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늘 우리의 유월절 / 출 12:21~27 (요 6:48~55 참조)

  • 잡초 잡초
  • 340
  • 0

첨부 1



제목 : "오늘 우리의 유월절"
본문 : 출애굽기 12:21~27 (요한복음 6:48~55 참조) 
설교 : 2003년10월12일 설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건져 내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 왕 바로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은 모두 죽게 되는 참으로 끔찍한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재앙을 당한 후 비로소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애굽 안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짐승에 이르기까지 처음 난 것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을 겪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재앙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지긋지긋한 종살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이고, 그 유월절의 의미와 그 절기를 지키는 방식이 오늘 봉독한 출애굽기 12장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이 들어 있는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까지는 가을에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풍습이었지만 이제부터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사건이 있는 그 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 단위로 그 달 열흘날 흠 없는 한 살배기 수양을 준비해 뒀다가 열나흗날 해가 질 무렵에 온 회중이 모인 자리에서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는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 먹되 누룩 넣지 않은 떡과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유월절 식사는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허겁지겁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태워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다 죽이셨지만 문에 피가 칠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넘어가셨습니다. 히브리 말로 유월절은 “뛰어넘는다”는 뜻의 동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뛰어넘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예고하셨던 것처럼 그 밤에 애굽 온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이 모두 다 죽임을 당하자 비로소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 줬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다 죽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만은 화를 당하지 않은 그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때문에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해방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밤에 이스라엘은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자기 백성을 그 어떤 권력자의 손에서라도 건져 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손 대대로 유월절 사건을 기념하면서 그 뜻을 새겨야만 합니다.

  유월절, 곧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스무하룻날 저녁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 넣지 않은 떡을 먹어야 합니다. 때문에 그 기간을 흔히들 무교절, 곧 누룩 없는 떡의 절기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누룩 넣지 않은 떡이라고 하는 것은 밀가루와 물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섞지 않은 채 급히 구운 떡으로 광야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가축을 치던 목동들이 먹던 단순한 음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부터 이레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떡을 먹으면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또한 이 땅의 주인으로서 곡식과 열매를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출애굽 사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오늘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출애굽 사건을 우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의 사슬로부터 풀려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어떤 개인의 해방이라기보다는 민족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오늘 우리도 바로 이 교회 공동체 또는 민족 공동체라고 하는 측면에서 좀 더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한복음 6장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이 줄 그 생명의 떡은 바로 자신의 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그 주님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기대할 수 없고 다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만 영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통해서 유월절 어린 양의 몸과 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시기적으로 유대인의 유월절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시기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예식을 거행함으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늘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5장 7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우리 주님을 가리켜서 유월절 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주님을 믿는 우리는 스스로 누룩 없는 새 떡반죽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존재 의미를 무교절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누룩은 악과 악의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빠져 있던 음행의 죄인 것입니다. 그는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우리는 자유를 다시 찾은 사람답게 항상 순전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경우에 있어서 순전하고 진실한 삶이란 바로 음행을 멀리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을 얽어매는 온갖 사슬들을 깨뜨리는 근거와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까지 우리를 얽어매어 못살게 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의 권세를 힘입어 그런 세력들을 분쇄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자신은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주님처럼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 세상에 생명을 준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후에 영생을 누리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서, 즉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온갖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나서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앞장 서서 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찬예식에 참예할 때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개인적으로나 또는 공동체적으로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굳게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히브리 노예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보면 모든 민족에게 표본과 같은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속한 이 민족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도 출애굽 사건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미 이루신 그 구원을 이 민족이 온전히 맛볼 수 있도록 먼저 그 구원의 은총을 입은 우리가 앞장 서서 일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유월절은 그 뿌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해방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사도 공동체적으로 치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월절 양을 준비하고 그 피를 문에 바르고 그 고기를 나눠 먹는 일 같은 것은 가족 단위로 하지만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은 온 회중이 함께 모여서 하는 공동체 전체의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민족 공동체가 함께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을 가족 공동체에서 재현하는 것이 바로 유월절 행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의 성찬예식에서도 먼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라는 점을 확인하고 그와 동시에 그 주님이 이루신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극히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으로 체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소리들이 아우성처럼 들려오고 있 않습니까? 그러나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개성을 중요시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아예 개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심하게 말할 것 같으면 이 민족이 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때문에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까지도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살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오직 우리 주님뿐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노예들이 어떻게 구원과 해방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사슬로부터 누가 우리를 풀어 주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신 그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재현할 것을 굳게 다짐하고 구체적으로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 짙은 어두움을 다 몰아내고 이 땅 위에 공평과 정의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앞당기는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