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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경주일] 자연환경 오염은 양심의 오염 / 창 3:17, 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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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환경 오염은 양심의 오염 / 창 3:17, 롬 1:25   

전세계의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자부하는 서구의 중세 기독교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였으며, 이런 인간 중심의 인간과자연의 이원주의가 마침내 인간의 자연 정복 사상을 고취하면서 개척 정신을 불러와 물질문명의 발달을 가져왔고 자유방임적인 민주적 문화를 형성하여 결과적으로 생태학적 위기의 근원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배경은 지속적, 상향적 개발이라는 상승 기대 충족을 위한 과학 기술의 발달이 환경 문제를 야기 시켜 환경을 파괴했으므로 개발과 환경 보전의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하강기대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사실 환경 보전에 많은 관심을 두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성장을 가져오게 되고 개발과 환경 보전의 상호 보완을 통한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기, 물, 토양 등은 생산을 위해 어느 원료보다 중요한 자원입니다. 이런 중요한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는다면 GNP의 성장은 줄어들 것이며 긴 안목에서 보면 그 차이가 심해질 것입니다. 또한 공해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해 두는 것은 결국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생산 과정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기존 양식을 변경 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공해가 없는 생산 양식을 택하는 것보다 경비가 더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개발과 환경 보전의 유기적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산업화에 비례하여 환경보전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또한 경제 계획과 환경 보전 정책은 동시에 수립 되어야하고 개발과 정상에 환경 보전 시책이 동시에 집행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복지향상을 위해서는 급속한 개발과 환경의 질과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자연 보전 철학의 바탕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고 인간은 단지 관리하는 관리인이라는 사명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전하고 개발하기 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편리주의에 따라 착취하여 문화를 형성해 왔습니다. 문화란 자연을 인간의 목적에 따라 변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의 계획적이며 자유스럽고 통치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의 기구로서 창조물에 대한 지배적 향상을 인간의 정신과 손을 통한 주권에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화는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인사랑의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창조물을 대상으로 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나타내고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는데 최대의 도구로써의 인간의 문화는 인간 자율적 문화 즉 하나님을 적대하는 문화인 가인 문화 또는 탕자문화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쫒아가는 문화인 아벨 셋의 문화 또는 하나님과 관계 속 문화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로 가인의 행동에 있어서의 문화는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한 문화이었고 하나님의 노를 피하지 않고 구하는 것이었으며 즐거움 오락 자기만족을 위하는 문화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인간의 물질 지향적이고 탕자 문화적인 삶의 추구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여 심각한 공해 문제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 환경의 오염이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과 맺은 창조 질서의 계약을 파괴시킨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드러내면서 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부정하고 불순종 속에서 하나님과 맺은 창조 질서의 계약을 파괴하고 땅을 경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법대로 보전하지 못하고 신음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서 불법을 행하게 되면 창조 세계의 질서는 물론 생활 질서까지도 훼손되게 됩니다. 따라서 자연 환경 오염의 원인은 인간의 죄악성에 기인됩니다. 이러한 죄악은 만연되고 유전됩니다. 즉 인간의 죄는 악을 낳게 되고 악이 생기면 죄를 짓게 됩니다.

예로써 아담과 하와가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개인의 죄는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는 가족의 범죄를 낳고 한곳에 모여 바벨탑을 쌓는 사회의 범죄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사회 범죄는 이스라엘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었고 더 나아가 창조 세계 전체를 파괴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악은 이렇게 창조 세계를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 환경오염의 원인은 현대의 인류가 고도화 거대화 대규모화 대량화의 추구로 발생되는 집중화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집중화 현상은 타락한 자아 중심적인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편리와 야망의 욕구 충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과 목표에서 이탈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무의미한 소비가 국민적 의무가 되고 생산의 증대가 자기 정당화 되는 기술 관료적 통치사회(Technocratic society)는 경제 성장, 과학, 그리고 기술의 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더욱 고도의 집중현상을 야기 시키기도 합니다. 특히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한 곳에 집중시켜 거대 도시화를 이루게 하였고 산업 단지를 조성하여 대량 생산에 따른 대량 소비 활동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전체에게 땅에 있는 자원을 유한하게 골고루 주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경제생활도 하나님의 피조계의 일부분이며 인간의 소명의 중대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경제생활의 목적은 인간사이의 진정한 유대의 표현이 되어야하고 의무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청지기의 의무에서 벗어나서는 아니 됩니다. 이러한 목적과 의무가 결핍될 때 인간은 모든 창조 세계의 형태를 자기 이익에만 집중적으로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고 추구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들 공장과 차량에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폐수나 매연이 수질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여기에 소음마저 겹쳐 생물들의 안식처를 앗아가고 국민들의 건강에도 크게 위협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산업의 고도성장은 무한한 가능성을 과시하면서 전개되었으며 또 인구도 격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공장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나가기 때문에 인구는 도시로 모여들게 되고 인간 집단이 무한정으로 배출하는 분뇨나 하수가 쓰레기 등으로 환경의 오염은 한층 가중되고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달됨으로써 식량을 조달해야하고 편리한 영농 방식의 요구에 따라 기계화와 함께 비료 농약의 등장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농업의 양태도 크게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화학 비료의 등장으로 식량의 증산에는 기여할 수 있었지만 이를 사용함으로써 지층의 미생물을 잃게 되었고 토양이 활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농약의 사용으로 식량 증산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여기에 함유된 유해 물질 때문에 자연 생태계에 큰 이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농약의 이러한 유해성은 인간의 몸속까지 미치게 됨으로써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 단계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극히 복잡하게 되었고 자연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크게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드디어는 파괴의 궁지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류가 물질적인 욕구만을 집중적으로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우리 인류는 머지않아 생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과의 기본적 관계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지구상에 분포하는 인구의 급증입니다. 날로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해야 하는 자연 환경의 크기는 엄격한 한계가 주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인구는 거의 아무런 제동이 걸리기도 않은 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구의 급증 현상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불어날수록 상대적으로 대량 생산을 유발하여 자연의 파괴를 촉진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연 파괴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자연 환경 오염의 원인은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환경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창조세계가 오염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인본주의의 사고와 행동은 환경을 지키고 가꾸라는 하나님의 책임 명령을 잊어버리고 자연은 인간에 의해 복종되어져야 하고 자연을 복종시키기 위해는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인간이 오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염려가 더욱 인간을 인간중심으로 만들며 이로 인해 오늘날 인간은 환경이 급속히 오염되고 그 피해가 증대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피조물로서 인간의 본성은 우리를 아무 것도 경배하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에 순종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든지 하게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우상 숭배는 인간을 더욱 어리석게 만듭니다. 마음의 교만이 불의와 불법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하고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따라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고 이용한 결과 자연은 파괴되고 환경은 오염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물질이 풍족한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인간 스스로 선택한 환경은 오염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분히 잘못된 이러한 자연관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임이 틀림없고 인간의 환경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환경관은 인간과 만물의 시작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통해서 만이 바로 정립될 수 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자연관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법칙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에게 바로 순종하면 환경은 보전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르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할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역하면 오염된 환경 속에서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장의 질을 바꾸어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즉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같이 사는 길이고 결국 인간을 살리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 질서의 회복은 땅에 있는 환경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로 질서 회복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고 모든 인간은 거기에 붙어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와 생명을 받아 질서 있게 움직여 가면서 이상적인 조화가 이루어지는 창조 질서의 회복을 말함입니다. 자연에서의 모든 현상은 질서에서 질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관리할 때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재생산성을 높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현상을 양가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재생산성이란 자연에서 생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갱신되어 가는 과정을 말함입니다. 예컨대 에너지를 생산하는 경우를 보면 나무를 사용할 때 에너지를 생산하고 남은 재는 다시 토양에 버릴 때 식물의 비료로서 작용하여 자연에서 재생산 됩니다. 그리고 나무보다 고에너지를 생산하는 석탄의 경우 석탄재는 나무의 재보다 처음에는 느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환원되어 재생산 됩니다.

그러나 아주 고에너지인 원자력의 경우 전력을 생산하고 남은 방사성 폐기물은수 백년이 지나도 자연에서 재생산 될 수 없고 더 나아가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기까지 합니다. 양가성(兩價性)이란 앞으로 나가는 것이 있으면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 있듯 모든 현상은 양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다스려 자연의 재생산성을 높이고 모든 사태와 사물을 양가적으로 판단하여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른 건전한 목표를 수립하여 그 목표를 향하여 기술과 과학의 성과를 활용하는 가운데 세상을 개혁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더 빨리, 더 많이, 더 편리하게 생산하고, 더 편리하게 사는 것을 발전으로 추구하는 가치 기준을 따져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가장 완전한 질서에 따라 충만하고 무한한 다양성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완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다양성을 일축해 버리고, 오로지 인간 중심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으로 여러 가지 도구나 기술을 이용하여한 방향으로 개발하고 다른 피조생물들을 억압하고 파괴하여서는 않됩니다.

결론적으로 자연 환경오염은 양심 오염의 문제입니다. 양심 오염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 중심적인 사고 행동에서 파생됩니다. 따라서 자연 환경 보전의 목표는 도덕성의 회복입니다. 환경 보전을 하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문 인력이 아니라 사람의 도덕성 회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신약 본문 로마서 1장의 전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계시”란 단어입니다. 우리는 신학자들이나 목사들로부터 기독교와 유대교는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에 입각한 종교라는 말을 듣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자연이나 인간의 양심 또는 성경이나 그 밖의 특수한 매개체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하나님 자신 및 인간을 위하여 가지고 계신 자신의 계획을 알려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자연 계시”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이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양심(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롬1;19.20절)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연환경보전의 관심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순간 우리의 현실생활속에서 생태학적으로 생각해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두 길 가운데 언제나 생명의 길을 선택해서 결단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믿고 십자가를 통하여 날마다 자신의 죄악성을 죽이고 다시 살아나서 공의를 행하며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마음으로 감사와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완전히 보전되고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환경보전은 환경에 대한 지식을 쌓고 성서의 자연관을 신앙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때 사람과 자연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자연환경오염은 인간양심의 오염”과 비례하고 자연화경 보전은 창조질서회복입니다. 인간중심의 삶의 태도에서 창조주 하나님중심의 삶으로 옮겨 탕자문화를 청산 하고 생명문화를 살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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