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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티와 들보 / 눅 6: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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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티와 들보
본문:눅 6:41-42


주님의 설교는 사람을 웃기는 요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설교는 교양 강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한 인생의 생명이 사느냐 혹은 죽느냐 하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성과 엄숙성이 있습니다.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를 가볍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때로 너무도 단순한 이야기로 심각한 주제를 다루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위선의 문제를 티와 들보의 이야기로써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먼저 자기 눈에 티가 들어가 본 경험을 전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눈에 티가 들어간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눈에 티가 들어가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기 눈에 들어있는 티를 쉽게 빼낼 수 없습니다. 눈은 보기 위한 지체이지마는 그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됩니다. 어떤 문제든지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손은 손에 아픔이 있으면 손 노릇을 못하고 발은 발에 문제가 있으면 발 노릇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눈에 티가 들어가면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고치기 위해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타인을 도울 줄 아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타인의 도움을 겸허하게 수용할 줄 아는 사람도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고 하는 상상을 근거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눈에는 들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눈에 있는 티를 뽑아 주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의 허물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타인의 허물을 고쳐야 한다는 사람의 일반적인 위선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작은 잘못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 속에 숨겨져 있는 잘못에는 둔감한 우리들의 태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1.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통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비판을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비판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떳떳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끔 청문회를 하는 것을 봅니다. 청문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회에서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면에서 앞선 사람들이 청문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판단 받는 것을 보면 사람은 누구든지 다 허물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 앞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말씀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이 때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인생은 주님 앞에서 남을 비판할 수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약 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약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사랑하면 비판하지 않게 됩니다. 비판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2.자기를 먼저 고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인간만큼 편견이 심한 피조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문제를 자기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은 좋은 것이 되고 자기에게 나쁜 것은 나쁜 것이 되고 맙니다.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것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해서 보게 됩니다.

성경은 남을 고치려는 노력으로 자신을 고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판단으로 자신을 판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는 자기를 먼저 고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눈에 들보를 빼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자기를 먼저 고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 대단히 우애가 깊고 조그마한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한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형제가 길을 가던 중 동생이 황금덩이를 줍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우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황금을 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솟는 것을 누르고 형과 반씩 나누어 갖기로 하고 강가에 이루러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강 중간지점 정도 왔을 때 동생이 갑자기 자기 몫의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형님이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형님 금덩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형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금덩이를 보니 마음에 형님을 미워하는 생각이 들기에 이것이 무엇인데 형제지간을 이간질하는가 생각이 들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형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내가 먼저 고치고자 할 때에 문제는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먼저 고치는 방법은 타인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면 자신을 먼저 고치게 됩니다. 남의 허물을 먼저 고치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면 상대의 허물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이 보여지게 됩니다. 때문에 사랑하면 사람은 상대에게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3.자기 허물을 더 크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고쳐야 할 정서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잘못은 작게 보고 타인의 잘못은 크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모든 삶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당성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과 자신이 공평한 룰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넘어서야 합니다. 내 허물이 더 크다는 룰을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도 자기 눈에 들보를 뺀 후에야 남의 눈에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허물이 더 크게 생각되는 사람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외식의 함정에서 건져 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 책임이 더 크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성도는 그런 삶의 형식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적어도 외식이라는 가면을 벗을 수가 있습니다. 임금-효자는 흉내로도 상을 주라,

결국 자기 허물을 더 크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계명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말씀을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타인을 정죄하고 말씀으로 타인의 허물을 들추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외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딸과 아들이 미국에 사는 어떤 어머니가 자녀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미국에 갔습니다. 먼저 딸의 집을 방문했는데 아침에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딸이 일어나기 전에 사위가 먼저 일어나 아침에 먹을 빵을 굽고 출근하는 것인데 딸이 그토록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서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집에도 똑 같은 현상을 보고는 아들이 불쌍해서 미국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기 쉽습니다. 우리의 삶을 객관성 위에 올려 놓으려면 남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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