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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잔칫집” / 눅 14:15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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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4장 15절 - 23절
제  목 : “잔칫집”


잔칫집은 즐거운 집의 대명사입니다.
그 잔치집의 주인공이 누구이든,
그 잔치의 주제가 무엇이든,
잔칫집에는 풍성한 음식과 많은 손님들과 기쁨이 있음을 압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부분을 상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 잔치로 비유하며 교훈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교훈

무엇을 교훈하는가?

① 하나님 나라는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 는 것입니다.

  눅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② 하나님 나라의 초대받은 자들은 모든 자들이지만, 결국은 큰자, 부한 자, 강한 자가 아닌 작은 자, 약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눅 14:13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초청해야 하는가? 하는 초청의 성격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손님

어느 잔치는 초대받은 손님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손님이 많은가?
어떤 손님이 많은가? 로 그 잔치를 알 수 있습니다.

○ 제가 아는 집사님의 아들, 딸 결혼식에는 온통 세무관계의 공무원들과 종사자들이 참석했었습니다.

○ 간혹 1급 연예인들의 결혼식장에는 초청하지 않은 팬들로 식장과 거리가 마비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오늘의 이 잔치는 어떤 잔치입니까?
환갑이나 칠순이나 아들, 딸 결혼이 아닙니다.
그냥 「큰 잔치」입니다.
주인이 대단해서 「한턱」 먹이고자 하여 많은 사람을 청하는 잔치입니다.
이 잔치의 주인공은 「배설자」인 주인이 아니고 「초청」받는 사람들 인 것입니다.


여기에 1차적으로 초청한 사람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① 밭을 샀으며
② 소 다섯 겨리를 샀으며
③ 장가들었으니…….

이들의 이유는 한갓 구실일 뿐,
진정한 이유는 자칭, 「있는 자요」, 「큰 자요」, 「독립할 수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밭」을 샀을 형편, 소「다섯」겨리를 샀을 형편, 「장가」갈 수 있는 형편,
스스로 만족하며 스스로 살 수 있는 형편의 사람들이기에 주인의 초대가 반가운 호의가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심지어 「나를 그런 잔치에 초대하다니…….하며 불쾌하게 생각했을」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의미를 알아야 「기독교와 교회」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직접적 신민이기에 주님은 다른 나라가 아닌 그 나라와 그 민족 속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배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3) 초청

주님 오심을 환영하고 영접할 의무가 있는 백성이 주님을 못 박아 죽인 것은
고의적인 초청 거부요
자칭 「큰 자」로 여긴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 잔치가 포기되고, 구원의 초청이 취소되겠습니까?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2차적 관계의 사람들을 손님으로 청하게 된 것입니다.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되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

이들의 초청은 누구를 지칭합니까?
혈통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이스라엘이 될 수 없는 이방인인 「우리들」인 것입니다.

○ 일찍이 고넬료가 구원받았던 것이 그 시작이며,
○ 핍박자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구원 받은 것,
○ 자칭 예수라 했던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 교회의 일원이 된 것,

다 이 초청의 은혜 덕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을 초청한 종이며 우리나라에게 복음을 전했던 많은 선교사들도 이 범주에 속한 종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충만한 수가 차질 않아 빈자리는 남아있기에 계속 계속 초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눅 14:22-23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지금까지의 사정을 보면
주인은 계획성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안 되니 저렇게 하라 하고, 저렇게 해서 안 되니, 이제는 강권하여 채우라 하고,

그러나 지금의 본문은 「비유」입니다.

참 천국잔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길 원하셔서 초청하는데 예정을 연출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연출의 의도를 알았습니다.

  롬 11:25 “이 비밀은?”

무슨 비밀인가요? (이스라엘이 주님을 거부하여 이방인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 그 배경과 섭리를 말함)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더러는 완악하게 될 것이라 했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예언입니다.
  호 2:23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던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이사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사 29:10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가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느니라”


4) 유심히 보아야 할 두 가지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① 주인의 마음과 모습입니다.
왜 주인은 큰 잔치를 베풀고 계속된 초청을 할까요?

사랑 많은 주인은 자신을 위한 잔치이기 보다는 저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건만,
그 사랑이 묵살되고 있기에 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 부모들은 알 수 있습니다.

○ 공부 하는 자식위해서 간식을 만들어 놨더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 허약한 자식위해서 곰국 끓여 놨더니 맛없다고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실망, 섭섭함.
결국은 누구에게 줍니까?
동생에게 주고 남에게 까지 주는 일이 있습니다.

피로 값 주고 사신 천국잔치는 구원 잔치인데 맏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은 오질 않고,
둘째라 할 수 있는 이방인인 우리에게 주었건만, 여전히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노함은 당연한 것이요
그 노함은 혈기만의 노여움이 아닌 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서운함의 노여움일 것입니다.

② 이제는 종의 모습을 봅시다.
이들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주인의 의도와 마음을 잘 알았던 종들입니다.
헌신된 종이요 충성된 종입니다.

수가성 잔칫집에서도 이러한 종들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쁨을 모두가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초청의 일을 잘 수행하고 있었으며,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이 사명도 잘 준행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습니까?
손님이어야 합니까?
종 되어야 합니까?
설령, 전에는 초대받은 손님이었을 지라도 이제는 자원하는 종 되어야 합니다.

왜요?
  잔치 맛을 보았기 때문이고,
  주인의 사랑을 누렸기 때문이며,
  잔치는 끝날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 TV를 볼라치면 불쾌한 때가 있습니다.
사랑, 이별을 노래하는 무슨 음악회나 밤늦은 무슨 프로에는 청춘남녀들로 가득 찬 방청석을 볼 때입니다.
아니면 축구장, 야구장에 가득 찬 인파입니다.
왜 세상잔치에는 저토록 열광하면서 천국잔치에는 관심이 없는가?

○ 자칭 예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큰 자요, 있는 자요, 강한 자들이기 때문이며,

○ 더 중요한 것은 육신에 속한 자들은 영의 속한 잔치 맛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더 중요한 것은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명령을 받은 종들이 인정사정을 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애들은 약 먹길 싫어합니다.
  주사 맞는 것도 싫어합니다.
  수술은 더욱 싫어합니다.
사정 봐주면 애는 죽습니다.
모질게 대하고 때려서라도 치료받게 하여야 삽니다. 이게 「강권」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잔치보다 천국잔치가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입에 들어가서 씹히는 것만 잔치 음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셨습니다.

기도, 말씀, 찬양, 교제는 신령한 영화의 음식입니다.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합시다.
혹자는 채우기만 하면 어쩌냐고 걱정도 하겠습니다만

  마 13:47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오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 차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하심 같이 선별하는 일은 주님이 천사로 하여금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여러분은 「강권하여 채우는 일」입니다.
잔칫집에는 사람으로 북적 돼야 합니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혹은 먹을 것은 없을 수 있으나 사람은 많아야 됩니다.

교회는 잔칫집이기 때문입니다.
천국도 잔칫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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