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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멜기세덱의 축복 / 창 14:8 -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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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창14 : 8 - 24절 2003.10/26(일)
제 목 : 멜기세덱의 축복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전투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전도도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대하22장의 여호사밧과 암몬의 전쟁을
거룩한 예복을 입은 노래하는 자를 앞세워 나가 승리함으로
우리의 예배에 적용하여 예배는 영적전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삿6:의 기드온의 300용사를

오늘날 기도의 용사에 비유하여 기도는 영적싸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에 아브람과 그돌라오멜의 전쟁을
조카 롯을 구출한 사건에 비유에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전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창14: 에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전쟁을 불사하는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전도의 측면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의 소유가 많아지자 아브람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다투니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네가 동하면 내가 서 하고
네가 서하면 내가 동하겠다고 선택하라 했을 때
조카 롯은 소돔 땅을 택하여 그곳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조카 롯과 헤어진 후 곧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은 고대 중동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 생기 기전 엘람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큰 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나안 땅까지 그의 통치권 아래 두었던 왕입니다.
1-3절에 보면
그돌라오멜이 주변 세 나라와 연합하여 가나안 땅을 침공하니
가나안 땅에 다섯 왕이 연합하여 맞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란 이라크 지역 네 왕과
팔레스틴 지역 다섯 왕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동기는
가나안 왕들이 그돌라오멜을 섬겼는데 13년째에 배반을 하게되니
그 다음해 그돌라오멜 왕이 주변 나라와 연합하여
가나안 땅을 침공했던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소돔 왕이 패하게 되었는데
소돔 성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과 붙들려 갔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은
오늘 창세기에 고대 중동 전쟁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신앙적 의미가 없는 것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1) 롯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문제는 물이 풍부하고 목초가 풍부하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롯은 소돔을 택할 때
신앙의 안목을 택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정욕의 안목으로 택했습니다.
요1서1:16절 [ 이는 세상의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난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라 ]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선택이요 기준입니다.
2) 이 세상에는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테러 사건 후 미국 뉴욕을 다녀 온 친구 목사님이 하는 말
한인교회들이 크게 깨달은 것이 있더라
[ 한국만 떠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미국도 안전한 곳이 못된다 ]
그래요 미국 캐나다 조기 유학시킨다고 다 잘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세상을 구원해야할 이유입니다.

왜? 롯이 포로로 붙들려 갔습니까?
1) 롯의 개인적인 욕심에 이끌려 소돔 땅에 가게 되어서 그랬고
2) 그돌라오멜과 전쟁에서 소돔 왕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소돔과 고모라 왕들이 패한 이유가 있습니다.
10절에 보니 본래 소돔과 고모라 왕이 본래 전쟁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니 그돌라오멜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땅은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합니다.
역청 구덩이에 그돌라오멜 연합군대가
그기에 빠지기를 바랬는데 반대로 쳐들어 노는 바람에
되려 소돔 왕의 군대가 거기에 빠졌습니다.
이건 무얼 말합니까?
역청 구덩이가 무엇입니까? 석유입니다. 원유구덩이지요. 검은 돈이지요.
그러니 소돔 고모라 땅은
한편으로는 기름진 평원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검은 돈이 솟아나는 곳입니다.
소돔 왕은 역청 구덩이만 믿고 이제 자유롭게 살아야겠다고 전쟁을 했는데
되려 그 역청 구덩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검은 돈이 올무가 된 것입니다.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물론 하나님이 유황불로 심판했지만 창19:28절에 소돔이 불 탈 때
[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 고 합니다.
이것은 역청 구덩이가 함께 탄 것을 말합니다.
찬269장 3절
[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

소돔이 그돌라오멜 왕에게 패할 때
아브람의 조카 롯과 재물도 노략을 당해 사로잡혀 갔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출하러 갑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출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장장한 가나안의 다섯 왕이 패했던
그돌라오멜 왕을 아브람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먼저 그 요인을 살펴보면
1) 아브람은 조카 롯과 헤어진 후 13:18절에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습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롯은 세상 물질 택하다가 지금 낭패 당했고
아브람은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을 장소를 택했던 것입니다.
롯은 사업을 먼저 택했고
아브람은 교회를 먼저 택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부흥성가가 있지요
[ 예수 없는 사업은 성공같애 실패요
예수 있는 사업은 만사 유익합니다. ]
누가 세상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인 사람입니다.

2) 13절에 마므레 사람들 즉 에스골과 아넬이 아브람과 동맹관계에서 돕습니다.
즉 혼자 잘 믿은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에게 예수 향기 날리며
이웃 사람들을 잘 섬긴 것을 말합니다.
아브람이 단을 쌓던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를 헤브론이라고 합니다.
헤브론은 친교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이웃 사람들이 아브람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습을 보고 부쳐진 지명입니다.
즉 이웃에게 덕을 기친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같이 싸워 줍니다.
전도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인은
이웃과 담을 쌓은 교회가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교회라는 것 꼭 명심합시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교회 중심 예배 중심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자신이 먼저 신앙의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먼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조카 롯을 구하기로 아브람은 결단을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괘심한 것, 잡혀가도 싸지, 이럴 건데
아브람은 곧 자기 집에 길렀던 사병 318명을 데리고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가족들을 찾아옵니다.
다섯 왕이 연합하여 이기지 못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람이 당해낼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개입합니다.
이유는 3 가지입니다.
1) 13:8절에 [ 우리는 한 골육이라 ] 이 한마디가 답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무모하게도 롯을 구하러 갑니다.
아브람은 롯을 단순히 조카로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혈육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줄보다 더 질긴 줄이 바로 친권이라는 줄입니다.
깡패에게 잡혀간 아들보고 구경만 하고 있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불 속에 갇혀있는 자식보고 안 뛰어들 부모 있겠습니까?
이것이 골육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사랑도 아닙니다.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기억나시죠? 사랑은 너는 너 할 일 못해도 나도 내 할 일 다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브람은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롬9:3절에
[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도의 동기인 것입니다.
전도의 사람은 먼저 자신의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가 흘러야 합니다.
예수의 피로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은
북한 동포도 나의 골육이 되고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딤후1:9절에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맡기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거룩한 일’이란 생명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거니와,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슨 목적으로 그토록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가족의 생계도 걱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하여 살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짓입니다.

책이 일만 권만 팔려도 베스트셀러에 속하게 된다는데,
‘가시고기’라는 책은 140만 권이 팔렸다고 합니다.
이 책을 쓴 조창인 씨는 전업 작가입니다.
한동안 인기가 있어서 살만 했는데, 그 인기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가족들을 굶겨야 할 정도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를 만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불치병에 걸린 아들로 말미암아 더 큰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주제로 해서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져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안간힘을 다 쓰다가,
어떻게 해서 아들은 회복되지만
정작 그 아버지는 간암으로 죽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조창인 씨는 소설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까 고민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어떻게 해야 이 책을 제대로 끝맺을 수 있을까요? ]
한참 고민하며 기도를 하는데, <6>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 아들은 살고 아버지는 죽는 것 ] 으로 소설을 끝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 가시고기 ]라는 책은
새끼 가시고기를 위하여 제 살을 뜯어 먹히는
수컷 가시고기의 숭고한 사랑에 빗대어,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간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가슴속에 흘러
우리도 아브라함같이 바울같이
형제 자매 골육이라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아브람의 믿음입니다.
이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냐? 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면
아브람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본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라는 구절은 없지마는
20절에 멜기세덱 왕이 아브람에게
[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
라는 말을 볼 때에
아브람은 하나님이 함께 함을 믿고 나갔던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인간 적으로 대책이 없을지라도 대책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대적을 붙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210 아낭케 전도대회를 앞두고
특별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하나님이 부쳐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14절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명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평소에 세상과 싸울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준비된 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준비된 자를 통해 역사를 하십니다.
준비된 교회 준비된 일군을 통해
사람도 물질도 땅도 부쳐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름철이면 신나게 울어대는 매미들은
자그마치 6년 동안 땅속에서 벌레로 있는 동안 4번 이상 허물을 벗어야, 비로소 매미가 되어서 울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름철에 매미가 울면, 우리는
‘아,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을 보니, 지금이 한 여름이로구나!’하고 간단히 생각해버립니다만,
6년을 기다리면 준비한 울음인 것입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매미도 잠시 한철 우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6년의 준비 기간을 갖고 나와 울어되는데
우리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잘 준비하는
영혼 구원에 능한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출한 사건은
오늘 우리의 전도가 어떠해야 할 것을 말해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조카 롯을 두고
아브람과 그돌라오멜과의 싸움은 단순히 땅 따먹고 약탈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영적인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전도가 어떠해야 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에게 사로 잡혀가서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자 318인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쳐서 조카 롯을 도로 찾아옵니다.
이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영적싸움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내일의 용사들이 되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사람을 강권하기 이전에
먼저 그 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마귀적인 세력과 기도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이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니카오」인데 본래 정복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쟁용어인데
우리는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자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인들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제일 잘 짓는 이름이 <니콜라스>라고 합니다.
그것은 「니카오」에서 나온 말인데 이기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니콜라스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전도하기 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되려 찾기 위하여 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신발 메이커 「나이키」가 있지요. 같은 말입니다.
이 신발 신고 뛰면 이길 수 있다는 선전 메세지를 담은 것입니다.

성경에도 전도를 나이키 발걸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52:7절을 인용한 롬10:15절
[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
이 말은 바로 전쟁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발
즉 영적 나이키를 말합니다.
전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친권적인 믿음과 담대함으로 승리하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아브람이 조카 롯과 재물과 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하여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와서 축복을 합니다.

17-18절 이하에
이제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고 싸워 이기고 돌아올 때
소돔 왕이 멀리까지 마중 나와 아브람을 영접하고
특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마치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을 높이신 것입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을 같은 친구로 대했겠습니까?
어떻게 소돔 왕이 멀리까지 나와서 아첨을 다하며 아브람을 영접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높여 준 것입니다.

아브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그 어려움을 통하여 더 존귀하게 되고 더 큰복을 주십니다.
19절 [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빕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20절 [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

성경에 가장 신비로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멜기세덱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높으신 제사장이라 합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이 참으로 하나님의 의로 다스렸기 때문에
히7:2절에 [ 살렘 왕 곧 평강의 왕이라 ] 합니다.
그리고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멜기세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돌라오멜과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아브람을 환영하고 축복하는 멜기세덱은
바로 우리가 영적전쟁인 전도에서 승리할 때
예수님도 환영하고 축복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결론 >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그돌라오멜과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전도는 영적전투라는 것입니다.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해야 합니다.
나아가 전도 대상자가 나의 골육같이 여져져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전도하는 교회와 성도를
환영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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