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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 사랑을 실천하자 / 눅 10:27-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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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웃 사랑을 실천하자
본문: 눅10:27- 37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나이다"(눅10:27)

중종 때 학자 김정국은 '천금으로 밭은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은 향약문에 보면 이웃은 사촌이 아니라 삼촌반이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초상 같은 애사가 나면 그 이웃들은 심상이라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상주와 똑같은 근신을 했습니다.
이웃간의 담장에 암키와와 수키와로 구멍을 뚫어 놓게 마련인데 이를 '비린 구멍'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별식을 말들었을 때 그것을 주고받기 위한 구멍인 것입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비롯, 멸치까지를 포함한 각종 어육음식을 별식으로 쳤고 어육류를 비린 음식이라 했기에 비린 구멍이란 이름이 생겼을 것입니다. 따뜻하고 진한 정이 오갔던 정신적 구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에 살면서 늘 만나는 이웃이 멀리 떨어져 살면서 뜸하게 만나는 사촌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낫다는 말입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친구와 이웃은 누구보다도 나의 사정을 잘 알고 물심 양면으로 도와주며 힘과 용기를 주어 환난을 이겨내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구 관계, 이웃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잠27:10)
  나에게는 천주교에 다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는 이웃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를 좋아합니다. 나도 몇 가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로 책이나 그림, 도자기 등입니다만,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흐뭇함을 느낍니다. 그의 이런 행동을 보고서 사람들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분은 항상 어떤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자 합니다."라고 칭송합니다.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것 역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찬양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며 수평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는 것 역시 하나의 찬송입니다.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내가 당신을 도와 드릴께요."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아름다운 찬송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잘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선행입니다. 오히려 천주교 신자들이 구제 등 선한 일을 많이 하고, 개신교 교인들은 주일 예배, 부흥회나 기도회 등에는 열심을 내지만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정작 있어야 할 사랑이나 선행이 없으면 그러한 열심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7),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시112:9)하였으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2:16) 하였습니다.
  인형을 좋아하는 제인이라는 소녀의 집에 아저씨 한 분이 놀러오셨습니다. 소녀는 여러 가지 인형들을 내보이며 아저씨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갑자기 묻기를 "제인아! 너 이것들 중에 어떤 인형을 제일 좋아하니?"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러더니 소녀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아저씨, 제가 좋아하는 인형을 보여 드리겠어요. 그러나 그 인형을 보여드릴 때 절대로 웃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셔야 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약속하자, 소녀는 방안에 들어가더니 코는 주저앉고 팔다리는 떨어져 나가고 옷은 다 헤어진 낡은 인형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알겠다. 그러나 한 가지 물어도 괜찮을까? 무엇 때문에 제인은 그 인형을 제일 좋아하지?" 제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사랑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이 소녀 제인의 대답이야말로 여리고 길에서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향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참된 사랑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과 기쁨의 소식을 전합시다. 그들을 찾아보고 돌보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 하면 나보다 더 연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먼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도와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10:24)고 하였고,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잠11:24)하였습니다.
같은 말을 하여도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방하고, 모함하고 더러운 말을 하지말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사랑하고 북돋우어 주는 말을 하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의 입장에 서서 기도해 주고, 나보다 더 연약한 사람과 동참하여 사랑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눅10:27).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이웃)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고 했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이웃)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형제(이웃)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11절에 “하나님이 이같이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보내심)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는 물음은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이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하신 후에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고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자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웃이란 ‘도움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옆집에 산다고 이웃이 아닙니다. 한 교회 다닌다고 무조건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때 참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강도 만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눅10:30) 강도 만난 자란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경제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일시적으로라도 집을 나와 피신해 있는 여성일 수도 있습니다. 보육원과 양로원에 있는 분들일 수도 있습니다. 공산체제하에서 죽지 못해 사는 휴전선 이북의 형제자매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단 마귀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주변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합시다. 예수께서 결론으로 하신 말씀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입니다. 사랑 실천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인처럼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갖가지 도움(육신적, 정신적, 영적)이 필요한 이웃들을 살피면서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큰 기쁨과 무한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강도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실제로 돈을 빼앗기거나 신체적 위해를 직접 당하지 않았더라도 주위의 많은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여덟 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 사람은 강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칼을 들고 위협하는 상황만이 강도를 만나는 상황은 아닙니다. 대구지하철 방화로 인한 참사, 동남아시아에서의 폭탄 테러로 인한 많은 사람의 죽음 등도 강도를 만난 상황입니다. 온갖 질병과 사업의 실패, 부부간의 부정과 성격 차이로 인한 가정의 해체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사람은 강도입니다. 강도는 돈과 귀중품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이 세상은 강도들이 우굴대는 듯이 보입니다. 도둑질하고 사기치고 횡령하고…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힘이 조금 있다고 약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셋째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요즘 상황에서 제사장은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나 장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피해 지나갔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도와주고 살려줄 지도자가 없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위로하고 감싸주고 고쳐줄 지도자가 없습니다.
넷째 사람은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은 성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도 강도 만난 자를 보고 피했습니다. 자기가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섯째 사람은 주막집 주인입니다. 주막집 주인은 구경꾼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고 도움을 줄 생각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돈만을 목적으로 돈을 주면 돌봐주고 돈을 안 주면 베풀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섯째 사람은 율법사입니다. 율법사는 율법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율법에 통달한 자입니다. 아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알지만 행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형식적인 믿음, 외식적인 믿음, 죽은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일곱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주고 이튿날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고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하고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입니까. 잘 알다시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무관심한 세상,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성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숨겨져 있는 마지막 사람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도, 강도에게도, 제사장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예수님을 발견한 성도인 우리는 주변의 강도 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알려줘 강도 만난 이웃의 영과 육을 모두 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강도 만난 이웃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셨고, 죽었다가 다시 사셨습니다. 성도는 함께 사는 세상, 함께 잘 되는 세상, 모두 구원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한 세상이 이뤄집니다. 예수님의 힘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이웃에게 행함과 진실함의 참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내가 당신 앞에 나아갈 때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 주시되,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어떤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친구와 직장의 동료들을 축복하사 나와 그들과의 사이에 어떤 불편한 관계가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이 시간 병상에 있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사, 저들에게 편한 잠자리와 병이 치료되는 밤이 되게 하옵소서. 마음이 어리석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사, 저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게 지켜주옵소서. 가난한 자와 집이 없는 자, 외로운 자, 옥에 갇힌 자, 재난을 당한 자와 억눌려 있는 자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집을 떠나 있는 자들을 복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당신의 사랑에 의지하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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