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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 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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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요한 8:1-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 8:11)

심리요법 학자인 Harris 라는 사람은, 우리 인간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수용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른 네 가지 삶의 모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첫째는, I am not OK, You are not OK. 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냉소적으로 부정하면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인 것입니다. 둘째는, I am not OK, You are OK. 입니다. 이것은 흔히 어린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관이나 주장이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삶의 형태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의 주장에 자신의 것을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I am OK, You are not OK.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주장이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렸다는 형태입니다. 항상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넷째는, I am OK, You are OK. 입니다. 이것은 나와 너를 받아드리고 수용하며 긍정하는 창조적 삶의 형태인 것입니다. Eric Berne는 이 삶의 입장은 감정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니고 깊은 생각과 신앙속에서 실현되는 삶의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성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밤을 지내신 후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셨을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보면 이러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실지 시험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네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간음한 여인, 서기관과 바리새인, 구경꾼 그리고 예수님입니다.

우선 간음한 여인입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간음이란 돌로 쳐서 죽이라고 까지 할 정도로 엄격하게 금한 때입니다. 그럼에도 간음하였다는 것은 이 여인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인의 걸어온 삶의 과정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몸을 팔 수뿐이 없는 절망적 환경의 삶을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삶으로서 마지막 가지고 있는 몸마저 팔아야 하는 창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의 희망을 모두 다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세상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수 없었고 모든 것에 부정적이고 냉소적일 뿐이었습니다. 자기의 가치를 잃어버렸고 이웃과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할 뿐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삶은 I am not OK, You are not OK. 의 삶이었습니다.

반면에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세상은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율법을 자신들의 삶의 방편으로 삼고 그 율법을 무기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방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항상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틀린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잘못된 자로 몰아가기 위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꼼짝 할 수 없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4-5)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 하시면 살인을 부추키는 것이고, 치지 말라 하면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이들의 질문에 대하여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요8:6) 고 기록했습니다. 이들 서기관 과 바리새인들은 I am OK, You are not OK. 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함께 행동한 구경꾼들이 있습니다. 본문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하게 드러난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구경하다가 쉽게 선동되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누가 어떻게 선동하는냐에 따라 쉽게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사람들입니다. 선동되어 행동하고는 행동한 뒤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주관이나 자기 원칙이 없는 것입니다. 여인을 향하여 자기판단 없이 선동에 따라 흥분하여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I am not OK, You are OK.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과 다르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부끄럽고 수치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여인을 앞에 두고, ''돌로칠까요, 말까요?'' 당혹스러운 질문을 들이대며 다그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그리고 그들의 선동에 따라 돌을 던지려는 무리들을 향해, 이들의 흥분된 감정, 격양된 분노, 편견과 고집스런 증오의 감정을 가라앉히도록 몸을 굽혀 땅에 글씨를 쓰셨던 것입니다.

조용해지자 일어나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표준새번역)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고 글씨를 쓰시면서 이 질문을 그들의 양심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흩어져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I am OK, You are OK. 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자기이해와 함께 자기자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I am OK. 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본문말씀 이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2)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 (요8:14)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8:16)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8:23)

또한 예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납하시고 용서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시고 용납하여 주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하여 You are OK.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I am OK, You are OK. 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돌로 칠까요?" 라고 정죄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이들의 선동에 따라 돌을 들고 던지려던 무리들,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움을 깨닫고 돌아섰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용납됨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처럼 자기이해의 자아확립과 함께 용납할 수 있는 용서와 사랑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I am OK, You are OK.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I am OK, You are OK.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I am OK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이웃을 향해서도 You are OK.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지금은 고인이 되신 형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저의 형님은 개성이 강하고 무척이나 똑똑한 분이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6년간 우등생에다 학교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경기도 서해안에서 목회 하실 때, 그곳에 교회건축과 함께 중학교를 설립하셔서 존경받는 목회를 하셨습니다. 이 때, 저의 형님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커서 꼭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감리교 감독의 특별파송을 받아 문제 있는 오산교회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 교회는 내분으로 치열한 분쟁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 도착하는 날부터 내분의 혼란에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삿짐을 내릴 때, 이삿짐을 내리는 사람들과 이삿짐을 다시 싣는 사람으로 혼란이 일어났고, 따귀 때리는 부대까지 동원되어 이삿짐을 내리는 교인들의 따귀를 때리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 때부터 4년간 저의 가족은 불안 속에 생활해야 했습니다. 깡패들이 동원하여 주택을 습격하고 예배 중에 돌이 날아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의 형님은 절대로 목사 짓은 하지 않겠다며 반항아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산을 떠날 때, 저의 형님은 자신은 이다음에 전투조종사가 되어 원자폭탄을 싣고 와서 그곳에 떨어뜨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산을 떠나 새로운 교회에 부임한지 일주일만에 저의 가족이 살고 있는 주택은 화재를 당해 건물전체가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형님은 하나님은 없다며 신앙생활에 대하여 부정적이며 냉소적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추운 겨울 임시 가건물에서 살면서 추위와 가난 속에 지내야 했습니다. 교회건축 완공과 주택건축을 위하여 고생하는 부보님과 잘먹지 못하는 동생들을 보면서 저의 형님은 모든 것을 적대적인 대상으로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건축을 마무리하고 저의 아버님은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교회로 부임하셨습니다. 5.16 혁명직후인 그 때에 동해시 전역의 공장들은 가동이 멈춰졌고, 지역경제가 어려웠기에 우리가정은 교인들과 함께 그 가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죽으로 쑥으로 끼니를 이을 때가 다반사였고, 굶을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 때 저의 형님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사회를 증오하며, 현실에 대하여 불평 불만하던 중, 한일 회담 반대 데모를 주동하여 경찰소에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형님의 마음과 인격은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매사에 모든 것이 틀려먹었다는 것입니다.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저의 형님은 때로는 잔인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항상 자기보다 강한 학생을 보면 싸움을 걸어 무릎을 꿇게 만들었습니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서슴없이 깍아 내렸습니다. 이러한 중에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생이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충청북도 금가면 하담리 조그마한 농촌 미자립교회에 새롭게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학비를 뒷받침 할 수 없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가 이모님이 공부시켜 주시기로 하여 서울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와보니 변화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무서운 형님이 달라진 것입니다. 부정적이며 도전적이고 파괴적이며 냉소적인 저의 형님이 인자하고 따뜻하며 이해심 많은 원만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병든 인격과 마음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격과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형님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헌신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 영하의 새벽에 교회 종을 치고, 새벽기도자리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교회와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금식하며 밤새워 기도하는 신령한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50여명의 시골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눈이 빛나는 살아있는 지도자로 변한 것입니다.
형님은 I am OK, You are OK. 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저의 형님 안에 계셔서 저의 형님을 I am OK, You are OK 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틀려먹었다고 돌을 던지려는 저의 형님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면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 할 자격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보게된 것입니다. 이 죄가 자신을 증오하게 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심판하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정하게 하는 교만의 쇠사슬에 묶어두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You are OK 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하심의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7)고 했는데, 저희 형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새것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 저의 형님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You are OK. 하시는 용서와 용납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I am OK 할 수 있는 형님이 된 것입니다. I am OK 할 수 있는 형님이 되었기에 예수님처럼 You are OK. 할 수 있는 형님이 된 것입니다. 이 형님으로 인해 잠들어 있던 농촌교회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 교회는 부흥과 함께 급성장 하여 그 지방에서 농촌교회로는 가장 큰 교회가 되었고, 신앙의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처럼 모든 것을 부정하며, 희망도 용기도 없이 I am not OK, You are not OK.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독선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세우며, 남을 정죄 하고 판단하면서 자신만이 옳다면서 ''돌로 칠까요'' 하는 I am OK, You are not OK.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구경꾼들처럼 시대의 사조나 풍조에 쉽게 동화되며 죄악의 선동에 오염되며, 내가 알고 있다는 정보나 지식이 대단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그것의 노예가 되어 그것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I am not OK, You are OK.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I am OK, You are OK 하시는 주인이 되게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그리고 구경꾼같은 우리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죄를 깨닫도록 하십니다. 죄의 지배아래 살고있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과 같은 우리에게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용서와 용납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새로와 지도록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하시면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럼으로, 예수님처럼 I am OK, You are OK. 의 삶을 이루는 축복자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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