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엇으로 보답할꼬 / 시 116:12-14

  • 잡초 잡초
  • 290
  • 0

첨부 1



제목 : 무엇으로 보답할꼬
본문 : 시 116:12-14

  인도에서 활동하던 한 선교사가 오랫동안 선교를 하다가 본국에 귀국하여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찬송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인도의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 같은데, 제가 인도에서 사업을 수년간 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교사는 말하기를,"한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혹시 선생님은 인도에서 호랑이를 보셨습니까?”  "그럼요. 제가 호랑이 사냥을 많이 해서 저의 집에도 호랑이 가죽이 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호랑이를 보기도 하고 잡기도 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인도에서 수십 년을 사는 동안 호랑이를 한 마리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어느 것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 보이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안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보십니까? 불평하는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불평으로 가득 찬 세상이 보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눈으로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감사할 것뿐입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기 때문입니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보면 감사를 가르칠 때는 음식과 관련짓는답니다. 사람이 빵을 먹기까지는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서 가꾸고 거둬들여 타작을 하고,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고 빵을 만드는 과정만 무려 15단계를 거친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빵집에서 빵을 사면 즉석에서 먹을 수가 있습니다. 15단계의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먹기만 하면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대신 그 많은 일을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식사할 때마다 감사기도를 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기까지 많은 일을 해준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문의 다윗은 감사의 사람이요, 받은 은혜를 보답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이라는 엄청난 은혜를 선물로 받고 구원의 은총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은혜를 어떤 감사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크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과연 우리는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까?

  첫째 믿음의 눈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와이트 목사님은 강단에 설 때마다 항상 감사기도로 시작했습니다. 많은 경우 날씨와 관련하여 감사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어느 주일은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성도들은 "우리 목사님이 오늘은 어떻게 감사기도를 하실까?" 궁금해하며 목사님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드디어 목사님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오! 사랑의 하나님, 다른 날들은 오늘처럼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가 아닌 것을 감사 드립니다." 감사는 체질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감사를 하든지 습관적으로 불평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더 큰 은혜를 가져옵니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매사의 모든 것을 감사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스펙포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뻐하며 찬송하며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변호사이며 법의학 교수였던 그는 무디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시카고 대화재 때 재산을 다 날리고 부인과 네자녀를 유럽으로 보내는데, 배의 충돌로 자녀가 모두 죽게 됩니다. 살아남은 부인을 만나러 가면서, 그는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부르면서 감사하였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맹인으로 한평생을 살면서 불평하여야 할 사람이었는데, 그는 유명한 찬송 시인이었습니다. 204장, 446장 등 천 여편이 넘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로 볼 수 있다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안다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눈이 감사를 낳기 때문입니다. 불평할 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불평하지 않도록 저에게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입술에서, 내 삶 속에서, 내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셔서 언제나 감사가 넘쳐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통하여 감사의 눈을 소유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감사를 회복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더하여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미우라 아야꼬 여사, 그녀의 반평생은 병주머니의 반평생이었습니다.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띠 모양 습진, 파킨스병, 그리고 암 등 갖가지 질병 속에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 속에서 그는 위대한 작품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이 여인이 고통 속에서 암송한 시가 하나 있는데 "아프지 않으면" 이라는 제목의 시였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뵈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다. 아아 ,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그녀는 아픔이 있기 때문에 기도가 있었고, 노래가 있었고, 신앙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아픔 속에서 영광스런 작품들이 나왔고 그 작품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야꼬 여사가 누워 있는 병실에는 다른 환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야꼬 여사는 아픔 속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을까? " 그녀는 기도하는 가운데 " 비록 나는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기쁨을 보여 드려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가 오면 부드럽게 웃었고,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녀는 주님의 절대적 은총을 알았기에 병주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 있을 때 절대적 은총과 축복을 압니다. 그래서 환경을 초월하는 절대적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절대적 감사이어야 합니다. 소유의 다소에 따라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고통의 유무에 따라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고통과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하는 것이 신앙인의 감사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하는 상대적 감사가 아닙니다. 소말리아나 방글라데시의 나라를 보면서 우리는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려 죽지 않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하면 그 감사는 이기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난하게 되면 그 때가서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는 어떤 상황에서 감사를 하였습니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워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직선적 관계 속에서 나온 감사였습니다. 사람을 보고 비교하면서 내가 좀 앞서가거나 우위에 있어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환경을 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의 직선적 관계에서 언제나 절대적 감사를 믿음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생명이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주부가 남편을 팔겠다고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주말마다 아내를 돌보지 않고 사냥이나 골프를 치러가기에 남편 없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느니 아예 팔아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광고의 내용을 보면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골프채와 사냥도구, 그리고 개 한 마리를 덤으로 줌"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60여통의 전화가 왔는데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희망자는 없고 모두 여자를 일깨워주는 소리들이었답니다.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라. 남편이 바람피우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라. 남편이 죽거나 헤어진 다음에 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등의 충고였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진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형편과 상황가운데서 감사거리를 찾아서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생명에 대한 감사는 모든 감사의 기본입니다. 오늘도 내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바로아는 사람입니다.

  새문안교회를 담임하셨던 김동익 목사님은 암에 걸려 큰 수술을 받고 3년여 투병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분이 투병생활 하시면서 쓰신 설교에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수술 후에 아슬아슬한 순간을 느끼면서 아침에 일어나 먼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밖에 나오지 아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내 생명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가, 오늘도 병들거나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자녀가 생명이 살아있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좀 못해도 좋습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습니다. 큰 권세를 잡지 못했어도 좋습니다. 효도를 덜 해도 좋습니다. 그 생명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감사를 택하든 불평을 택하든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릅니다. 동일한 환경이지만 감사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삶은 풍요로워지지만, 불평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라면,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아주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감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기분 좋게 만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감사는 기도가 응답되게 만듭니다. 감사는 기도의 날개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은혜의 보답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은혜를 화로 갚지는 않았습니까? 은혜를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이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무엇으로 보답할꼬? 무엇으로 감사할꼬? 아름다운 고민과 기도가 있는 감사의 한 주간을 사심으로 풍성한 추수감사절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