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컨드 초이스 (1) / 단 1:1-20

  • 잡초 잡초
  • 296
  • 0

첨부 1



세컨드 초이스(단1장1절-20절)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원하는 집에서,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이상형의 남편 혹은 아내와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벌고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어쩔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돈을 가지려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 신의 도움을 입으려고 하는 목적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으면 하나님이 능력을 발휘하셔서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사람들은 하나님앞으로 나아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런 것을 First choice 라고 부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강요되거나 혹은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제한되지 않고 내 뜻, 내 소원대로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이 퍼스트 초이스의 삶을 사람들은 누구나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내 소원이나 내가 원하는 것만 선택하며 살 수 있지를 못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사는 집은 여러분이 원하고 원했던 바로 그 집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나 직장은 어릴 때 여러분이 마음 속에 꿈꾸어오며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직장, 그런 일을 하며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분은 예전에 음성인식 휴대폰이 나왔을 때 신혼부부가 '자기, 달링...' 이렇게 입력시켜 놓은 것을 보고는, 우리 집사람은 뭐라고 입력을 해 놓았을까? 궁금해서 부인전화기를 들고 한참 불러 봤답니다. "여보, 자기, 아빠, 달링" 아무리 해도 전화가 안 걸리니까 '이 웬수가 뭐라고 해 놓은 거야?' 그러자 전화가 딱 걸리더랍니다.
한 때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남편인데 지금은 어느새 웬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누구나 퍼스트 초이스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은 내가 생각지도 않았고, 원하지는 더더욱 않았던 바로 그런 환경 속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낙망합니다. 현실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혹은 깊은 불만을 품은 채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내가 선택하지도 또 원하지도 않았지만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미 다가와 있는 현실의 여러 가지 것들....이런 것을 가리켜 우리는 세컨드 초이스..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퍼스트 초이스의 삶을 꿈꾸지만, 결국은 세컨드 초이스의 환경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가난한 것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가난합니다. / 아프고 병원에 늘 들락거려야 하는 삶을 누가 선택하겠습니까? 선택할 수 있다면 절대로 그런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았지만 날마다 병고에 시달리며 약봉지를 들고 다녀야하는 것이 현실인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얼마전 한 재벌총수가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만, 보통사람들의 생각엔 재벌총수쯤 되면 항상 자기 뜻대로 퍼스트 초이스만 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돈이 없지만 수십억, 수백억 재산만 가지면 무얼 못할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삶도 결국 퍼스트초이스만 할 수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도 '왜 정치가 뜻대로 안될까?'하고 답답해하고 있고, 세계최고의 권력을 가진 미국의 대통령도 '뜻대로 되는게 없다'하고  불만을 터뜨리는걸 보면 퍼스트 초이스의 삶을 완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어하지만 자기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뭔가가 되지 않았다고해서 세상을 비관하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온 세상을 원망하며 불만 가득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현실을 모르는 환상주의자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대로만 절대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그건 꿈입니다. 환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을 자기가 원하는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자기가 원하는 환경, 자기가 뜻하는 목표대로만 살아지는 인생이 과연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말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세상은 절대로 내 뜻, 내 마음, 내 소원대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 유한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절대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 때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가하면 내 뜻, 내 마음대로 선택하며 살기에 우리의 힘이 너무 모자라지 않습니까? 자기 키를 한 치도 더 늘일 수도 없고, 자기 머리카락 하나 자기 마음대로 자라게 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자기 뜻대로 주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시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외에는 결코 이 땅을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높으신 하나님의 뜻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 분의 뜻을 찾고, 그 분의 뜻에 맞추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인생의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인생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원하지 않는 현실의 한 가운데를 살면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살고, 바라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지만은 그러나 그 가운데 낙망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이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정결하게 거룩하게 보람있는 인생으로 후회없이 살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이런 삶의 지혜를 다니엘에게서 배워보고자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전도양양한 청년이었습니다. 꿈도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찬 포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처하게 된 현실은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았고 선택하지도 않았던 삶이었습니다.

1. 지금 그가 살게 된 곳은 어떤 곳입니까? 바벨론 땅입니다. 그는 나라가 망한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자기가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다른 사람의 의지로, 강제로 정든 땅 예루살렘을 떠나오게 된 것입니다.
2. 또한 그를 둘러 싼 환경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이방신과 이방문화가 득실대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3절-5절
먹는 음식에서부터 배우는 공부와 날마다 접해야 하는 바벨론 왕궁의 환경이,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에게는 견디기 힘든 이질적이고, 이방적인 우상문화였습니다. 잘 먹고 잘 입은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니엘에게 있어서 차라리 굶을지언정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는 경건한 환경에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닥쳐진 현실은 전혀 원하지 않던 바벨론 우상숭배의 중심지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가지게될 직업과 미래의 모습은 더욱더 암울했습니다. 5절 하반절....: 원하지 않은 직업(?)을 가져야 함...평생을 왕의 시중드는 노예로 지내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원하지 않은 현실 한 가운데 들어와 있게된 다니엘이 얼마나 암담했겠습니까? 얼마나 부정하고 싶었겠습니까? 어느 것 하나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전부다 외면하고 싶고,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 되돌려 버리고 싶은 그런 것들로만 둘러 싸인 가장 원하지 않던 환경 속에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건 다니엘만 당한 상황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도 이런 환경속에 내 몰렸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1. 그는 애급으로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로 납치되었습니다.
2. 그리고 거기서 이름없는 노예의 삶을 살아갑니다. 또 거기서 믿음을 지키다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는 비참한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환경도 다니엘만큼이나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애급의 우상숭배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또 어떤가?
1.그는 고향친척이 살고 있던 정든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했다. 자기 뜻과 는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의 명령때문에 ..
2.또한 그는 그렇게 아들을 원했지만은 십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는 쓸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가정불화를 겪기까지 했습니다.
3.그리고 그는 날마다 장막을 옮겨 다니는 떠돌이 삶을 평생 살았습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는 했지만 평생토록 자기이름으로 된 땅이라고는 자기 아내 사라의 무덤 몇 평밖에 얻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비참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는 이런 생을 그는 살아야 했습니다. 전혀 자신이 원했던 바도 아니었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러했고, 그런 현실의 한 가운데를 헤쳐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결코 화려하게 수놓인 꽃비단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슨 노래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가질 수 있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될 수 있었던 그런 축복의 탄탄대로를 달려갔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원하지 않는 환경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기도 했고, 부정하고 싶은 고난의 현실 한 가운데를 억지로 걸어가야 하기도 했었습니다. 힘이 없고 나약해서 나라를 빼앗기기도 했고,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와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억울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라고 해서 늘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누리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한계와 부족을 절감하면서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나약한 인생에 불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다니엘은 어떻게 그런 환경속에서 탁월하고도 성공적인 삶을 살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원하지 않은 현실 한 가운데 들어와 살면서도 그 곳에서 탁월함을 인정받고, 주변을 변화시켰으며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론 왕궁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는가? 하는 다니엘의 비결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에 대해 몇가지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그 다니엘의 탁월한 삶의 비결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었습니다. 2절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에 대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다니엘은 이것이 '주께서 붙이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이 강해서....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약해서...도 아니라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망하게 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대인은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자기들 편이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한 절대로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는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예루살렘이 망하고 났을 때 유대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고, 회의에 빠졌겠는가?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이 회의에 빠지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다니엘은 이 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난 일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주께서.... 붙이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원하고 바라는 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건과 환경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보여주고 있는 탁월한 삶의 비결 가운데 첫 번째 비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쪽으로만 일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셨을 때에는 감사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고 있음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원망하고 한탄하고 낙망하기만 하지, 그런 일 조차도 그 손에 붙잡으시고 인생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왜 어려운 일만 생기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까? 그 일이 하나님의 손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믿어도 소용없더라" 사람들은 원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이렇게 쉽게 말해버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까지 미치지는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내가 모르는 깊으신 뜻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고. 하늘이 높은 것 같이 그 섭리와 계획이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을 가지고도 우리를 다스려 나가시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사건과 환경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은 이땅을 운행해 나가십니다.

오늘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이 훗날 그 바벨론 왕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바벨론 황제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앞에 무릎꿇게 할 위대한 일을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다니엘에 지금 이렇게 포로로 잡혀오지 않았더라면 그 바벨론 왕궁안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었을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다니엘 한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여호와의 이름앞에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감히 누가 알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이렇게 오묘한 것입니다. 한계를 지닌 인간이 감히 상상도 못할만큼 크고도 오묘한 섭리로 우리 인생을 다스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계신다, 하나님이 이 일도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믿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예루살렘이 망해버렸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넋놓고 이게 무슨 일이냐?하고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다니엘은 이 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난 일임을 믿고 있었고, 그 하나님의 손길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원망하거나 낙망하지는 더더욱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데 왜 실망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일도 주관하고 계신 것이 분명한데 왜 쓸데없는 원망에 빠지겠습니까?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성읍 예루살렘이 망하는 일에 어떻게 하나님의 간섭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 자녀가 포로로 바벨론까지 잡혀오는 이 중대한 일에 하나님의 손이 개입하시지 않겠으며, 하나님의 뜻이 없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의 한가운데 주님의 다스리시는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 아래서 일어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있고, 여러분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한가운데 임재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하는 일이든 원치 않은 일이든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세상을 이기는 탁월한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이 믿음에서부터 모든 성공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이 출발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다니엘은 이 하나님의 손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바벨론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며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탁월한 삶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다니엘은 현실을 인정하며 살았습니다. 19절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으며 사는 사람의 특징은 현실을 인정하며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왕궁에 포로로 잡혀온 소년들을 삼년만에 왕이 시험을 해 보니 누가 가장 탁월했습니까? 다니엘과 세친구가 가장 탁월했습니다. 왕이 무엇을 물어보았겠습니까? 바벨론의 역사, 바벨론 말, 바벨론의 문화....등등 삼년동안 배운 것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다니엘이 제일 탁월했다는 것은 그 왕궁에서 가르치는 학문과 방언에 제일 충실하게 임했다는 이야깁니다.

여러분 보세요. 억지로 끌려와서 억지로 하게된 공부입니다. 무얼 그리 열심히 할게 있었겠습니까? 대충 대충 시늉만 하고 시간만 때우면서 떠나온 고향 예루살렘 생각과 그리움에 젖어서 "언제나 가려나"...하며 세월을 보내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의 학문과 방언을 공부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마치 요셉이 노예로 끌려온 보디발의 집에서 최선을 다해 노예의 일을 했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내려갔어도 거기서도 간수장이 신임할만큼 충실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던 것과 흡사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는 사람들은 현실을 빨리 인정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버렸나.....'하고 후회하고 한숨짓고 앉아있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오게된 것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이리로 데려온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라고 믿는 사람이 왜 현실을 부정하겠습니까? 왜 쓸데없는 원망이나 한숨만 쉬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보내신 곳이라고 믿는다면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크리스챤은 현실적응력이 뛰어나야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기에...
간혹 다른 지역에서 창원에 이사온 사람들 중에 적응이 빨리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교인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있었습니다만, 부산을 못 잊어서 시간만 나면 간다...못가면 전화 붙잡고 떠나온 사람들 하고 하소연하기 바쁘다....이러면 시간만 낭비....이사왔으면 여기에 빨리 적응해야지. 하나님이 이곳으로 보냈다는 것을 믿으면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이 무얼하기 원하시는지 알아서 그 일을 이루어가는 일에 바빠야 하는데 계속 옛 노래만 부르고 있으면 안된다....
(아이를 잃은 다윗이 보인 행동의 변화....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기에 현실에 빨리 적응한 것...)


3. 다니엘에게는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현실을 함께 버텨나갈 믿음의 공동체가 있었다. 6절.  8절에 뜻을 정한 다니엘에게 함께 동참할 친구들이 있었다(11절)/ 2장 17절-18절
(다음주일에 계속...)





▲ 마리아의 영적 통찰력 (요 12:1~8)



▼ 요셉의 믿음 - 죽음 너머의 소망 / 히 11:22




   

EZBoard by EZNE.NET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