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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의 탁월성을 배우라 (창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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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7장 1절
*제목:“노아의 탁월성을 배우라”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서론)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고 있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유명한 사람도 아니요 유능한 사람도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간절히 찾기를 원하시는 사람은 단 한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미천하고 낮은 계급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의로운 사람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만 받을 수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돌보시고 크신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온 세상이 다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그 단 한명의 의로운 사람은 이 땅에서 얼마든지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 34편 15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의인을 바라보시고 그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잠언 15장 3절에서도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어디에 있는가?’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도 의인 열명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의인 열명을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만 그 성은 유황불비를 맞아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오늘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가운데에 배우고 본받아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의로운 사람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노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담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노아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후손은 노아를 제외하고는 홍수의 심판 때에 모두 다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유일한 생존자인 노아와 그 가족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사람들이 출생하였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손이요 동시에 노아의 후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인 노아의 믿음을 이 시간에 확실하게 배워야만 합니다. 먼저 노아의 성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노아의 성품

  노아의 성품은 탁월하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7장 1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향하여 “---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창세기 6장 8-11절의 말씀을 보더라도 노아의 의로움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일들을 행하고 여러 가지 분야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노아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품을 간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창세기 6장 8절에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서 ‘은혜’라는 단어가 맨 처음으로 쓰인 인물이 바로 노아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 이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단어가 쓰인 적인 없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그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 은혜가 원인이 되어서 외부적으로 의로움이 표출된 사람이 바로 노아라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살았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의인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오직 노아 한 사람만이 의인이라는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노아 한 사람을 귀중하게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음속에 날마다 은혜를 품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됩니다. 마음속에 은혜가 있는 사람은 단순한 말 한마디를 하더라고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사람은 얼굴 표정을 지어도 은혜가 넘치는 밝은 표정이 나옵니다. 마음속에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고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자연스럽게 표출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에게 있어서 소망의 최고봉은 노아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자’인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창세기 6장 9절을 보시면 “---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하는 영어의 단어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righteous man’요 또 다른 하나는 ‘just man’입니다. ‘righteous man’이라고 할 때에는 그 용도가 신과의 관계를 나타낼 때에 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righteous man’이라고 씁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용어는 ‘just’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즉 노아는 just man’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당세에 완전한 자라’는 용어는, 영어로 ‘up right’입니다. 이 의미는 노아는 올바른 사람이요 비뚤어진 구석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항상 공정하게 대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노아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마음이 구부러지고 왜곡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항상 마음의 심
지가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대인관계가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노아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았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노아의 대신 관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의 후반부에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된 부분이 나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는 하나님과의 대신관계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는 먼저 위로는 대신관계도 중요하고 또한 옆으로는 대인관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올바르고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인 창세기 7장 1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노아를 향하여 “---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증거하였으며, 창세기 6장 9절에서도 “노아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노아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그 시대는 대단히 악한 시대였습니다. 노아는 아담의 10대 후손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번창해 오면서 초창기의 족장들이 수백 년을 살면서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심지어 900년 이상을 살면서 자녀들을 많이 출산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엄청난 아담의 후손들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의 후손들의 삶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였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은 그 시대의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아담이 살았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악한 생각들로 팽배해져 있었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거룩과 정직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온통 악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11절에서도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온 땅에 충만한지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악한 시대에 의인이라고는 노아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 악한 자들이었지만 오직 노아만은 의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노아의 삶이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진리는 노아처럼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통하여 증거되는 것입니다. 

  4세기 초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던 이단자 아리우스를 대항해서 삼위일체를 주장하면서 담대히 싸웠던 진리의 파수꾼인 ‘아다나시오스’는 외로운 투쟁을 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구원관에 대항해서 홀로 일어난 ‘마르틴 루터’는 참으로 위험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메리 여왕의 독재와 카톨릭의 비뚤어진 신학에 대항하여 홀로 투쟁하였던 스코틀랜드의 ‘잔 녹스’도 실로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벤허’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실제로 노예가 되어서 노예선의 노를 수년간 젓
는 엄청난 시련과 고생을 당하였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아다나시오나 루터나 잔 녹스를 향해서 ‘당신이 홀로 어리석게도 온 세상을 대적하고 있다’라고 멸시하며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억 만명이 모여 있을지라도 비진리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절대로 임하지 않습니다. 비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리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은 비록 단 한명이라고 할지라도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의인에게로만 향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노아처럼 의인의 삶을 살고 계신지요?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에 오직 혼자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 가족의 멸시와 핍박을 당하시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노아처럼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눈은 노아처럼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늘 바라보고 계신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핍박과 유혹이 크다고 할지라도 항상 의로운 자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한 인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담을 쌓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시락을 먹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기도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도시락을 펼치고 밥을 먹었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놀리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공사장을 지나가던 개가 몰래 와서 기도하던 틈을 타서 그만 도시락을 훔쳐 달아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합니다. 도시락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면서 놀려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때에 기도를 마친 이 신실한 크리스천은 조용히 일어나서 자신의 도시락을 찾기 위해서 개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더
크게 웃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그만 담장이 무너져 비웃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쌓던 담장 밑에 깔려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노아도 이처럼 그 시대에 홀로 외롭게 하나님을 섬기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의 심판이 전 인류를 심판할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그와 그의 가족들만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우리 신앙인의 삶이 외롭다고 할지라도 선한 믿음
의 삶을 살아가기기 매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노아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넷째로,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법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가정이라는 법정이 있습니다. 가정의 가족들이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밖에서 아무리 훌륭한 소리를 듣는다고 할지라도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우리 가정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
어!”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응, 우리 아내도 교회를 다니고, 자녀들도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나만 교회를 안다니고 있지! 그래서 아내와 자녀들이 내가 교회를 안 다닌다고 해서 왕따를 시키고 있어!” 가정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도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일하고 있는 직장과 속한 공동체에서도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공동체 법정이라고 부릅니다. 공동체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잘 지내고 인정을 받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주위의 사람들이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심판이라는 법정도 있습니다. 과거의 업적과 행실에 대하여 역사의 심판은 냉철한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원수들도 우리들을 심판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향해서도 수많은 원수들이 신랄한 비판과 모욕을 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향해서도 원수들의 비판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의 법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양심이라는 법정도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다 속인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만큼은 이 세상이 그 누구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인간적인 법정과 양심의 법정에서도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법정을 다 통과하고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과 존경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더 엄한 법정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실패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법정은 바로 하나님의 법정입니다.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의로운 사람이다’라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소망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이 엄한 하나님의 법정에서 너끈히 통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합격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의문은 바로 ‘노아도 아담의 후손
이 아닌가? 노아도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은 후손이 아닌가? 노아는 바로 아담의 10대 후손인데 그렇다면 노아도 아담처럼 죄성이 있는 죄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노아도 죄인입니다. 노아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런 죄인인 노아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정을 통과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노아에게도 많은 허물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9장 2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자신이 농사를 지어서 얻은 포도를 갖고서 포도주를 만들어 먹고 마신 노아는 지금 술에 취하여 벌거벗은 상태로 자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추한 모습입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던 의인 노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노아의 모습을 보고 비웃었던 아들 함이 그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버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바로 노아의 실수요 흠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도 우리와 똑같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허물 많은 인간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노아는 가정의 법정조차도 통과하기 어려운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노아가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은 이유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노아를 향해서 당대에 있어서 홀로 의로운 사람이요 완전한 자라고 하는 칭찬과 인정을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노아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로, 노아는 먼저 희생제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8장 20절을 보시면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한 일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일입니다. 노아는 농산물로 제사를 드린 가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짐승을 잡고 피로써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피가 없이는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죄 많은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피가 있는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었습니다. 구약은 예표
요 신약은 실체입니다. 여기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노아의 제사에 담겨져 있는 믿음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당대에 모든 사람들이 피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노아만이 피를 들고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피의 희생만이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을 의롭게 한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아의 믿음이 그를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하는 칭찬을 듣게 만들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사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죄를 갖고서 천국으로 들어갈 생각은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전부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확실하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노아는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7장 10절을 보시면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노아는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가 이 땅에 내리기 전 아주 날씨가 맑고 화창할 때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비가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비가 곧 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노아의 담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면서 놀렸을 것입니다. 나이 드신 노인네가 망령이 나서 이 맑고 화창한 날씨에 가족들을 데리고 방주에 들어가서 힘들게 생고생을 한다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 하나님밖에 없습니까?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공기와 바람과 빛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믿어야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셋째로,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과 7장 5절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노아에게는 자신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제일 중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준행하였습니다. 그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노아는 살았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여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아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그 믿음을 본받는 살아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피에 대한 믿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노아는 그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야고보식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행위의 열매로 나타나는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 노아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했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선한 행위가 그를 의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직 노아의 참된 믿음이 그를 의롭게 한 줄로 믿습니다. 

 
3. 노아의 의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

  그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의에 대하여 무슨 상급을 주셨을까요? 

  첫째로, 노아는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온 세상이 홍수의 심판 아래에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과 기식이 있는 것들이 다 물속에 잠겨버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의 부인과 세 아들과 세 자부들도 구원의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때에 노아의 자부들이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
을까요? 틀림없이 홍수의 심판으로 인하여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니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에게 시집을 온 결과 그들은 모두 구원을 얻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정을 구원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9장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새로운 인류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노아는 자신도 복을 받고 아들들도 복을 받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노아는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정의 축복과 자녀의 축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축복은 히브리서 11장 7절에 기록된 말씀과도 같이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권을 노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권한이 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후사’는 ‘상속자’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을 수밖에 없는 상속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노아와 그 가족 전체는 영육간의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혼도 복을 받았고 육신도 복을 누렸습니다. 그 축복이 당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상속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바라고 믿고 원하기는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축복을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많은 죄로 말미암아 고민하며 갈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노아와도 같이 피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으시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영원한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악이 관영하는 이 세상의 헛된 가르침과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세상풍파에 휩쓸려 살지 마십시오! 죽은 물고기는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떠다닙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아무리 세찬 물결이라고 할지라고 거꾸로 올라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과속으로 경찰관에게 걸려서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판관이 가만히 보니까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미국의 대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재판관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대신해서 과속운전에 대한 벌금도 물어주고 거기에 덤으로 직접 목사님을 모시고 나가서 근사한 식사까지 대접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구원의 은총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갖가지 은사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죄악이 많은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노아처럼 우리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시면 방주를 짓고, 방주로 들어가라 명하시면 방주로 들어가고,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나오는 순종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삶을 우리가 살아갈 때에 자신은 물론이요 우리의 가정과 가족과 후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항상 쏟아 부어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노아처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확실히 얻어서 영육간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
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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