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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감사하자] 시 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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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자> 시95:1-11


오늘 본문인 시편 95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하러 나아오는 이들이 왜 경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1-2절에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한 후, 3절에서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알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신들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신 아닌 온갖 것들을 신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현실을 가리켰을 뿐입니다. 4-5절에서는 하나님을 바다와 육지와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 등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라고 말함으로써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라”고 한 3절의 말씀을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다시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 그 이유를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단순히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며 그의 양떼라는 것입니다. 앞선 1절에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할 이유입니다.

또 시편 95편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1절에서는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했고, 2절에서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했습니다. 6절에서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합니다. 그리고 7절 끝부분에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함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8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화법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애굽으로부터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지날 때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했던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8절 이하를 다시 봅니다: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조사했다는 사건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출17:1-7이 전하는 사건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이란 곳까지 행진하여 장막을 쳤을 때 백성들이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마르자 물을 찾으며 모세를 향해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원망하고 모세와 다투며 말하기를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했고, 모세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하고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여 백성들이 물을 마시게 했던 것입니다. 그 때 모세는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툰 것을 민20:13에서는 하나님과 다툰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본문 10-11절에 있는 대로입니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고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셨다 합니다. 여기서 “근심하셨다”는 것은 “몹시 싫어하셨다”, “진저리를 내셨다”, “지겨워서 구역질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한 마디로 징그러운 백성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며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 거역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하여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해내시며 엄청난 기적들을 행하신 바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 같은 일들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며 인도하셨습니다. 애굽 땅의 모든 장자가 죽는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은 면하게 하셨고(출12:21-36),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행진을 인도하셨으며,(출13:17-22) 홍해물을 가르셔서 애굽군의 추격을 물리치고 안전히 건너게 하셨고(출14:5-31, 15:19),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물을 찾지 못했을 때에는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주셨으며(출15:22-26), 먹을 양식이 떨어졌을 때에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하늘로부터 내리셔서 온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출16:1-36).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보고서도 이스라엘은 쉽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잊고 의심하기를 잘 하였고 그 의심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의심과 배역함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참되게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때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일은 우리의 삶이 감사로 가득찬 경배의 삶이 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때에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로 아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그의 백성이고 그의 양임을 아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이해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과 은혜를 입고 있는지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 그 자체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라면 그의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마7:7-11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의 선한 목자시라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놓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확증시켜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감사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말은 “감사”라는 말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참된 예배에로 인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고, 우리의 예배를 열며 닫는 열쇠도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함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예배당, 좋은 오르간, 좋은 찬양대, 그리고 청산유수 같은 기도가 있어도 우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공부 많이 하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 많이 하고 봉사 잘 해도 진정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살5:18)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토록 크고 놀라운 은혜를 많이 받고도 쉽게 잊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배역을 거듭한 백성은 사실은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은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정치도 우리에게 분노와 짜증밖에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경제도 암울하기만 하며, 사회는 날로 탁하고 무서워져가는 요즈음은 도무지 감사할 일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사실은 온통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차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하루를 주셨습니다. 해를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숨쉴 수 있는 공기를 주셨습니다.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나올 수 있는 자유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사하심을 주셨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복된 삶을 주셨습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감사할 일로 넘칩니다. 최근에 수능시험이 있었는데, 혹 자녀가 수능시험을 별로 잘 보지 못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그 자녀가 그래도 건강하고 잘 뛰어다닐 줄 알기만 해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공부 잘 못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자녀들이 찬송할 줄 알고 기도할 줄 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집 애들은 안 그런데 우리 애는 그저 노는 것밖에 모른다”고 생각하며 상심하고 계시다면 담임목사의 애 중에도 그런 애가 있음을 아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모두 일류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다른 집 부모들 주눅 들게 하는 사람 안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애들이 속 썩인다고 화내지 마세요. 애가 없어서 속 썩는 사람들도 있음을 아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애가 없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애들 때문에 속 썩는 사람들 보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눈만 잘 뜨고 살핀다면 감사할 제목은 우리 주위와 삶 속에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어떻다 어떻다 해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 해도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 가운데 지켜주시고 인도하시지 않으셨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지금 예배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시편 95편 마지막 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노하심을 자초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안식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지 맙시다.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이스라엘 백성같이 그렇게 많은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조금 무슨 일만 있으면 하나님께 불평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 되지 맙시다.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그 숱한 사랑과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너무나 감사해서 즐거이 부르는 노래와 외치는 소리가 오늘뿐 아니라 언제나 이 교회와 우리 각 가정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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