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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원초적 속성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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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원초적 속성 (행 2:43-47)


미국에  갈보리처치라고 하는 교회에  와그너(E. Glan Wagner)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그 목사님이 아주 특별한 제목의 책을 쓰셨습니다.  “교회 주식회사로부터의 탈출”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 '교회 주식회사' 어떻게 들려집니까? 이 교회의 속성과 모습이 변해가는 그런 답답함과 괴로움을 이렇게 호소하고 또 일깨워주고 있는 겁니다. 오늘아침에는 교회의 원초적인 속성이 무엇인지를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마16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면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우리가 그 깊은 뜻을 잠시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예수님 자신이 세우시겠다는 것이요, 또 그가 지켜 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교회에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마18장 20절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주의 이름을 불러 찬양을 하고 주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기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내가 .. 있으리라' 주님이 계실 때만 진정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9장 4절에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단순한 사건처럼 보이지마는 이 사건 속에는 엄청난 신학적 의미가 있을뿐더러 역사를 바꾸어 놓는 의식 전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고 또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다메섹 가까이 왔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길을 딱 막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한마디가  사울을 사도 바울로 만든 것입니다. 그야말로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바울이 핍박한 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였지 예수님을 상대로 핍박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핍박받는 교회를 자기자신과 동일시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교회를 환영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것이며,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이 말씀에  깜짝 놀라고 생각을 확 바꿉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 주님을 위해서 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연장선에서 말해줍니다.  이제는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는데, 성령이 강림하셔서 역사하게 될 때 사도들을 통해서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권세가 있고 사도들이 환자에게 손을 얹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그 이적이 실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 이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가 누구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 사람이 갈릴리어부에 지나지 않지만 저분은  그리스도가 선택한 분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분이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입에 함께 하고 있다'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런고로 베드로의 그 인간적인 존재 그가 누구며 그 과거가 어떠냐 묻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혹 교회에 나와서 교역자를 볼 때 교역자의 인물이 어떠냐 키가 어떠냐 학벌이 어떠냐…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그 순간 교회가 아닙니다 .
수원에 있는 어떤 교회인데  참 짓궂은  재정을 맞고 있는 중직자가 있었답니다. 목사님한테 도서비를 지출하고는 드리고 그 다음 날 목사님 서재에 들어와 책 사왔나? 안 사왔나?  확인을 하더랍니다.
그분이 물론 그 노회에서 치리를 받고 나타나지를 않습니다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출입하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셔서 말씀이 나타나고 성령이 나타납니다. 그리하게 될 때 교회가 교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성경에 보면 원초적인 교회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첫째,  경건성입니다.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교회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 경건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경건이 떠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란 말입니다.
요새 어떤 교회를 가보면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댄스홀인지 교회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경건해야됩니다. 신령한 두려움이 있어야합니다
여기는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의 말씀이 계신 곳.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내 기도가 응답되는 곳이요. 그런 고로 경건함, 신령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42절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배우는 곳이에요. 알고 보면 사도라는 사람들이 갈릴리 어부입니다. 그로부터 무얼 배운다는 얘기입니까? 학벌이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과거의 부슨 경험 있습니까?
다만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동사 동역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나  사도들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계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바로 섬김이 있고 예배가 있습니다. 현재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들은 섬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렇게 바꾸어졌습니다.  오직 사도들을 두려워했고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신령한 역사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을 향해서는 죽음도 핍박도 아무 것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원초적인 속성입니다.

셋째, 나눔입니다.

45절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저들은 이제 이웃에 대한 필요를 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세상 복잡한 것 같아도 딱 정리해보면 두 가지 세상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빼앗는 세상, 또 하나는 주는 세상입니다.
공산주의는 빼앗는 사회입니다. 공산당이 뭐냐 그러면, 빼앗는 자들입니다.  빼앗기 위해 혁명을 일으킵니다. 못 빼앗기 때문에 죽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사회는 어떻게 다릅니까? 기독교사회라는 것은 베푸는 사회입니다.
사람도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소유 지향적인 사람, (그저 가지고 또 가지려다 아무 것도 못 가지고 가는 사람이에요. 또  언제나 얻는 것을 기뻐하고 소유를 기뻐하고 삽니다.)
또 하나는 주는 사람, 베푸는 사람,  ( 베푸는 것을 생각하며 베푸는 기쁨으로 삽니다.)
생명도 주고 물질도 주고 뭐든지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받는 것이 얼마고 주는 것은 얼마입니까?

여러분, 교회도  주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성숙한 교회요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실 교회는 전 예산의 50%를 이상 밖으로 내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50%만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 베푸는 것입니다.  교회는 재고가 많으면 병이 들기 쉽습니다.  얼마나 주느냐, 얼마나 베푸느냐에 따라서 인간도 사회도 교회도 평가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요3:16)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섬겨야한다.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섬길 때 그에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창립30주년을 맞는 우리교회 이제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원초적 속성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경건한 예배의 회복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나눔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곳에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주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역사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이제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더하사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사랑하고 섬기게 하시며 주님이 세운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지키시며 주님이 부흥케 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한국교회가 점점 신령한 두려움을 잃어가고 말씀보다는 다른 것을 찾고 자체적으로 비대하여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다시 한번 불쌍히 여겨주셔서  신령한 두려움 경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 받으며  그리고 이제 주어진 은혜와 축복들을 나누고 베푸는 교회의 원초적인 특성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창립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한양교회가 더욱 성숙하고 더욱 아름답고 더욱 건강한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이번 주 토요일에는 수재민을 돕고 조선족을 돕기 위한 사랑의 바자회를 하고자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간섭하여주시고 이일을 통하여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는 이 교회를 통하여 더 많은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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