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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표 국화빵 / 엡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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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 표 국화빵
본문 : 에베소서 5:1-9


부모를 꼭 닮은 아이를 보면 국화빵이라고 합니다. 길거리 노점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팝니다. 틀에서 빵이 나오니까 똑같습니다. 국화 문양이 들어간 틀에서 빼면 국화빵이 나오고, 붕어 틀에서 빼면 붕어빵이 됩니다.

애들이 어쩌면 그리도 닮는지 얼굴뿐만이 아니라 성품까지도 부모를 닮습니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그 형제들도 걸음걸이가 모두 같습니다. 유전 정보가 같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젊은 집사님 가정에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출산 심방을 가보니 갓난아기가 얼굴이 네모지고 머리숱이 많고 눈썹도 짙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다. 남자 집사님을 보면 덩치도 크고 우락부락합니다. 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착한데 외모는 깡패 같습니다. 반면에 부인 집사님은 얼굴이 갸름하고 야리야리합니다. 아기가 엄마를 닮았으면 예뻤을 텐데 아빠를 닮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기를 보고 차마 깡패 같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를 꼭 닮았구먼’하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 집사님이 좋아하더군요.
그런데 옆에 같이 심방을 간 권사님이 바른 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얼굴만 봐 가지고는 군대 보내도 되겠다.’ 그랬더니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12절 말씀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명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분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 절 말씀에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1 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우리도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보호하십니다. 사랑으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를 모방하면서 자랍니다. 물론 같은 유전인자를 가졌기 때문에 닮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면서 같은 생활 방식, 같은 사고방식, 같은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격까지 닮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좋아하시는 것을 우리도 좋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우리도 싫어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죄를 닮아가며 살았습니다. 죄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맞춰서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모습 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본 받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았어도, 부모를 미워하고 떠나면 닮았다는 평가도 달라져야 합니다.

못되고 미운 것은 그대로 남는데 선한 것은 닮지 못합니다. 어쩌면 못된 것은 금방 배우고 그리 오래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선한 것은 가르치기도 어렵고 유지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신경망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에 반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늘로 찔리면 금방 반응합니다. 아프다는 신호를 급속히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이 긴급한 신호는 뇌에까지 가기 전에 등뼈에 전달되고, 피하라는 신호를 팔 다리 근육에 명령합니다. 뇌에까지 갔다가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중간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깥 공기가 추우면 추위를 느낍니다. 그러면 금방 몸을 움츠리게 됩니다.
신경은 추위와 고통의 신호를 신속하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즐겁고 기쁜 일은 신경이 전달하지 못합니다. 즐거운 일은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으면서 종합적으로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즐거움은 신경망이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하나가 되어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에게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금방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 동안 사랑을 받으며 배운 아주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런 정성과 은혜로 닮아갑니다.
만일 사단을 닮기 원한다면 그건 따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기분대로 나 좋은 대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쾌락을 좇아 살면 금방 사단을 닮게 됩니다.

오늘 본문 1 절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 절에 자녀라는 말씀이 나오고 마지막에 8 절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닮는 삶을 살려면 첫째로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본문 2 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서 자신을 버렸다는 것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기희생입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은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예수님의 사랑 실천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 또한 사랑 가운데서 행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일을 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것인가 점검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 짚어봐야 합니다.

제리 브릿지즈라는 분이 [거룩한 삶의 추구]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하나님을 닮고 있는지 분별하는 4가지 기준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일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유익한가를 따져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따집니다. 쾌락을 따집니다.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느냐를 따집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보다 이것이 몸에 유익하지 따져야 합니다. 몸에 좋은 것이면 다 좋아합니다. 몸에 해로운데도 불구하고 잠시 동안의 쾌락을 위해서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정신적으로 유익한가 보아야 합니다. 독서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은 영적으로 유익한가를 따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이 기도와 말씀을 다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영적으로 아주 유익합니다.

둘째는 이 일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 않느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아무리 건전하고 좋은 일이라도 거기에 중독 되거나 탐닉하거나 집착하고 있다면 내가 그 일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에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책을 쓴 저자는 자기가 테니스를 치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테니스가 어쩌다 재미있는지 하루라도 안 치면 몸살이 나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지배해야지 테니스가 나를 지배하면 되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동안 테니스 치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는 테니스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고 판단되었을 때 다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의로 할 수 있을 때에 그 때 한 것입니다.
어떤 일에 집중하면서 빠져들면 주변을 못 보게 됩니다. 가정도 안 보이고, 하나님도 안 보입니다.

옛날에 겔러그라는 컴퓨터 게임이 있었습니다. 화면에 파리들이 날라 다니는데 비행기 총으로 쏴서 잡는 게임입니다. 오른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르면 총알이 나옵니다. 저도 이 게임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한참을 죽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환상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고, 계시가 보이면 좋았는데, 파리 떼가 어지럽게 날라 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셋째 기준은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그 일은 옳은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닮는 삶이 아닙니다.

네 번째 기준은 이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이 4가지가 하나님을 닮아가는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모든 삶의 상황 속에서 이 기준을 적용하고 하나하나 점검해서 내가 지금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는 삶을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는 두 번째는 더러운 것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 본문 3 절을 보겠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나쁜 것을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며칠 전 뉴스에 아주 희한한 소식이 나왔습니다. 여러 부부들이 모여서 놀다가 부부를 바꿔서 하는 스와핑이라는 것을 적발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경찰이 찍은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어떤 교인이 그 소식을 듣고 와서는 흥분을 합니다. 인간이 그럴 수가 있냐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없이 듣기에 아주 민망한 단어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화제를 바꾸게 했습니다. 그런 뉴스는 아예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나쁜 것은 금방 퍼집니다.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백성은 입이 더러워지는 것은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런 죄악들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본능, 자기 욕심, 자기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입니다.

음란과 성적 부도덕, 성적인 탐욕들은 사랑인 것처럼 위장하지만 사실은 가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자기 욕심을 충족시키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다른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가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실마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은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양심이 무디어집니다. 나중에는 큰 죄악도 당연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는 세 번째는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 4 절 말씀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저속한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보다 한 단계 앞서야 합니다. 그것은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것은 능력입니다. 감사는 힘이 없으면 못합니다. 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다짐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뭘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악한 것을 바꿔서 감사로 만드는 일은 더욱 용기가 필요합니다.

감사의 반대말은 불평입니다. 일이 어그러지고 실패해도 찾아보면 그 가운데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일이 잘못되어 손해보고 아무리 속상해도 찾아보면 건질 것이 있습니다.

천만다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 잘못된 것 가운데 좋은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한 가지를 끄집어 낼 줄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나쁜 일을 돌이켜서 좋은 것을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교인을 병문안 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차는 완전히 망가져서 폐차를 시켰답니다.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다가 저를 보더니 반가워했습니다.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아니 뭐가 그리 감사합니까?” “0.1초 차이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만하기가 다행입니다.” 그 분은 이 일을 하나님의 경고를 알고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인들이 남 흉보기를 잘합니다. 여러분 허물을 들추지 마세요.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마세요. 좋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흉보고, 욕하고, 손가락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눈 덩이처럼 커집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면 할수록 화가 줄어듭니다. 돌이키면 회복됩니다.

감사는 현찰입니다.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감사가 더 좋습니다. 사랑한다는 고백이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 고백은 반복될수록 감격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감사 고백은 매번 기쁨을 줍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앞에 포스터에 성경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보통 감사가 아니고, 돌이켜 감사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화를 복으로 바꾸라는 명령입니다. 이 능력이 하나님을 닮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5-6절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고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합니다.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빛의 자녀입니다. 8 절, 9 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는 착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가장 많이 닮아 있습니까? 하나님을 닮아있습니까, 세상을 닮아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 된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닮아 가십시오. 그래서 빛의 자녀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열매를 거두십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이 빛의 열매를 추수하면서 감사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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