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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케 하리라 / 요 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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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유케 하리라
본문:요 8:31-36

요즘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청년 실업자들이 앞으로 10년 정도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거에 나오는 사람마다 자신이 집권하면 실업자를 없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청년 실업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나라에는 일자리가 없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외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회사마다 외국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신세대 젊은이들은 3D 직업을 기피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3D 직업이라는 것은, 즉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을 기피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어른 세대는 한국 경제가 GNP 200불에서 10,000불 비약하는 동안에 3D 일을 대부분 경험해본 분들입니다. 문제는 어른들이 애써 이룩한 열매들을 청년들이 따먹기만 하고 자신들을 가꾸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른들은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3D 일을 기피하는 것은 일이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3D 일의 가장 취약점은 단순 반복만을 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D 일이란 일하는 자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일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페러다임, 즉 인식의 틀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일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일에 자기를 얽매는 것을 싫어합니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 일이 자기를 자유케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일이란 자기를 얽매이는 일이 있습니다. 일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일로 인하여 자유를 빼앗긴 사람입니다. 반대로 일이 사람을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 일이 그 사람을 자유케 합니다. 가령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일이 그 사람에게 자유를 줍니다.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책- 컴퓨터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하루 종일을 같이 있어도 헤어지기가 싫지만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잠시라도 부담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함께 하는 것이 자유가 됩니다.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부자유로 느껴지게 됩니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얽매임이 됩니다. 떨어질 때 자유 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비결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바른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할 수 있는 정서적인 기본이 분명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내게 속박을 준다는 느낌이 있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 내게는 자유를 준다는 느낌이 있으면 신앙생활은 언제나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가 자유를 느끼게 되면 그는 신앙생활이 언제나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신랑과 함께 하는 것이 자신에게 자유로 느끼는 신부는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랑의 말을 듣는 것이 자신의 마음에 평안을 준다면 그 말을 들을 때에 자신의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정서를 보면 그 사람의 영적 소속감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에 대한 잣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는 말씀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얽매임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말씀을 주십니다. 성도는 언제나 말씀 안에서 자유 함을 얻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사단은 인생에게 말씀 때문에 우리가 부자유하다고 유혹합니다. 자유에 이해가 결국 신앙생활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자유에는 크게 두 가지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자유와 다른 하나는 영적 자유입니다. 예수님이 자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고 반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육체의 자유를 말하고 있고 주님은 영적 자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육체의 자유와 영적 자유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 무엇보다 영적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고 했습니다.

육체의 자유라고 말할 때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지배로부터의 자유,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질병과 무지로부터의 자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유는 그런 자유가 아닙니다. 영적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며, 죄의 요구로부터의 자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롬 8: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광복절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주신 날입니다. 광복절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에게 육체의 자유를 주신 날입니다. 일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주신 날이요, 가난과 질병과 무지로부터 이 민족이 세계를 볼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날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던 1945년 국민생활 수준을 통계청의 기록을 보면 평균 수명 44세 유아 사망률 1000명당 102명으로 인도 다음으로 높았습니다. 문맹자 77% 였습니다. 불행에 갇혀 있던 우리 민족을 하나님이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광복절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자유국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애국 지사들이 죽었고 국외로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정치적 자유는 한 나라의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경제적으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본에 의해서 수탈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만주로 떠나간 것입니다. 일본 통치 말기에 우리나라 국민학교 학생 2/3가 영양실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절을 통해서 얻은 귀한 자유는 신앙의 자유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순교를 당했던 이야기를 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을 살면서 신앙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신앙의 자유가 없는 곳은 결코 축복된 삶이 아닙니다. 미국을 세웠던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명분이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사는데는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영적 환경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고 하나님께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다면 복된 환경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하나님은 다른 삶에도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의 영원한 원형은 영적 자유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주님은 이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을 그 마음에 영접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겉으로만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삶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 영역은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씀을 떠나서 영적 자유를 상실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말씀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겉으로만 볼 때에 사람에게 가장 자유하는 모습은 죄를 지을 때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서 육체의 자유를 누린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세금을 포탈하면 본인에게는 제도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성방가를 하고 법과 질서를 무시하면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죄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종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죄 속에 인생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자유가 말씀 안에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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