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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을 위한 4대 신앙원리 (삼하 2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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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위한 4대 신앙원리
사무엘하 24장 17-25절


<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

작년에 미국에서 '쉐클턴(Shackleton)이란 제목의 TV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영화는 영하 50도에서 남극 대륙 횡단을 시도했던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쉐클턴과 27명의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들은 큰 꿈을 가지고 남극에 도전했지만 가는 도중에 엄청난 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배가 웨델 해의 두꺼운 얼음 덩어리에 열 달 동안 갇힌 것입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엘리펀트(Elephant) 섬에 도착했지만 추위와 배고픔과 극도의 고통 때문에 살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쉐클턴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죽어도 대원들은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극 저편의 고래잡이 캠프로 걸어가서 구조를 요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길은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바다를 걸어서 횡단하고 최종적으로는 3일간의 남극 고봉을 등정해 넘어가야 하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쉐클턴은 2명의 대원을 데리고 그 죽음의 길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남은 대원들은 얼음 바위 사이에 만든 조그만 오두막에서 몇 달 동안 쉐클턴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을 시찰하던 한 사람이 구원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대원들은 "배가 왔다!"고 소리치며 바닷가로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쉐클턴이 죽음의 길을 뚫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세계 탐험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죽을 것 같아도 사는 길은 다 있습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아도 풀리는 길은 다 있습니다. 시험지가 있으면 반드시 답안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그냥 열리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헌신해야 합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위해 죽기로 각오해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에 말씀을 준비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 한 사람이 잘못해서 이스라엘에 큰 재앙이 임하고, 다시 다윗 한 사람이 잘해서 그 재앙이 그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떻게 했기에 재앙이 오고, 어떻게 했기에 재앙이 그치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 시간에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항상 돌아볼 신앙의 4대 기초 원리 >

다윗 왕의 말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다윗은 자신의 왕국과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싶어 요압 장군에게 인구조사를 시켰습니다. 인구조사를 했다는 것은 싸울 수 있는 군사의 수를 조사했다는 말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적인 태도이고 교만한 태도입니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은 인구조사를 말렸지만 다윗은 인구조사를 강행시켰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군사 수가 80만 명이고, 유다의 군사 수가 50만 명으로, 도합 130만 명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9절).

그 보고를 듣자 다윗에게 기쁨이 찾아왔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책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미련하게 행동했습니다(10절)."

그러나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특히 교만으로 인한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대가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탕감해주시느냐?"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죄가 구원을 잃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어떤 모양이로든 반드시 값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헌신이 구원을 얻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헌신은 어떤 모양이로든 반드시 축복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다윗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벌을 내리십니까? 갓 선지자를 보내어 3가지 재앙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재앙은 7년 기근, 둘째 재앙은 적에 쫓겨 3개월 도망 다니는 벌, 셋째 재앙은 3일 전염병이 도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셋째 재앙인 전염병의 재앙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3일 동안 7만 명이 죽는 대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허락하시지만 반드시 그 재앙을 그칠 방법도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4장 17-25절 말씀을 보면 재앙을 그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신앙원리 4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회개하는 삶

첫째, 오늘 본문은 회개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백성들이 엄청나게 죽어 가는 것을 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백성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차라리 저와 저의 집을 치소서!" 이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진짜 죽이십니까? 아닙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면 오히려 사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에 다윗은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번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회개를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이 회개할 줄 아는 마음이 다윗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회개할 줄 아는 장점은 우리의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도 남을만한 가장 위대한 장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른 장점은 없이도 이 장점만은 있어야 합니다.

살면서 "죄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회개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진실한 회개는 어떤 문제도 풀게 하고, 어떤 재앙도 물러가게 합니다. 결국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진심으로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말씀 듣고 귀가 즐거웠던 것이 은혜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나를 무너뜨리고, 나의 부족함과 허물을 깨달은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저는 설교를 어렵게 준비하는 편입니다. 월요일부터 자료를 준비하고, 목요일부터 초고를 씁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까지 초고를 마무리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다듬는데, 그때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저에게 찔림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말씀을 과연 전해야 되나?"하고 씨름하게 됩니다.

그렇게 씨름하며 기도하다 보면 항상 제가 먼저 은혜를 받습니다. 다른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저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하나님!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마음에 지극한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아픔과 인내의 순간들이 있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속이 상하지 않고 목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말씀 앞에 바로 서서 회개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가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타나는 한 가지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누가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까?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얻습니다. 진리는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비로소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가 죽고 나면 만사가 편안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운명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분은 찬송 중에 돌아가시고, 어떤 분은 신앙적 유언을 남기고 편안하게 돌아가십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한이 맺힌 상태로 죽고, 어떤 분은 "무섭다!"고 하고 야단을 치다가 죽습니다. 그러다가 숨이 넘어가면 금방 조용하게 됩니다. 그후에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대접을 해도, 땅에 묻고 불로 태워도 전혀 말이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문제는 내가 죽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죽이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탈무드에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속이 그토록 상합니까?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속이 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문제와 재앙의 사슬에서 풀리고, 무엇보다 그 마음속에 지극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예배하는 삶

둘째, 오늘 본문은 예배하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갓 선지자는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라고 합니다. 그 말대로 다윗은 아라우나 타작 마당에 가서 단을 쌓았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25절 말씀을 보면 바로 그때 재앙이 그쳤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배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이 한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이 우리의 가정과 자녀를 지켜주고, 우리의 꿈과 비전과 영혼을 지켜줍니다. 그러므로 이 한 시간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렇게 축복하셨던 이유는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부터 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을 반드시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축복을 놓칩니까? 진실한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예배는 주일 한 시간의 예배가 삶에서 변화로 나타나는 예배입니다. 그런 변화가 없다면 예배의 축복과 은혜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은 예배 중에 뜨겁게 기도하고, 둔 손을 들어 찬양하고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삶의 변화와 마음에 평강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것은 감정 표출이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감정이 어떤 때에는 지나치게 업(up)하고, 어떤 때에는 지나치게 다운(down)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사울은 눈물을 흘리며 "내 아들 다윗아! 나는 너를 죽이려고 하는데, 너는 나를 살려주는구나!" 하고 말합니다. 언뜻 보면 회개한 것 같지만 며칠 후에는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성경은 "악신이 내렸다!"고 표현합니다.

예배 중에 생긴 선한 감정이 선한 의지로 변화되고 선한 삶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사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마음과 삶에 변화가 있는 진실한 예배는 재앙과 악신을 물리치는 가장 위대한 방어벽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배만큼 귀한 축복은 없습니다. 예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되던 것도 예배를 아는 사람에게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고, 예배하는 자에게는 실패와 허물조차 영혼의 성숙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날수록 더욱 예배에 힘쓰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문제를 통해서 더 큰 축복과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새 믿음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되고, 한 차원 더 높은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헌신하는 삶

셋째, 오늘 본문은 헌신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다윗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아라우나에게 가자 아라우나는 자기의 타작 마당과 번제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그냥 쓰시라고 왕에게 기쁘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24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값 없이는 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아라우나에게 은 50 세겔을 주고 타작 마당과 소를 사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을 드려야 진정한 예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드릴 줄 아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드리기를 힘쓰면 내 곡간이 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채워주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우리가 자발적으로 대가를 치를 줄 아는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타율적인 방법으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상황을 막아주실 것입니다.

재앙은 타율적인 상황에서 주어지는 자기 정화와 성숙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자발적인 자기 정화와 성숙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쁘게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처럼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나가면 앞으로 재앙 받을 일보다는 축복 받을 일만이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쁘게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당장에는 눈앞에 큰 유익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재앙을 막는 가장 유용한 대비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대가를 치르겠다는 헌신의 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선교에도 더욱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 교회에 귀한 선교사님들이 오십니다. 이라크로 가신 김사무엘 선교사님, 몽고의 임준호 선교사님과 김재호 선교사님, 대만의 황수 선교사님 및 비전 트립에 동행하신 8분의 목사님이 방문해서 함께 선교전략회의를 합니다. 선교사님들을 마음속으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기쁘게 식사 초청도 해주시고, 선교위원들은 정성스럽게 선물을 마련해주시고, 후원도 힘써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이번에는 임준호 선교사님이 추진하는 성경학교 건축비용 중의 부족분 3만 불의 조달을 위해 힘써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대가를 치르는 신앙을 가지고 헌신해야 하늘 나라는 확장되고 동시의 우리의 영혼도 제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배에 물이 차오르면 그 물을 퍼내야 배가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우리 안에 저절로 차오르는 이기적인 자아의 욕구를 비워내야 진실한 축복의 여정은 계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가장 축복하신 때는 왕이 되고 1천 번제를 드렸을 때입니다. 그렇게 1천 번제를 드렸다면 시간과 정성과 물질도 엄청나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천 번제를 드린 후에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지혜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이 그렇게 대가를 치르고 산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시은소(은혜가 베풀어지는 장소)가 되었고,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 터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쁘게 헌신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우리의 가정과 일터 및 자녀의 앞날에 펼쳐질 공터까지 가장 복되고 영원히 기억될 시은소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4. 우선순위의 삶

넷째, 오늘 본문은 우선순위의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번제뿐만 아니라 화목제도 드린 것을 봅니다. 화목제를 드렸다는 말은 오늘날로 말하면 "이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의 모든 필요도 채워주실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어려 가지 시급하게 해야 할 일도 있지만 그 시급한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가장 시급한 일로 보는 사람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첫 시간을 드리기로 다짐하고 힘써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복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기도를 잘 못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그 정성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도 가장 첫 번째 기도제목을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둔 기도제목으로 삼아보십시오. 사실 그런 기도가 진짜 기도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기도를 계속 하다 보면 어느새 기도 제목들이 바뀐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 기도할 때에는 열심히 "복을 달라! 문제를 풀어 달라!"고 하지만 계속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관심을 더 크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처럼 기도에는 내 사정을 아뢰는 것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사정을 듣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문제와 축복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우리의 사정을 살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환경이 변하기 전에 이미 자기가 변하게 됩니다. 그 축복이 어떤 축복보다 소중한 축복입니다. 사실 기도의 가장 소중한 목적은 '내가 변하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변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게 환경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관심과 소원으로 평가됩니다. 여러분! 너무 정욕을 따라 구하지 마십시오. 그런 삶에는 아름다움과 향기가 생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욕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구하십시오. 그런 분들에게 아름다움과 향기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저것 다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능력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이 주어지게 됩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27살 청년 애런 랄스톤의 이야기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애런은 지난 4월 26일 유타 주 불루존 캐년으로 등산을 갔는데, 등반 도중에 450킬로그램이나 되는 돌에 왼손이 찍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콜로라도에 있는 4000미터 이상 되는 산 49개 정상을 정복한 적이 있는 익숙한 산악인인데 그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에 사고를 당하고 5일 동안 구조를 기다렸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습니다. 물은 화요일에 떨어졌고, 식량마저 목요일에 다 떨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그 상황을 혼자 빠져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지혈대로 지혈을 하고 등산용 칼로 자신의 찍힌 왼손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치지 않은 오른손을 이용해서 현수 하강을 해서 캐년의 중간 디딤대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래로 죽 걸어 내려오다가 유타 주 경비 헬리콥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습니다.

애런은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붙들고 있는 소중한 것을 기꺼이 잘라냈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고자 하면 우리를 얽매는 모든 것을 과감히 잘라내는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삶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한때 잘못된 생각으로 큰 재앙을 초래했지만 결국 그 재앙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항상 신앙의 기본 원리로 돌아가면 됩니다. 오늘 들은 4가지 원리대로 항상 회개하는 삶, 예배하는 삶, 헌신하는 삶, 우선순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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