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일등 신자 (행 16: 1-5)

  • 잡초 잡초
  • 263
  • 0

첨부 1



일등 신자 (사도행전 16: 1-5) 


일등 신자라는 말은 믿음의 제일인자라고 하는 말과 같은 뜻으로 생각하여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강 왕 카네기가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은 좋다'고 합니다. 일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무슨 일에 종사하든지 그 일에 항상 제일인자가 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우편 배달부가 되었으면 우편 배달부 중에서 일인자, 측량 기사가 되었으면 그 많은 측량 기사들 중에 제일인자, 장사를 하게 되면 장사꾼 중에 일인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런 철학을 가지고 일하며 살아 왔기에, 철강 업계에서는 세계 제일인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일등 신자, 한국 아니 세계적으로 믿음에 대해서는 제일인자가 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일등 신자'인지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I. 뿌리가 깊은 신자(1-3절)

1. 믿음의 뿌리(1절)

뿌리깊은 신자라야 일등 신자가 됩니다. 우리도 디모데처럼 뿌리깊은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은 신자로, 본문에는 디모데를 주인공으로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루스드라가 고향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이고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 안 믿는 헬라 사람인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안 믿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예수 잘 믿는 어머니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내려 뿌리깊은 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디모데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를 상고해 보면 참 은혜가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 사도가 처음에 루스드라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전도 집회를 열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예수를 믿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 중에 유대인들도 예수 믿겠다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달려 나와서, 한창 집회에 열중하고 있는 바울 사도를 붙잡아 끌어내어 그냥 돌로 마구 쳤습니다. 그리곤 죽은 줄 알고 쓰레기통에 내어 버렸는데, 예수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쓰러진 바울 주위에 둘러서서 웁니다. 바울이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납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눈을 뜬 바울이 입을 여는데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이와 같은 환난을 많이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루스드라를 떠났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사람 중의 하나가 디모데입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러한 각오를 하고 믿어야 되는구나, 더구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이런 각오를 해야 되는구나' 생각하고 출발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외할머니로 시작하여 어머니를 거쳐 내려와 뿌리내린 신앙입니다. 뿌리를 죽 내려왔고 뿌리를 죽 내려주는 믿음. 이런 믿음을 소유한 자는, 마치 뿌리깊은 나무가 심한 가뭄이 든다고 할지라도, 능히 버티고 견뎌내어 꽃 피우고 열매 맺듯이 귀한 열매 주렁주렁 맺어 성공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얕은 자는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뿌리 얕은 나무가 가뭄에 병들고 시들어 말라죽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뿌리, 즉 믿음의 뿌리가 계속 깊이 내려왔고 또 계속 내려주는 신자가 일등 신자입니다.


2. 칭찬의 부리(2절)

칭찬의 뿌리입니다. 디모데가 어느 정도로 칭찬을 받았나 하면 자기 고향 루스드라라고 하는 그 큰 도시에서는 말할 것 없고 -예를 들면 서울 장안에서 광성교회 아무 아무개 이렇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다면 그것만해도 굉장하듯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 도시인 이고니온에까지도 소문이 나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칭찬의 내용은 본문에 이렇다고 딱부러지게 써넣고 있지 않지만은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는데 형제들이란 육신의 친척되는 형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믿음의 형제를 말합니다. 즉 교인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교인들은 어떤 교인을 칭찬합니까? 뒤에 와서 구경하는 구경꾼들은 10년을 나와도 칭찬할 것이 없습니다. 교인들은 구경꾼인지, 열심히 봉사하는 참 일꾼인지 더 잘 압니다. 구경만 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을 안 합니다.

예수 안 믿으려니 괴롭고, 교회에 안 나가려니 양심에 가책이 되고 또 교회 나가서 봉사에 참여하려니 공연히 아깝고 힘들고 ... 그러니 예배 시작하면 겨우 나와서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나자 마자 쏜살같이 가 버리는 교인. 이들은 교회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전혀 관심이 없기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저 팔짱 끼고 남의 일 마냥 구경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 해 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이 칭찬을 받고, 칭찬하게 마련입니다. 교인들에게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그 만큼 봉사를 잘 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봉사하고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은 이것 저것 기가 막히게 많이 하는데 칭찬을 못 받습니다. 왜냐 하면 기껏 봉사하고 재세를 부리거나, 봉사 좀 했다고 도도하게 거만을 떠니 그 꼴을 누가 보아줍니까. 칭찬은 고사하고 오히려 욕을 먹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돈푼이나 헌금했다고 도도하게 재세 부리며, 자기를 드러내려 하고, 제 목소리만 크게 내면 그 꼴을 어떻게 보아줍니까. 욕먹는 봉사가 아닌 칭찬 받는 봉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네 거짓 없는 믿음은 네 외할머니와 네 어머니를 거쳐 네게까지 이어 온 것'이라고 디모데를 칭찬했습니다.

디모데가 이렇게 칭찬 받았다 하는 것을 보면 아주 묵묵히 봉사한 사람입니다. 이렇듯 봉사로 칭찬 받고 그 칭찬의 뿌리가 계속 이어 왔고 또 이어 내려가는 신자가 일등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3. 건덕의 뿌리(3절)

바울 사도가 이제는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의 일꾼으로 쓰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데리고 가기 전에 먼저 할례부터 행했던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 즉 유대 사람들은 할례를 꼭 행합니다. 남자의 경우 태어나서 팔 일이면 할례를 행하는데 팔일에 할례를 못 하게 되면 다 커서 젊은 때에라도 할례를 행합니다. 만약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가까이 하지도 않고 상대도 안 해 줍니다. 그러면 할례는 왜 받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실 적에 네가 할례를 받으면 네 몸에 흔적이 남아 죽을 때 가지 지울 수 없고,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과 약속을 한 민족, 언약을 맺은 민족이다!' 항상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표징으로 준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런 몸의 흔적쯤 그것이 문제이겠느냐 사실상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몸에 흔적만 가지고 마음은 전혀 할례와 상관없는 자세를 가지고 산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바울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째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했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떤 도시에 가든지 이방인 전도에 앞서 반드시 유대인회당에 찾아가서 유대인들을 전도하는데 디모데 아버지가 헬라 사람입니다. 분명히 이방인입니다. 그러니까 할례를 안 받아서 도저히 유대인들이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할례를 통하여 벽을 허문 것입니다.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젊은이가 할례는 받는다는 것은 보통 고통이 아닙니다. 할례를 요즘처럼 의료 기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차돌 가지고 합니다. 엄청나게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이라면 나는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덕을 세우는 신자, 덕을 꼭 세우는 신자가 일등 신자인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뿌리, 칭찬의 뿌리, 건덕의 뿌리가 깊은 신자가 일등 신자입니다.


II. 은혜로 된 신자(4-10절)

1. 직분의 은혜(4-5절)

은혜로 된 신자의 주인공은 바울 사도를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를 가리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회개하고 베드로를 쳐다보았을 때 아마 하늘을 쳐다보는 것처럼 높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의 나되게 해준 것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 부러워하며, 그처럼 되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가 되었고, 바울은 자기가 자기 되었다하며 내가 나 되었다 이것이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러 성으로 자꾸 다녀갑니다. 바울 사도가 여러 성으로 다녀 가는 것은 관광차, 사업차 다녀간 것이 아닙니다. 전도 여행차 다녀갔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할 일이 없어 돌아다닌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길리기아다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 가서 유학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장학금 제도도 없는 때라 학비 전부를 집에서 대 주어야 하는데, 그 만큼 엄청나게 잘 살던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울 만큼 다 배운 학식이 높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대제사장에게 공문 받을 만큼 앞날이 보장된 바리새파 공회 의원입니다. 출세할 대로 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 만나고 예수 믿은 다음에는, 세상 모두 부러워하는 그리도 좋은 환경과 기반을 다 포기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부르셔서 선교사로 파송해 준 것을 은혜로 여기고 고맙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궁핍하여 장막을 꿰매는 일도 하고 굶어 가며 선교사 직분에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선교사 직분 주신 것 감사하며 여러 성으로 다니면서, 예루살렘 공회가 결정한 규례를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은혜스럽게 생각하고 더욱 감사하고 충성한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나를 써 주시고 내게 직분 맡겨 준 것을 은혜롭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직분 맡겨 준 것을 은혜로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일등 신자입니다.


2. 성령의 은혜(6-7절)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더라' 또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더라.' 또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더라.' 한 마디로 말해서 성령이 못하게 하고 허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못하게 하고 허락지 않았습니까?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일 안 하고는 못 견디고 주님의 일 안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인데 왜 성령이 못하게 합니까? 기가 막힌 일 아니겠습니까? 난 교회 일 하고 싶고 봉사하고 왜 못하게 합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성령이 못 하게 했는데도 했습니까? 아닙니다. 못하게 하니 안 했습니다. 허락지 않으니 안 했습니다. 때를 기다렸습니다. 성령이 하게 하시니 하고, 성령이 안 하게 하니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무당이라고 하는 건 무당 신이 내려서 무당신이 역사 할 때만 진짜 무당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대로 따라 사는 사람, 하나님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하나님이 하라 하면하고, 하지 말라 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이런 성령의 인도하심을 가장 은혜롭게 여기는 사람이 일등 신자입니다.


3. 깨달음의 은혜(8-10절)

여러분, 바울 사도는 깨달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뼈에 사무치도록 느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교인 싹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인 줄 알고, 예수 믿는 사람 보는 대로 붙잡아다 가두고, 재산 다 몰수하고 정신 없이 괴롭히고 핍박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다메섹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 분이 진정 사모하며 기도리던 메시야임을 깨닫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되었는지... 거기서 그 순간 그가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내가 모르고 한 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나를 못하게 할 적에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렇지만은 때를 기다렸더니 바로 그 날 밤에 환상이 나타나는데 마게도니아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는 바다를 건너서 헬라 땅입니다. 환상이 끝나자마자 곧 깨닫고 건너가서 주님의 일에 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는 때가 이 때고 하나님이 일하기를 지시하는 땅이 바로 저기,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는 깨달음이 은혜 중에 최고의 은혜이며 바로 이 은혜로 된 신자가 일등 신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직분의 은혜, 성령의 은혜, 깨달음의 은혜입니다.


III. 개척하는 신자(11-15절)


1. 생활의 개척(11-13절)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나 혼자는 절대 못 삽니다. 첫째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어야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내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만 아내와 단 둘이서 어떻게 삽니까? 아들 딸들이 있어야 하고, 또 내 가정만 어떻게 삽니까? 여러분, 저 사람이 내 물건만 팔아 줍니까? 남의 물건 내가 사 주어야 저 사람도 살고 저 사람이 살아야 내 물건 또 사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로서로 만나서 살게 되어 있고 서로서로 도우며 살게 되어 있지 혼자서는 절대 살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귀어 간다 친구를 만나서 하나하나 사귀어 간다는 것은 내 생활의 터전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을 자꾸 사귀어 믿음직스러운 친구로 삼는 것은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에 개척하는 신자의 주인공은 루디아라는 여자인데 이 여자는 본래 빌립보에 사는 여자가 아닙니다. 헬라 사람 즉 마게도니아 사람이 아니라 서아시아에 있는 두아디라가 고향인 여자입니다. 전혀 딴 나라 사람이 빌립보에 와서 살면서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유대인들을 사귀어 가지고 벌써 유대인들과 안식일날 기도처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를 사귀어 거기서 전혀 모르던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었으니 삶을 개척해나가는데 얼마나 성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거나 내 믿음에 도움을 받았다하면 여러분들은 정말 훌륭한 삶의 개척자인 동시에 일등 신자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업의 개척(14상반절)

루디아는 두아디라성 여자인데 자주 장사였습니다. 자줏빛 나는 물감을 들인 명주는 그 당시 세계어디에서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두아디라 지방에서만 생산되었습니다. 두아디라 지방의 아주 유명한 특산물이었던 것입니다. 루디아는 이 물건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가 빌립보에다 장터를 개척하여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불모지에다 사업을 차려서 크게 성공하고 자기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할 만큼 성공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좋은 사업을 개척하는 신자가 일등신자입니다.


3. 교회의 개척(14하반절-15절)

지금까지 루디아는 유대 여자와의 사귐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 갔을 때 첫 안식일을 당하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수가 많으면 반드시 회당을 짓게 되어 있고, 수가 적으면 강가에 나가 조용한 곳에다 기도처를 정해 놓습니다. 그리고는 몇 명 안되는 유대인들이라도 안식일이면 그곳에 모입니다. 그래 바울 사도는 어딘가에 기도처가 반드시 있겠지 생각하고 찾아 나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도처가 있는데 유대 여자 몇 명이 모였고 그 중에 루디아도 있었습니다. 거기 모인 그 여자들과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셔서 그 말씀들이 마음에 쏙속 들어 왔습니다. 바울 사도를 자기 집으로 모셔 가게 되고, 결국 그곳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바로 빌립보교회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데 여자가 주축이 되어 세워진 교회는 빌립보 교회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세워 나도 구원 얻고 내 가정 구원하고, 내 이웃 나아가 온 도성이 구원 얻도록 믿음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노릇하는 사람이 일등 신자입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이천년 전의 이야기로 끝나지 말고 오늘 여러분들이 뿌리깊은 신자, 은혜로 된 신자 개척하는 신자로 일등 신자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