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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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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14)

[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주후 2003년의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난 분들도 많을 것인데 오늘 이렇게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또 한 번의 기쁨이요,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년 추수감사주일에는 아주 감동적인 기도문 하나를 선물로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날 큰 고통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시간 다퉈 수술을 해야 된다는 의사가 야속했습니다. 발병 원인이 스트레스라는데 원인 제공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입원하기 전 날 책상 위에 쌓인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덩그런 병실 거긴 존폐와 생사의 싸움터 고독과 갈등의 교차로였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주님 감사합니다. 대문자로 썼습니다. 무려 서른 가지가 넘은 감사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 하나 써 내려가며 흐느꼈습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자 기도가 터지고 찬송이 열렸습니다. 생명을 건 수술 참말로 아팠습니다. 꿰멘 수술자리는 움직일 때 마다 소스라치게 쓰렸습니다. 그때마다 입으로 읊조리던 십자가의 아픔, 그 곁으로 다가 섰습니다..(서울충신교회 박 종순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 생애 최고의 감사 주일이 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축원합니다.
요즘 시장을 지나다보면 어떤 과일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감과 사과입니다. 우리 집에도 보면 고정 메뉴가 감과 사과입니다. 왜 이렇게 감과 사과가 많을까?하고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치시고자 함이구나! 하고 깨달아졌습니다. 감, 사과의 첫 글자를 모으면 ‘감사’가 되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감과 사과를 보실적마다 ‘가사의 신앙’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외국에도 사과는 많습니다. 그러나 감은 희귀합니다. 유독 우리나라에 감과 사과가 많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감사 잘하는 민족’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깊은 뜻이 계신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우리나라의 국가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인것과 우리나라의 산야에 감과 사과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예사로 보지 않고 참 기이한 현상이다. 정말 우리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각별히 사랑하시는구나! 이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의 첫 번째 의미를 ‘생각하는데서’ 살아나게 됩니다.(시116:12묵상)
‘감사’라는 단어 속에는 ‘느낀다, 생각한다. 묵상한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시4:4절을 읽어 봅시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감사의 마음이 살아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마음에도 일어나듯이(롬10:9-10) 가사 역시 마음에서 살아나야 합니다.(시4:7,엡5:19-20) 가만히 생각들을 해 봅시다.
옛적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이 떠 오를 것입니다.

중국의 공자선생은 어느 날 떼를 지어 기어가고 있는 개미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내가 저 개미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조물주께 감사하노라’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살아온 세월 40년, 50년, 60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것 하나, 어느 순간 한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 아닌 것이 있었습니까? 소름끼쳤던 왜정시대를 어떻게 넘어 오셨습니까? 6.25전쟁의 파괴와 죽음과 이별과 혼란, 절망.... 저 깊고 무서운 강을 어떻게 건너 오셨습니까? 60년대, 70년대 그 가난과 질병과 혼돈의 시대를 어떻게 통과해 오셨습니까?

여러분의 힘과 재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결코 아니시지요. 여러분보다 힘도 세고 재주도 많았던 사람들이 현대 한국사의 저 큰 강들을 건너 오다가 중도에 좌절하거나 휩쓸려 가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과연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자상하신 손길 때문이었음을 감사 드립시다.(시121편, 31:15)

지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감사할 것이 많이 떠 오를 것입니다.
서두에 소개해드린 감사의 기도문 중 ‘수술하러 입원한 날, 덩그런 병실에서 주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생각해보니 무려 서른가지가 넘는 감사들이 떠 올랐습니다’ 이런 문구가 있었지요. 왜 우리는 고난이 닥쳐와야 감사를 합니까? 지금의 나를 둘러싼 범사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가정(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거처(쉬고, 잠 잘수 있는 곳)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남편/아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교사로, 찬양대로, 구역장으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딤전1:12) 절망의 노래를 결별해 버리고 소망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목회자가 있고, 성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허무한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신33:29, 수24:15, 왕상18:20-21, 요6:68-69, 시119:105, 전12:13) 깨끗하고 고상한 비젼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빌3:8-9) 허망하게 죄짓는데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질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창28:21-22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대상28:9,14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나와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더 건강해 지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만한 건강 유지하는 것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 친구 오 윤표목사님은 서초동의 성모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시인이기도 한 오목사님의 병상일기는 참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앉고 서고, 누울 수 있다는 것이, 시원하게 오줌 눌 수 있다는 것, 혼자서 계단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 가리지 않고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이, 집에서 잠 잘수 있다는 것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가를 나는 병상에서 비로소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된 것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훗날 미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역시 감사할 것이 많이 떠 오를 것입니다.
죽음 후의 세계가 우리에게는 훗날이요, 미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미지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알려져 있는 세계’입니다. 목적지를 알고 가는 여행은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각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가실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우리가 길 못찾는 일 없도록 천사를 보내 주십니다. 거기 가서 편히 쉬도록 처소를 예비 해 놓으셨습니다. 그 곳은 우리가 여기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롬8:18,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곳은 우리가 여기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자유롭고 만족스럽기 때문에 정말 믿음이 좋은 성도들은 하루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어합니다.(고후5:1,2,8, 빌1:23, 벧후1:14) 예수님을 진실히 믿으면서 끝까지 이 믿음 지키면 이 축복 확실하게 받습니다.

감사의 두 번째 의미는 ‘보답하는 것’입니다.(시116:12)
감사는 보답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시원하게 말로서 보답해야 합니다. 예물로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봉사와 충성과 헌신으로 감사를 증거해야 합니다. 시와 노래와 찬양으로 감사 드려야 합니다. 거룩하고 빛나는 생활로서 감사를 증거해야 합니다.(마5:16, 벧전2:12, 빌1:11, 2:15, 엡5:9) 서원한 것을 갚는 것이 참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고, 시인하고, 자랑하고, 전함으로서 감사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마10:28,32, 롬10:9-10, 눅15:7, 시116:13-14) 그리고 시편 4편 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 고백을 항상 하나님이 들으시도록 외칠 때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받으시고 그리스도인의 감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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