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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아시는 주께 (시 13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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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를 아시는 주께
본문 : 시편 139:1-10


한 갤럽기관이 외모에 자기 대한 생각을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외모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 그랬더니 남자들 중 28%가 만족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자들은 얼마나 될까요? 남자보다 많을까요, 적을까요? 네, 여자들은 13%가 자기 외모에 만족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외모를 바꾸겠습니까?’였습니다. 이 질문에 남자들은 94%, 여자들은 99%가 바꾸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이만하면 잘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 시중에 이런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게 이쁜 것만 못하고, 이쁜 게 돈 많은 것만 못하고, 돈 많은 게 건강한 것만 못하다.」

아마존에는 지금도 문명을 모르고 사는 소수 민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탐험대가 그들을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외부 사람을 처음 본 토인들을 취재해서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짓궂은 탐험대원이 토인들에게 손거울을 주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생전 처음 본 토인들은 모두 기겁을 했습니다.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기 행동을 따라하는 자가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울이 없었던 그들은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잘 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모르고 사는 겁니다. 이게 차라리 행복한 겁니다.

여러분은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사십니까? 이 세상에서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나에 대해서 나보다 남이 더 잘 알 때도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나’가 있고, 남에게 알려진 ‘나’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나’는 크고, 남이 아는 ‘나’가 적은 사람은 비밀이 많은 엉큼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내가 아는 ‘나’보다 남이 아는 ‘나’가 많은 사람은 착각 속에서 사는 모자란 사람입니다.

내가 나를 많이 알고 있고, 남에게 나에 대해서 많이 알리고 사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나에 대해서 감추는 것이 많은 것은 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삶이 투명한 것이 좋습니다.

자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자기도 자신을 다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해야 인격이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럼 누가 나를 가장 잘 알까요?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나를 낳으셨고 기르시면서 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도 다는 모릅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오늘 성경에 다윗은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다.”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도 숨길 수 없습니다. 다 드러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앉고 서는 것을 아십니다. 나의 혀의 말을 다 아십니다. 말하기 전에 이미 나의 마음을 아십니다. 나의 은밀하고 비밀한 것까지 다 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피해 갈 곳이 없습니다. 하늘에도 음부에도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이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비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허물고 부족함을 다 아십니다.

시편 103:14 말씀입니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은 내가 흙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흙을 빚어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리석고, 부족해도 나를 용납하십니다. 나의 허물을 보고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기다려주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아시면서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대학을 다니는 한 여학생에게 사랑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깊이 연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가 결혼식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시련이 있었지만 얼마 후에 다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너무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자기의 과거를 고백하면 사랑이 깨질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녀는 비밀을 간직한 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동안에도 마음 한쪽 구석은 늘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십년이 흘렸습니다. 남편은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해주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너무나 좋은 당신 앞에 과거를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고.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시험에 듭니다. 죄에 빠지면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교회 복도에 페인트를 칠할 때입니다. 페인트공이 칠을 하는데 옆에서 돕다가 한 방울이 튀어 제 옷에 묻었습니다. 아끼는 옷에 페인트가 묻으니까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일하는 페인트 공은 손에 묻은 페인트를 자기 옷에 문지르면서 닦았습니다. 그 사람은 옷은 이미 페인트로 범벅이 된 작업복이었습니다. 옷에 뭐가 묻어도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처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죄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죄를 짓은 것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밤새 춤을 추고 놀아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바람피우다 걸리면 이혼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작은 죄에도 가슴을 조아립니다. 아직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옷에 페인트가 묻으면 얼른 신나로 지워야합니다. 이왕에 버린 옷이라면서 페인트 통에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다짐해야합니다. 그 죄에 습성이 들지 않도록 이겨내야 합니다. 만약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회개에 둔감해지면 죄는 쌓입니다. 죄가 쌓이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내 고통, 내 질병, 내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실패했습니까? 그 실패로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버림받았습니까? 그 실패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증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실패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실패가 있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고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게 그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어서 그 고통의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욥기서 의인이 고통당하는 문제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고통의 의미를 깨달은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인생에 지치고 힘들 때 찾아갈 곳이 어디입니까? 나를 가장 잘 아는 이에게 가야합니다. 그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아시는 주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내 마음을 쏟아놓으십시오. 주님께서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이제 성찬식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성찬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상의 떡과 잔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이루어진 주님의 살과 피 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고통도 다 이해하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주신 주님의 살과 피 입니다.

이 앞에 나아와 주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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