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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잃지 말자 (눅 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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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예수를 잃지 말자
† 성경본문 :누가복음 2:41~51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나누어 져서는 안 되는 불가분리의 인간관계가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 또는 친구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모두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써 우리가 쉽게 이해하거나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보이지 아니하는 관계이지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입니다. 요한복음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진액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또한 무성한 잎과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야 참 생명을 공급받으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행 17:25). 또 그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행 17:2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그것이 불행인줄 모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을 멀리한 증거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불행을 치유해 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요 3:16). 예수를 믿고 그 마음 속에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요 1:12). 그러나 예수가 없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게 되는 특권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예수를 잃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가 열두 살 된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며칠 동안 고생하던 끝에 예수님을 만나고 같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예수 없이 길을 가던 그들이 늦게나마 예수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가 있으므로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Ⅰ. 예수를 잃은 경위

간혹 텔레비전에서 잃은 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을 보게됩니다. 오랜 세월동안 헤어진 가족들이 한 맺힌 사연을 가지고 목메이게 찾는 장면을 볼 때마다 모든 사람이 아픈 마음을 공감하곤 합니다.
그런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전쟁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지중에 헤어져서 오래도록 찾지 못한 채 안타까워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계획적으로 헤어지고자 시도하지 않았고 여느 때처럼 별일 없이 지낼 것으로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잠깐 헤어진 것이 오랜 생이별로 굳혀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잃은 경위도 그와 비슷합니다. 본문 말씀 41-43에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고 하였습니다.

(1)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최대 명절입니다. 이 절기가 되면 세계도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그 도성은 사람들로 붐비며 매우 복잡해집니다(요 2:13-16). 짧은 기간에 지정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절기 행사에 참여하다보니 예수님을 챙길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무슨 일에 쫓기는지 매우 분주하고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상일에 바쁘기도 하지만 대부분 육신의 욕망을 위하는 일에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소중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에는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다”고 하였습니다. 요한1서 2:16-17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방심하다가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절기 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셨는데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부모들이 예수를 챙겨야 될 그들의 임무를 망각한 채 방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임무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나시기 전 마리아는 임신한 몸으로 나사렛에서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가게되었고 그곳의 어느 집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때부터 요셉과 마리아는 국경을 넘어 피난길에 올랐을 때나 나사렛 마을에 돌아왔을 때도 예수님을 챙기며 돌보는 일에 심혈을 쏟았습니다. 이처럼 평소에 잘하던 사람도 한순간 소홀히 여기다가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Ⅱ. 예수를 잃은 결과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예수가 저희 일행 중에 없는 것을 알고는 매우 당황해 하며 찾았습니다. 그것도 하룻길을 간 다음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눈앞이 캄캄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서 성전에 계시는 예수를 발견하고는 기쁨과 놀라움의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48절에 보면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하였습니다.

(1) 근심에 쌓였습니다.

예수를 잃은 그 부모는 당장 아이가 없어졌다는 충격과 함께 그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 나이 열두 살이었으니 사고를 만난 것은 아닌지, 누구에게 붙잡혀 갔거나 감금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부모를 잃고 얼마나 당황하며 울고 있는지, 온갖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마음에 안정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 근심을 하였다는 것은 평안이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곧 예수를 잃은 사람은 그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 그들은 왔던 그 길로 가고 있고, 주위에 친지들과 이웃이 같이 있으며, 어느 것도 그들에게 근심을 줄만한 요소가 없었으나 오직 예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몸도 건강하고 가정도 행복해 보이고 사업도 잘하고 친구들도 많이 있고 세상살이에 아무런 불편이 없을 것 같은데, 그 마음 속에는 전혀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가 아니면 그 어떤 것으로도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이 참 평안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는 예수님의 이름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사 9:6).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요 14:27).

(2) 고통이 따랐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육체의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솔로몬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7:22). 사람이 자기 마음 속에 여러 가지 불안과 공포를 지니고 있으면 얼마 못 가서 육신의 건강도 잃게 되며 결국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상실하고 맙니다.

여기 요셉과 마리아는 아이 예수가 없어졌다는 충격으로 큰 근심에 짓눌리면서 정신 없이 예수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밥맛을 잃었을 것이고 편한 잠을 잘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를 만날 때까지 그들은 죽을 맛이 되어 허둥대고 다녔을 것이니 그 고통이 오죽 하였겠습니까? 예수를 잃을 때는 하루 길이었다고 했으나 찾는데는 사흘 길이라고 하였으니 몇 배나 더 긴 시간에 걸쳐 많은 고생을 해야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그들은 예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를 찾고 예수와 함께 할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오는 법입니다.


Ⅲ. 예수를 찾은 경위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들과 같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허겁지겁 찾으며 돌아다녔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수소문 해 봤을 것이고 또 혹시 도중에 같은 또래 아이들과 놀고 있을 만한 곳이 있는가 찾아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었고 드디어 성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1) 아는 자 중에 찾았으나 못 만났습니다.

44절에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당장 예수님을 찾아야 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찾아야 만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친족과 아는 사람들 사이를 들락거리며 그들 속에 있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순전히 자기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서 취하여진 행동입니다. 평소 예수님과 헤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또 예루살렘에 상경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미리 예수님과 약속이 되어 있었더라면 쉽게 찾았겠지만 예상 밖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막막한 지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저들이 평소 예수님의 의중을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의 생각에 따라 판단을 내립니다. 또 친족과 아는 사람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부분의 인간 종교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계시 종교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의중을 먼저 분별하게 되므로 정확하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그 부모가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하였습니다(48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49절).
성전을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를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로 나아와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을 두고 자기가 아는 곳을 먼저 갑니다. 자기의 지식에 따라 인맥을 동원하고 권력에 의존하고 재물이나 명예나 또는 예술과 문화와 같은 세속적이고 인간적인데서 예수를 만나려고 애를 씁니다. 예수의 부모는 자기 아는데서 만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오면 됩니다. 사도행전 17:27에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고 하였습니다.

(3) 말씀 중에서 만났습니다.

본문 말씀 46-47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들’은 율법에 정통한 학자들을 뜻합니다. 유대인의 랍비들은 오랜 기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나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나이 어린 예수님께서 그들과 마주 앉아 율법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도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말씀의 당사자요 주인공임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4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나와서 성경 말씀을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요 5:39).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를 잃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최상의 복이 됩니다. 본문 말씀 51절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가장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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