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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 수 24:14~18 (요 15:16~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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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본문: 여호수아 24:14~18 (요한복음 15:16~19 참조) 
 
  오늘 봉독한 여호수아 24장의 말씀은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끈 지도자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그의 유언과도 같은 비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출애굽 역사의 종착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백성들에게 죽음을 앞둔 그가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출애굽 사건의 총결산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그들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할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그 모든 어려움을 겪고 드디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착을 다만 출애굽 사건의 결산으로만 볼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장차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땅이 바로 가나안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약속의 땅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증언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이 말씀은 그 어떤 말씀보다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맺으셨던 그 약속이 성취되어 마침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수아는 다시금 하나님 앞에 세우고 다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과연 무슨 다짐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들에게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꿈꿔왔던 해방의 역사를 결코 물거품이 되게 하지 말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 24:14)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원래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습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짓누르고 빼앗고 죽이는 것들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기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우상들의 속박으로부터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그 속박에서 불러내사 약속을 향해서 떠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전에 그의 삶을 보장하던 모든 것, 즉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모든 낡은 것들을 끊어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아브람에서 새로운 존재 아브라함이 되기 위해서 그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의 떠남은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 사건을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제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된 아브라함의 후손들, 즉 약속의 백성들은 약속이 있기 전 상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시 강 저쪽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서 섬기던 우상을 여기서 또 다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 형편은 어땠습니까? 거기서 히브리 노예들은 바로를 섬겨야 했습니다. 바로가 누구입니까? 애굽의 신의 아들이요 또한 신 아닙니까?
그들은 바로뿐 아니라 애굽의 신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온갖 우상들을 섬겨야 했습니다. 노예로 산다는 것은 애굽의 그 많은 우상들의 종노릇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로와 온갖 우상들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사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금 그런 우상들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 저쪽에서 섬기던 온갖 우상들을 다 버려야만 합니다. 새 날을 위해서 과거의 낡은 역사를 단호히 청산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가 수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낡은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면 그것으로 이제 충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 청산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낡은 우상들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삶의 중심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새로운 삶의 원칙을 분명하게 세워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여호와만 섬기자고 합니다. 낡은 우상들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오직 여호와만 섬겨야 합니다.
다른 우상들을 버리는 것도 어렵지만 오직 여호와만 섬기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들이 가나안 땅에서는 아모리 족속의 신이라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강 저쪽에서 섬기던 우상들을 버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들의 과거에 낡은 우상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현재에도 여전히 다른 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에게 낡은 우상들이 있었다면 후손들에게도 여전히 다른 신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도 또한 거부해야만 합니다.

  어찌 아모리 족속의 신들뿐이겠습니까? 우상들과 다른 신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훔쳐서 위세를 부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 때로는 우리 스스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낡은 굴레와 사슬로 억압하는 신으로 왜곡하고 있지 않습니까?

생명의 하나님을 죽음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두렵지도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이고 억압하는 일이 자행되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행여나 하나님을 힘으로 누르고 빼앗아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저 낡은 우상들이나 신이 아닌 기짓 신들로 오해하거나 착각하게 만들어서는 결단코 아니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낡은 우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겨야 합니다. 모든 억압의 굴레를 깨뜨리시고 자유케 하시는 그 하나님만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간직한 백성들이라면 교회도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때문에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떠나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려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의 온갖 우상들과 신이 아닌 거짓 신들을 버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15장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친히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셨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은 이 세상의 거짓 신들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시고 미움을 받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주님을 미워했던 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미워했던 이 세상의 신은 과연 무엇입니까? 로마의 신은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신입니다. 때문에 폭력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신입니다. 또한 탐욕의 신입니다. 때문에 사람을 물건과 같이 취급하고 노예로 삼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립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주님에게 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가 이 세상의 모든 낡은 우상들과 거짓 신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에게 속한 사람들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제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섬길 것입니까? 아니면 우상들이나 거짓 신들을 섬길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이 처한 상황과 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재물과 권세와 명성과 같은 우상들을 섬기도록 집요하게 유혹하는 악한 마귀의 손길을 뿌리치고 오직 참 자유와 해방을 베푸시는 하나님만 섬김으로써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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