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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하여 가라사대 - 마 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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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여 가라사대
(마태복음10:5-15)

(마10:5-1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다산 정양용(1762-1836)은 조선왕조 후기 정조 때 인물입니다. 문예 부흥기에 정조를 도와 근대사상을 불러들이고 개혁을 시도한 실학자요, 당시 천주교입니다. 그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을 때 ‘노론’의 모함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하고 있는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보는 만덕만 기슭에 자리한 조그만 초가집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배생활을 하면서 48권으로 되어 있어서 공직자의 윤리를 기록해 놓은 공무원의 철학서라 불려지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 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습니다. 관직을 박탈당하고 시골에 쫓겨나서 죄인 아닌 죄인의 생활을 하던 음지의 생활이 있었기에 훌륭한 책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하는 동안 자포자기하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술잔에 자기 인생을 걸었다면 다산 정약용은 오늘날 없었을 것입니다.
순탄한 환경, 건강한 삶, 풍요로운 가정 등은 물론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나 고난도 축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영적인 삶이 더 풍성해지고 미래의 소망이 더욱 곤고해질 수 있습니다(롬5:3-4). 고난자체는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도 결과는 내게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고난도 은총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시119:67,71).
우리가 비를 만나고 바람을 만나도 그 바람과 비를 이용하면 항해가 빨라지고 오히려 행운이 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그러므로 고난 중에 플러스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분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가지 명하신 말씀이 지금의 어두운 현실에서 밝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합니다. 세가지의 명하신 말씀을 통해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여러분들이 머물고 있는 자리가 복의 자리가 될 줄 믿습니다.

1. 거져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여 세상에 보내실 때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가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일으켜야 할 운동이 여기에 있다. 즉 예수님의 말씀대로 "거저 주는 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저 줄 수 있는 것들이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한 번의 미소, 한 잔의 냉수 등 얼마든지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거저 주는 일입니다. 만일 "거저 주는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서 일어난다면 이 사회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의 뜻은 “복음”를 무료로 주라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무료로 주라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사건이요(엡 2:1),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사람이 구원받은 사건입니다(엡 2:3).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임으로써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십자가란 그런 의미에서 "거저 주는 운동"의 가장 좋은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복음의 삶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어서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헌신하셨습니다. 이것이 철저하게 거저 주는 은혜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고민하거나 노력하거나 행동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타인을 위한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작게는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을 위하여, 크게는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사신 분이십니다.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세리나 창녀나 저주받은 질병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과부나 고아들을 위하여 사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고 돈을 벌기 위해서 행동하신 일은 한번도 없으셨습니다.

“ 십자가의 희생을 알고 실천하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 십자가의 희생을 알면 서로가 잘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 십가가의 희생을 알면 감사와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게되는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일본의 여류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광장히 유명한 분인데, 이분이 결혼을 하고 난 다음 부업으로 구멍가게를 하나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아주 친절해서 그런지 믿음이 좋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매일 트럭으로 물건을 받아와도 금세다 팔았습니다. 너무 장사가 잘되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장사에만 매달려야 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을 잘 믿는 남편이 아야꼬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래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소. 우리 가게가 너무 장사가 잘되어 우리 이웃의 가게들이 문을 다 닫을 지경이 되었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해서는 안될 일인 것 같소” 그러면서 부부가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 가게만 잘되어서 가장 소중한 이웃과의 사랑의 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다음날에 상품의 3분의 1정도만 갖추어 놓았다고 합니다. 없는 상품을 찾는 사람이 오면 전부 다 이웃의 가게로 보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좀 남게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빙점」입니다. 이 소설이 현상 음모에 당선되어 가게를 끄리면서 번 돈보다도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생하고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됨을 지키면, 그 다음에 우리가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부분에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하나되는 것을 막는 마귀의 모든 유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되기 위해 보여지는 것도 나누어야 하지만, 특히 보여지지 않는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오래참음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 그리고 자식과의 모든 관계뿐 아니라 교회나 일터, 그리고 어느 공동체어서라도 우리는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2.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하여야 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이승만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도 하나의 무덤만 남아 있습니다. 돈 많던 재벌 이병철씨도, 정주영씨도 천년 만년 살 것 같았지만, 돈 한푼 못 가져간 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시편 39편 6-7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육체는 싱싱하게 자라다가 눈서리가 내리면 시들어 없어지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 즉 대통령을 한다, 장관을 한다해도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금방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꽃은 풀보다 더 빨리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바로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 천국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100살을 산다고 해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고 맙니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면 싱싱하던 풀이 다 시들어 죽는 것 같이 인간의 육체도 그러합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말고 세상 영화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육체의 삶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것을 너무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의지할 가치가 없는 것을 의지하면 그것이 쓰러질 때 같이 쓰러지고 맙니다. 자식도, 물질도, 친구도 하나님처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기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에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둔 우리들은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좋아하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했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1:12)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은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습니다. 부활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우리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됩니다.

3.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개신교 2천년 역사중에서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최단시간에 부흥을 이룬 역사를 들라고 하면 17세기와 18세기의 경건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켰던 사람은 모라비안 종파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라비안 종파는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힘을 모아 선교사를 보내어 사람을 키우며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전심을 다하였습니다. 유럽에 선교사를 보냈고, 북아프리카에, 또 중미에 선교사를 보내는 그러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라비안 파가 타고 가던 배에 감리교회 창시자 존 웨슬 리가 함께 타고가다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라비안파는 아주 작은 집단이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사람을 전도하여 사람을 키우는데 사용했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광스럽게 만드셨고, 그들을 통해 부흥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하여 전도하여야 합니다. 구원하여 영생과 평안을 더하시는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알지못하는 자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교회란 보냄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모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교회란 진정한 교회는 아닙니다. 모이는 이유는 흩어지고 보냄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삶의 현장으로 내어 보냄을 받는 것입니다.

5,6절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이 말씀은 사마리아나 이방인에게는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선 순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증인 사역이 지역적으로 점차 확산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입니다. "땅 끝"의 시작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먼저 가까운 곳, 가까운 사람부터 찾으라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제자삼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가족 전도가 힘든 이유는 가족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쉽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전도하는 것이 더욱 쉬울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나의 전도하는 말을 받아 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명하신 것이 있습니다. 거져 주어야 합니다. 천국이 있다고 말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야 합니다. 세가지의 명령에 순종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터전에 복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순종할 수 있는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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