고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사소한 사건에 휘말려 쉽게 큰 기쁨을 잃어버리고 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큰 은혜를 깨닫고는 너무나 좋아 감사하며 기뻐하던 사람이 어느날 기쁨을 잃어버리고는 근심에 눌려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기쁨대신에 분노에 가득차 있고, 어떤 이는 기쁨대신에 미움에 가득차 있습니다.  사단에 속아서 기쁨이라는 귀한 보배를 내어주고 쓰레기같은 미움이나 분노, 근심과 섭섭함을 보물처럼 끌어 안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 

바울에게도 그런 유혹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투옥된 사건을 인하여 안타까와했으나 바울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고 있으며 항상 시기심을 품고 있던 어떤 이들은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잘 되었다. 바울이 마음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이 때를 틈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우리의 제자들을 많이 만들자.  그러면 바울이 감옥에서 얼마나 괴로와하고 초조해할 것이 아닌가?'하고 떠들며 순전치 못한 마음과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옥중에 있는 바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동역자로써 복음에 헌신적인 사도 바울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으면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위로의 말을 들려주지는 못할 망정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역을 한다니 얼마나 괘씸한 사람들입니까?  의리도 없고 매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사실을 전해듣고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보통 사람같으면 약이 오르고 속이 상하며 화를 낼 상황에서 바울은 더욱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존심도 없고 밸도 없는 사람이라 아무 때나 기뻐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을 향하여 누가 나쁘게 말하고 괴롭게 할 목적으로 어떤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반사적으로 화를 내지 않습니까?  경쟁적으로 그를 괴롭힐 어떤 일을 시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본능적으로 반발하여 그를 비난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울해지고 미움이 솟아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충실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기쁨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하던 마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치 않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차 있게 됨을 발견하게 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에 기쁨을 선물로 주시고 잘 관리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사건과 사람들을 이용하여 기쁨을 빼앗고자 간교하게 접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항상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 그리스도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18)

우리는 자기 중심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성도간에 대립이 심각한데 서로 조금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갈등속에서 예수님의 교회는 심각하게 병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그럴수는 없습니다.  내가 손해보더라도, 내가 억울하더라도 예수님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 먼저 양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면 예수님도 뵈지 않습니다.  막가파가 따로 없습니다. 내 감정이 상했기 때문에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몇 배로 갚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든 성령께서 어떤 책망을 하시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감정대로 함부로 말하고 막가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섭섭해도, 억울해도, 손해를 보았어도 예수님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생각하고 참아야 합니다.

  어떤 못된 깡패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회개하고 변화되었는데 어떤 못된 사람이 와서는 얕보고 자꾸만 약을 올리는 것입니다. 옛 성질은 자꾸 치밀어 올라오고 예수님 생각하면 두둘겨 패 줄수는 없고 하니 주먹으로 탁자를 꽝하고 치면서 "예수는 내가 믿었는데 덕은 네가 본 줄 알아라."했다고 합니다.

  바울이라고 불쾌하고 섭섭한 감정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능동적으로 기뻐하고 더욱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기뻐하라 너는 더욱 기뻐하라' 하고 말해보십시오.  기쁨이 충만해집니까?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한편 생각하면 바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교회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많아지면 바울을 대적하는 세력이 더 강해지겠지요.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서 바라보면 그리스도인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동기는 조금 그릇된 것 같지만 그리스도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욕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수도 잇지만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으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기쁨이 더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면 불안한 일, 화나는 일, 속상한 일, 섭섭한 일, 짜증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서 '그렇다고 예수님이 손해보거나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는가?' 하고 따져보면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더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면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공격앞에서도 여유있게 웃을 수 있습니다.  사단이 간교하게 사람들을 이용하여 이간질하고 우리의 기쁨을 도적질하려고 아무리 공격해봐야 소용없게 됩니다.  항상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쁨을 잃어버릴 위기를 만나면 생각을 바꾸세요.  자기 유익을 앞세우며 바라보던 시각을 예수님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꾸십시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던 것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을 바꾸면 기쁨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2. 성도들의 기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19)

바울은 환난 중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동역자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특히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기쁨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자신에게 시기심을 드러내고 괴로움을 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백배 천배 힘을 보태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기분 나쁜 일을 만나면 그를 해친 사람을 하루 종일 생각하며 미워하고 괴로와합니다.  그것은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누구나 주변에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이 있고 은혜를 끼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혜를 끼친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고 해를 입힌 사람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그 불쾌한 생각을 하며 괴로와합니다.  그러면 불행해집니다.  기쁨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상처를 입었을 때 해를 입힌 사람보다 은혜를 끼쳐 준 사람을 생각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기도가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실험이 실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실험에는 기독교 자원봉사자들의 기도가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한 결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실험대상 집단은 임의로 무작위 추출되었고 자원봉사자들은 집에서 기도했으며 환자들과는 전혀 접촉이 없었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자원 봉사자들의 기도를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실험 결과 자원봉사자들의 기도의 대상이 되었던 환자들의 상태가 대체로 좋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다른 환자들보다 호흡도 좋았고 보호장치도 덜 사용하였으며 약도 덜 필요로 했습니다. 완치율도 물론 높았습니다. 반면 일반 환자들은 환기를 요구하거나 항생제 이뇨제 등을 기도 후원을 받는 환자들보다 더 많이 요구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6) 기도의 능력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게다가 동역자가 자신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준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도의 능력을 알았기에 그리고 동역자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확신하였기에 그것을 생각하고 환난 중에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자가 기도하고 있음을 확신합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기도하고 있음을 확신합니까?  중보기도의 용사들이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놓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음을 확신합니까?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코 여러분 혼자 버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자주 생각하며 기뻐하고 더욱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3. 성령의 도우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감정이 맘대로 안될 때가 있습니다.  어둡고 우울하고 미운 감정,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 조절이 잘 안되면 참 괴롭습니다.  이런 때는 억지로 기뻐하려고 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선생님등 도움을 줄 수 잇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누구보다도 우리 기분을 잘 이해하고 누구보다도 우리를 가장 잘 도우십니다.

바울은 그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이 자신을 도울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이 그 험한 환경 속에 기쁨을 피어오르게 했습니다. 자신과 늘 함께 계시는 성령님이 자신을 돕는다는 확신보다 더 크게 맘에 평안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었던 것입니다.

11세기의 성자로 칭함을 받던 제롬이 베들레헴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제롬은 기뻐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주님께 무슨 선물을 드리오리까?"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다 내 것인데 네가 무슨 선물을 내게 주겠느냐?" 제롬이 말했습니다. "이 성경을 다 번역하여 그것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정말 나에게 선물을 주겠느냐?" 그러면 한 가지만 다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죄와 고통을 다 나에게 다오.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니라."
  우리 안에 있는 무기력과 절망, 자포자기와 한숨, 우울증과 탄식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선물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부끄럽고 추해 보여도 그것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은 곳"에서 만나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그대로 내보이면 주님이 도우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모든 모습 있는 그대로를 예수님께 드러내 보이고 그 환난의 상황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한 서운함을 아뢰고 성령님의 위로를 통해 도우심을 힘입었던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탄식은 인간에게 큰 힘이지만 하나님에게는 큰 약점이 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탄식하면 우리에게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탄식소리에 가장 약하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그의 자녀를 도우십니다. 그로인해 고통당하는 자녀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십니다. 어떻게든 우리를 도우시려고 애쓰십니다. 성령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시고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환난 중에 내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다가와 위로하시고 힘 주심을 경험하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은혜를 받고 큰 기쁨을 선물로 받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까?  예, 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 일에 기대를 품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주신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오래도록 잘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고 큰 기쁨을 선물로 받았다 하더라도 금새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절대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단이 기쁨을 빼앗아가고 대신 가짜로 바꿔치기 하지 못하도록 속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그로인해 기쁨을 놓아버리면 안됩니다.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싸움을 걸어온다 하더라도 그 싸움에 신경을 쓰느라고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어떤 방법으로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라는 선물에 눈을 떼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자신의 만족보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기를 힘쓰십시오.  기도해주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항상 성령님께 온갖 도우심을 구하며 성령님의 위로와 영원한 기쁨을 직접 경험하며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되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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